반도체 특수호황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재원을 만들 수 없다. 최근 한국경제에서 반도체 산업의 특수호황이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서 발생하는 초과세수를 미래성장기금으로 적립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이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구상도 거론된다. 그러나 반도체 호황은 본질적으로 경기순환 산업의 산물이다. 짧으면 2027년, 길어도 2029년 전후에는 지금의 비정상적 이익률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높다. 호황은 설비투자를 부르고, 설비투자는 결국 공급 증가와 이익률 하락을 낳는다. AI 인프라 수요가 과거의 소비자 수요와 다르다고 해도, 반도체 산업의 경기순환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부동산 자산 편중과 불공정한 보유세제다. 따라서 일시적인 반도체 세수 증가에 의존해 양극화 완화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동산 자산가치가 국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과정에서 낮은 실효보유세율이 자산과 부의 양극화를 더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조를 바로잡지 못하면 한국경제의 미래 선택지는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 부동산 자산가치는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한국은행·통계청 국민대차대조표 기준으로 보면, 2024년 한국의 부동산 자산가치는 약1경9,227조 원, 명목GDP의 약7.5배 수준에 달한다. 이는 현 상황이 단순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아니라, 국민 자산구조 전체가 부동산에 극단적으로 편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2023년 이후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주택가격이 다시 급등한 점을 감안하면 GDP 대비 부동산 자산가치 배율은 이미 더 높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1989년말에서 1990년초에 정점에 달했다. 역사상 가장 기형적인 부동산 버블을 겪었던 일본의 GDP 대비 부동산 자산, 특히 토지가치 중심의 배수는 피크 당시 약 5.6배 내외였다. 당시 일본의 토지가치가 미국 전체 토지가치의 몇 배에 달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정상적 과열이 심했다. 그 뒤 일본은 부동산가격 붕괴와 금융시스템 약화, 소비·투자 침체가 맞물리면서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정체에 빠졌다. 한국이 일본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GDP 대비 부동산 자산가치 배율과 국부 내 80% 부동산 편중은, 비교 기준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과거 일본 버블기와 견줄 만큼 국제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수준에 와 있다.
전세 제도는 완충장치이면서 동시에 위험 증폭장치다. 한국에는 전세라는 특수한 사금융 구조가 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와 전세보증금 구조는 집주인이 급매물을 내놓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하는 하방 지지력으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전세는 리스크를 없애는 장치가 아니다. 매매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면 전세는 점차 월세로 밀려나고, 청년과 무주택 가구의 주거비 부담은 더 커진다. 결국 전세는 버블 붕괴를 막는 영구적 안전판이 아니라, 조정 시점을 늦추면서 시스템 전체의 부담을 키우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자산 없는 2030에게 자산시장 상승은 희망이 아니다. 2030 세대는 성실하게 일해도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면 저축 여력이 거의 없다. 노동소득만으로 내 집 마련과 자산 형성의 사다리에 올라서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9000선을 바라본다던 코스피 상승세' 같은 자산시장 상승은 이미 자산을 보유한 계층에게는 부의 확대가 될 수 있지만, 자산 없는 청년층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키울 수 있다. 자산시장이 커질수록 자산 없는 세대는 더 멀어지는 구조라면,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확대다.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은 소득기반 보강과 보유세제 정상화다. 최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올리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그 부담을 전부 전가하지 않는 방식, 그리고 상업용 빌딩과 과다 보유 부동산에 지나치게 낮게 적용되어 온 실효보유세율을 정상화하는 방식이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보유세 개혁은'세금폭탄'이 아니라 연착륙 정책이어야 한다. 물론 보유세 개혁은 정교해야 한다. 고령 은퇴층이나 현금흐름이 취약한 1주택자에 대해서는 보유세 이연제도 같은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상업용 빌딩, 고가·다주택 보유, 과다 부동산 보유에 대한 낮은 실효보유세율 구조까지 그대로 방치할 이유는 없다. '주거 서민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을 피하면서도, 빌딩·상가 중심의 특혜적 과소과세를 비롯한 부동산 보유세제의 불균형과 불공정은 단호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부동산에 묶인 자금이 생산적 시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부동산 보유세제가 정상화되면 버티기 비용이 높아지고, 비생산적 부동산에 과도하게 묶여 있던 자금은 서서히 주식, 채권, 혁신 산업 등 생산적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경제에 필요한 포트폴리오 대전환이다. 부동산 가격을 단기간에 무너뜨리는 정책이 아니라, 과도한 부동산 편중을 연착륙시키고 생산적 투자로 자금 흐름을 바꾸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이제 마지막 역사적 분기점에 와 있다. 한국경제의 최대 위협은 양극화와 저출생이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부동산 자산가치의 역사적 과열, 자산 없는 세대의 절망, 그리고 이를 키운 가계부채 구조가 놓여 있다. 더 늦기 전에 부동산 자산버블의 충격을 연착륙시키고, 실효보유세제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며, 일하는 국민의 소득기반을 보강하는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경제가 참된 경제부국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역사적 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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