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호황' 반도체 신화의 숨은 공동주역, 정부와 노동자

[반도체 성과 분배] ② 반도체 산업 성장사, 정부의 기여와 노동자의 눈물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올해 삼성전자는 300조 원, SK하이닉스는 200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계층 간 격차가 커질 조짐이 보이며, 분배를 둘러싼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 대기업이 거둔 막대한 이익은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나눠야 할까.

<프레시안>이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과 함께 이를 다루기 위한 공동기획을 준비했다. 국가전략산업 초과이익 관련 쟁점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기업 성장 과정의 공적 지원, 반도체 성과 분배의 현실, 공정한 분배 대안을 다루는 네 편의 기사로 이를 전한다.

[반도체 성과 분배] ① "반도체 초과이익, 하청 공유·공유부 기금 설치" 시민 60% 이상 동의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은 흔히 기업인의 활약을 강조하는 서사로 이해된다. 삼성전자의 한국반도체 인수를 시작으로 일찌감치 반도체 산업의 필요성을 알아본 이병철,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결단을 강조하는 식이다. 이를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요한 주체가 빠져 있다. 정부와 노동자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시작부터 기업과 정부의 공동 프로젝트였다. 반도체 대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때 공적자금, 세제 지원 등을 통해 이를 떠받친 것도 정부였다. 최근 정부는 반도체특별법을 통해 수십조 원의 세제 지원과 전력, 용수를 무제한 지원할 태세를 갖췄다. 국가적 지원에 기초한 눈부신 성장의 밑바닥에서는 위험물질을 다루며 일한 노동자들의 눈물이 흘렀다.

반도체 산업 성과 분배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이 산업의 성장 과정에 대한 정부와 노동자의 기여를 살폈다.

국가와 기업이 함께 놓은 반도체 산업 초석

한국 기업이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때는 1974년이다. 그해 1월 반도체 소자 생산 공장인 한국반도체가 설립됐다. 한국반도체는 몇 차례 지분 인수를 거쳐 삼성반도체로 사명을 바꾼 뒤 1980년 1월 삼성전자에 합병됐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기원이다.

비슷한 시기 정부의 움직임도 시작됐다. 1976년 12월 민·관공동출연으로 반도체·전자 분야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전자연구기술연구소(KIET)가 설립됐다. 훗날 이 연구소는 비슷한 취지로 만들어진 다른 두 연구소와 합병돼 반도체 기술 자립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된다.

1981년 5월에는 상공부가 반도체공업육성세부계획을 수립하며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본격화됐다. 이 계획에는 시설 현대화 자금 지원, 반도체 제조용 원료 관세 인하, 300여 명 기술인력 확보 등 반도체 산업 육성 대책이 담겼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정부 육석 대책이 나온지 6개월여가 지난 1982년 1월이다. 다시 1년여가 흐른 1983년 2월 이병철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이른바 '2.8 도쿄 선언'을 통해 초고밀도 집적회로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계기로 평가받는 4메가 D램 개발에도 정부의 공이 컸다. 1986년 수립한 '초고집적 반도체기술 공동개발사업' 계획을 통해 정부는 경쟁관계에 있던 금성반도체, 삼성, 현대전자의 협력을 이끌어 냈다. 800여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비 중 절반 가량이 정부 주머니에서 나왔다. 이 사업은 1988년 2월 결실을 맺었다.

▲ 1976년 12월 설립된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출처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홈페이지

IMF부터 사이클 침체까지…구원투수 자처한 정부

반도체 산업의 초석을 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정부는 이후에도 국내 반도체 기업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자처했다.

첫 고비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모든 기업이 어려움에 처한 이 시기 삼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사는 임직원 급여 삭감, 투자 감축 등을 단행했다. 이 시기 정부는 금융권을 통해 약 169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기업들의 회생을 지원했다.

2022년경부터 시작된 반도체 사이클 침체로 인한 재고 누적으로 한동안 반도체 기업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정부는 파격적인 세제 지원으로 기업활동을 뒷받침했다. 2023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통해서였다. 이른바 'K칩스법'으로 불리는 이 법의 골자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설비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대기업 기준 8%에서 15%로 두 배 가까이 상향한 것이었다. 2025년 이 비율은 20%까지 올랐다.

원본 격인 '칩스법'을 제정하며 미국이 한 것처럼 반도체 기업이 애초 제출한 예상치를 상회한 초과이익을 낼 경우 보조금의 75%를 환급하게 하는 조항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법 개정 논의 당시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의 법인세 비용은 최근 3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마이너스 규모는 2023년 7조 8656억 원, 2024년 1조 8330억 원, 2025년 2505억 원 등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2023년을 빼면 흑자였다. 흑자 규모는 2024년 12조 원, 2025년 23조 원 등이다.

▲IMF 한파 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등 범국민운동. ⓒ연합뉴스

구원투수 넘어 '올인 전략' 나선 정부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위기 때 구원투수 역할을 넘어 사회적 자원을 '올 인(all-in)'하는 형태에 가까운 산업 전략을 택하는 중이다.

그 결정판이 지난 1월 통과된 반도체특별법이다. 대통령 직속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설치를 법제화한 이 법안에는 반도체 기업에 대한 막대한 지원 구상이 담겨있다.

먼저 반도체 산업단지에 필요한 방대한 양의 전력과 공업용수를 제공하기 위한 인프라 설치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산업단지에 입주하는 기업의 연구시설, 연구개발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행·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게 했다.

정부가 반도체특별법에 따라 보조금, 금융대출 등으로 지원할 돈만 30조원대로 추산된다. 반도체 산업단지 형성과 관련한 각종 규제·인허가·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완화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공공운수노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 노동시민사회는 삼성 등 재벌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으면서도 환수 조치를 두지 않은 점, 생태 수용력 한계를 넘는 막대한 용수·전력 공급을 보장한 점 등을 이유로 반도체 특별법을 "재벌특혜법"으로 규정하며 제정에 반대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 1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제431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건강위험, 고용불안 감수하며 반도체 산업 떠받친 노동자들

각종 위험물질을 다루며 일한 노동자의 기여도 반도체 산업의 성장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백혈병에 걸려 2007년 23살 나이로 숨진 황유미 씨의 죽음 이래 불거진 반도체 산업 노동자 건강 문제는 오늘날도 여전하다. 반올림 추모 달력에 적힌 전자산업 산재 사망자만 69명에 이른다.

임금·복지 등에서 열악한 지위에 놓인 하청 노동자들이 공장 가동에 필수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삼성전자에서 웨이퍼 용기를 세척·공급하는 일을 하는 하청 노동자 A씨는 <프레시안>에 "공장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60~70%는 하청 노동자"며 "정규직은 하얀 방진복, 하청 직원은 파란 방진복을 입어 눈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하청 노동자들은 반도체 업계의 역대급 호황에 따른 최근 성과급 분배 논의에서도 배제됐다. A씨는 "우리가 받는 성과급은 반기별로 최대 125만 원"이라며 "불황기에는 깎이는데, 호황기라고 오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 자동화에 따른 고용불안 위험은 하청 노동자가 떠안는다"고 덧붙였다.

올해 삼성전자 노사가 마련한 합의안에도 하청 노동자 임금인상이나 성과급 배분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원청이 향후 5년 간 5조 원 규모의 상생기금을 조성해 협력사 처우 개선 등에 투자한다는 추상적 방안이 담겼을 뿐이다.

▲반도체 공장 풍경. ⓒ박정원

시민 72% "국내 대기업, 공적 지원으로 성장"

반도체 산업의 성장 과정을 시민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프레시안>이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 여론조사기관 '시그널앤펄스'와 함께 지난 18일 만 18세 이상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국가전략산업 초과이익 과 국민공유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보면, 다수는 반도체 산업 성장이 기업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초과이익과 국민공유부 인식조사 보고서 바로가기)

응답자 72%는 '국내 대기업이 산업화 과정에서 수출 지원, 정책금융, 세제 지원, 도로·전력·항만 등 공공 인프라 도움으로 성장했다'는 데 동의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은 22%였다.

반도체 기업의 이익이 누구의 기여로 만들어졌는지 묻는 질문에도 '기업·노동자·정부·국민·협력업체가 함께 만든 성과'라는 답이 40%로 가장 많았다. 그 뒤는 '기업 투자와 경영능력' 37%였다. 이어 '국민 세금과 공공 인프라' 9%, '정부 산업정책과 세제 지원' 8%, '노동자의 숙련과 생산성' 3% 순이었다.

▲반도체 산업 초과 이익에 기여한 주체를 설문한 결과. ⓒ시그널앤펄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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