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야구선수들이 광주일고 선수들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고 야유한 사건은 논란 될 게 없다. 그들은 스포츠맨십을 어기고 상대 팀을 향해 혐오 발언을 했으며, 야구협회는 그 책임을 물어 출전 정지 6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끝.
그들은 사회적으로 약속한 룰을 어겼고, 그에 상응하는 처분을 받았다. 저런 행태가 용인된다면, 앞으로 스포츠 경기는 사회의 혐오 배출구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마찬가지로 광주일고 선수들은 배제고 선수들에게 그들의 '선배'인 이승만을 연상시키며 '6.25 터졌는데, 가야지 가야지 서울 버리고 가야지'를 외쳐서도 안된다.(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5.18이 성역이 됐냐고? 헛소리다. 이건 스포츠의 문제다.
'신성한 스포츠'라는 흔해빠진 문구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 경기는 일종의 대리 전쟁(혹은 내전)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와 전쟁은 모두 인간의 공격성과 경쟁심을 분출하는 창구다. 인류는 신체적 충돌과 경쟁이라는 본능을 안전한 경기장 안에서 재현함으로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사회를 파괴하지 않고도 그 본능을 발산하고 승리의 쾌감와 같은 대리만족을 얻는다. 그래서 '그깟 공놀이'라는 문구에도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는 '무혈 전쟁'이다. 경제력이나 무력과 같은 국제사회의 위상이 간여하지 않는, 11명의 인간이 '피지컬' 대결을 통해 벌이는 공정한 게임이다. 스포츠가 거대 문화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중들에게 '적의 없는 소속감'과 '안전한 즐거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파괴와 정복을 목적으로 하지만, 스포츠는 승자와 패자가 모두 승복하는 '화합'을 전제로 한다. 경기 도중 '스벅 가야지' 같은 말을 상대에게 들었다면 그건 '화합'이나 '승복'을 넘어서는 문제가 된다.
스포츠는 그래서 룰이 헌법이다. 스토리와 메시지를 만드는 건 선수가 아닌 팬들이다. 이를테면 '식민 지배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야구(축구) 선수단이, 과거 가해자였던 일본 팀을 꺾었다'는 서사는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만들어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경기에 뛰는 선수들은 그러면 안된다. 마음가짐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그런 메시지를 경기 중에 발산하면 안된다.
벤치에서 한국 선수가 상대 사기를 저하시기기 위해 경기 도중 '쪽바X'라고 외치거나, 반대로 일본 선수가 '조센X'라고 외치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나? 그건 더이상 스포츠가 아니다. 그냥 전쟁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선수들도 선수복에 상징물을 달 수 없고, 팔레스타인 선수들도 반전 메시지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딛고 일어서 가해국을 실력으로 이긴 선수들'같은 그런 스토리는 오직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만들어 향유할 수 있을 뿐이다.
출전정지 6개월은 미성년 선수들의 미래를 빼앗는 과도한 징계라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사실 프로의 세계는 더 냉혹하다. 스포츠맨십과 '룰'을 어겨도 괜찮다는 걸 학습한 선수들이 프로에 진입한다면, 그 '룰'은 계속 지켜질 수 있을까?
2024년 7월 프리시즌 연습 경기 도중 축구선수 황희찬을 향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마르코 쿠르토 선수는 국제축구연맹(FIFA)로부터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토트넘 소속 로드리고 벤탄쿠르가 손흥민을 향해 "동양인은 다 똑같이 생겼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잉글랜드 축구협회(FA)는 그에게 7경기 출장 금지와 2억 원의 벌금을 물렸다. 2017년 한국 축구대표팀과 평가전에서 기성용 선수를 향해 눈을 찢는 행위를 한 콜롬비아 축구대표팀 에드윈 카르도나에게 국제축구연맹(FIFA)은 5경기 출전금지에 2천200만 원의 벌금을 매겼다.
'단순한 응원 구호였을 뿐'이라는 주장도 의미 없다. 스포츠는 상대를 물리적으로 마주하고 경쟁한다. 그들의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는 응원 구호가 아니라 모욕이고 시비다. 이런 게 응원 구호라면 대구 야구팀에게 상대팀 선수가 '학살자의 후예'라고 '야지' 놓는 것도 응원 구호인가. 응원 구호는 소속팀의 힘을 북돋기 위한 것이지 상대팀을 향해 내뱉는 '트래시 토크(그런 볼을 던지고도 밥이 넘어가느냐'거나, '10살 짜리 아이가 와도 저런 볼은 치겠다' 같은)'가 응원 구호일 수 없다.
그래도 용인되는 트래시 토크는 존재할 수 있지만, 거기에 혐오의 감정이 담겨 있다면 그건 룰을 어기고 상대를 공격한 것과 똑같다. 축구 선수가 발로 상대 선수를 걷어 차거나, 야구 선수가 배트로 상대 선수를 두들겨 패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경기장 내 선수들끼리의 폭력에 대해서는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건 상식이 아닌가.
억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팀에 대한 징계와 별도로 개별 선수에 대한 조사들이 필요하다. '운동부 위계'에 휩쓸려 해당 구호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가담한 선수들을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코치진이나 감독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혐오의 뿌리는 잘라낼 수 없다. 방법은 돌출될 때마다 싹을 잘라내는 것이다.
'방송인 최욱은 왜 처벌 안하냐'거나 '조진웅에 대해선 왜 관대하냐'는 역비난은 가치도 없다. 최욱은 야구선수가 아니고, 조진웅은 소년원에 갔다. 스포츠에서 벌어진 이슈를 정치적으로 끌어오려는 일부 극우 인사들의 목적은 그냥 '사회 혼란'일 뿐이다.
이건 표현의 자유 문제도,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도 아니다. 학생들이 무슨 교육을 받고 어떤 인터넷 환경에 노출돼 있고, 알 바 아니다. 인류가 가꿔온 스포츠 게임의 '룰'을 존중하자는 문제일 뿐이다. 안그러면 우린 '일상의 전쟁(내전)' 속으로 들어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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