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통행 "60일만" 무료…빈손 합의에 공화당서도 "최악" 비판

이란은 석유 수출 즉시 재개…미, 현상 복구도 실패한 셈

미국이 며칠간 비밀에 부쳤던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를 공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조했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면제는 단 60일만 보장되고 이란 핵프로그램 관련 구체적 합의도 고농축 우라늄 현장 희석 정도에 그친 것으로 드러나며 공화당에서도 "최악 실책"이란 비판이 나왔다. 미국이 얻은 것은 모호하고 향후 합의에 달린 반면 이란은 원유 수출 제한 즉시 면제 등 즉각적 경제적 이익을 확보했다.

<뉴욕타임스>(NYT),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을 보면 17일(이하 현지시간) 미 고위 당국자는 취재진과의 전화 회의를 통해 14개항으로 이뤄진 이란과의 양해각서 전문을 구술로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관련 "본 양해각서 서명과 함께 이란은 페르시아만에서 오만해로, 또 그 반대로 향하는 상선들이 60일간만 요금 없이(no charge for 60 days only)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조치할 것"이라는 문구가 양해각서 제5항에 기술돼 있다. 이후 이란이 공개한 전문에서도 이 내용은 "60일간 요금 면제(free of charge for 60 days)"로 거의 동일하다.

이는 전문 공개에 앞서 이란이 내비친 "통행료(toll) 아닌 수수료(fee)"를 청구할 가능성을 열어 둔 것으로, 지난 2월 말 미국이 이란 전쟁을 시작하기 전 아무 대가 없이 자유 항행이 가능했던 자연수로 호르무즈 해협이 올 여름 이후엔 어떠한 명목으로든 통과를 위해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곳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현실화했다. 각서는 이란이 오만과 "호르무즈 해협 향후 관리 및 해양 서비스"에 대해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란이 주장해 온 '서비스 요금' 명목으로 60일 뒤 사실상의 통행료가 부과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양해각서는 상선 통항이 "즉시" 재개되지만 기뢰 제거는 "30일 내" 이뤄질 거라고 명시했다. 이는 기뢰 제거 기간인 한 달 내 유조선 통행이 급격히 늘 수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 제거가 30일 내 완료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이번 합의는 일견 전쟁 전 현상 회복처럼 보이지만 이란이 사실상 해협 통제권을 계속 휘두를 수 있는 여지를 남긴 큰 후퇴다. 더구나 이 대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의 주요 목적지인 아시아 국가들이 주로 치를 가능성이 있다.

합의 발표 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성과로 반복 주장해 온 핵 문제도 공개된 양해각서에 따르면 구체성이 떨어지고 사안의 일부만 다뤘다. 핵 문제는 양해각서 제8항에서만 다뤘는데 유일한 구체적 내용은 고농축 우라늄 처리 관련 "최소한의 조치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하에 현장에서 희석"하는 것이다. 희석된 물질은 해외로 반출할지, 주요 핵시설은 해체할지, 향후 농축이 어떻게 제한될지 등의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어질 협상에선 "농축 문제와 이란의 핵 필요(nuclear needs)와 연관된 다른 문제들"이 논의될 예정이다.

"핵 필요" 언급은 이란의 농축 활동이 전면 금지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항엔 "이란이 핵무기를 갖거나 개발하지 않을 것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재확인"이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 이는 이란이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것으로 새로운 선언은 아니다.

이란, 석유 수출 즉시 재개·동결자금 및 제재 해제·460조 재건 기금·호르무즈 요금 가능성까지 '경제 실리'

합의를 통해 미국이 얻은 것이 구체성이 떨어지거나 전쟁 전 수준 회복에도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이란은 즉각적 경제적 이득을 확보했다. 제10항에 따르면 미국은 양해각서 서명 "즉시" 이란 원유 및 석유 제품 수출, 은행 거래 등에 대한 제재를 "면제"한다. 관련해 미 민주주의수호재단(FDD) 미아드 말레키 선임연구원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협상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시작되기도 전에 가장 강력한 경제적 지렛대를 내던지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제11항에 따르면 이란의 숙원이었던 해외 동결자금 해제도 "양해각서 이행 때" 전액 접근이 가능하게 된다. 이란 쪽은 이를 협상 초기에 확보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제7항에 따르면 최종 합의 땐 "합의된 일정에 따라" 미국의 1차 및 2차 제재,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및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 결의안을 통한 제재를 포함해 "이란에 대한 모든 종류의 제재가 해제"된다.

이란 입장에선 호르무즈 해협 통과 대금 부과 가능성과 함께 3000억달러(약 461조원) 규모 재건기금도 전에 없던 경제적 성과다. 양해각서 제6항은 "미국은 역내 파트너들과 함께 이란 재건과 경제 발전을 위해 최소 3000억달러 규모의 확정적이고 상호 합의된 계획을 수립할 것을 약속한다"고 명시했다. 이 계획 이행 방안은 "60일 내 체결될 최종 합의 일환으로 확정"된다.

다만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란이 전쟁 배상금 성격으로 해석하고 있는 해당 자금은 미국 정부가 아닌 한국 등 타국 기업들이 부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6일 <로이터>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기업들을 투자 약정을 통해 이 기금 절반 이상이 이미 확보됐다고 전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프랑스에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기자회견에서 기금 관련 "우린 전혀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이란이 "그들이 올바르게 행동했을 때만" 양해각서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다고 강조했지만 양해각서 내용에서 이란에 부과된 구체적 의무가 많지 않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요구 탄도미사일 제한 등 언급 없어…"레바논 영토 통합성 보장" 명시

이번 합의에서 배제된 이스라엘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은 것도 확인됐다. 이스라엘이 강조했던 탄도미사일 제한, 대리세력 지원 종료 등은 양해각서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레바논 관련해서도 이란 쪽이 종전에 밝혔던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의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군사작전 종료"및 "레바논 영토 통합성과 주권 보장" 내용이 제1항에 명시됐다. 1항은 미국과 이란에 더해 "그들의 동맹들" 또한 휴전 대상임을 명시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또한 이 합의에 구속돼야 함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휴전과 이란 휴전은 별개고 미·이란 합의 뒤에도 레바논 남부에 설정한 '완충 지대'에서 철수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합의가 발표된 14일 이후에도 교전을 이어오는 중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미 중동연구소(MEI) 연구원 바버라 리프는 미국이 이란 정권의 회복력 및 호르무즈 해협 봉쇄, 걸프국 미국 시설 공격 가능성에 대해 "처참할 정도로 비현실적 평가"를 바탕으로 이번 전쟁을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이 "40년간 비대칭 교리와 전술을 갈고 닦은" 이란을 상대하는 게 "자국이 준비해 온 전쟁과 다르다는 걸 빠르게 깨달았다"며 경제적 고통이 미국 소비자에게 도달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전쟁을 재개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전쟁이 1~2주 내 끝냈다면 가졌을 수도 있는 협상력을 너무 많이 잃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며칠 전부터 양해각서 전문을 공개는 걸 꺼리는 건 분명했다"며 "이유는 명확하다. 트럼프 정당 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 합의를 싫어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는 양해각서를 취재진에 구두로 낭독한 뒤 백악관 누리집 등에 즉시 공개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미 상원의원들은 취재진에 대한 구두 낭독 뒤에도 양해각서 사본을 즉시 제공 받거나 관련 브리핑을 받지 못했다.

공화당서 "레이건이 무덤에서 뒤척일 것·수십년 만 최악 외교 실책"

양해각서 내용이 공개되며 공화당 내부에선 날선 반응이 나왔다. 빌 캐시디 공화당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레이건(미 전 대통령)이 무덤에서 뒤척일 것"이라며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외교 실책"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이란의 핵야망은 억제되지 않았고 그들은 호르무즈 해협 위협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걸 배웠으며 앞으로 의심의 여지 없이 이를 활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전쟁 전 해협은 열려 있었고 이란은 제재로 인해 타격을 받고 있었으며 미군 13명은 살아 있었다. 현재 미국인 13명이 죽었고 가구들은 주유소에서 수십억을 지불했으며 제재는 해제될 거고 폭격은 멈췄다"고 지적했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도 미 매체 <데일리와이어>에 관련해 "역사는 우리를 죽이려는 신정 통치 미치광이들에게 수십억달러를 주는 게 얼마나 나쁜 생각인지 가르쳐준다"며 공개된 양해각서가 "이슬람 정권의 호르무즈 해협 영구 통제권을 공식화하는 걸로 보이는데 이걸로 미국이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3000억달러 규모 재건기금 조성 계획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앞서 합의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던 대이란 강경파 린지 그레이엄 공화 상원의원은 스티브 위트코프 미 특사와 대화 뒤 입장을 완화해 양해각서를 옹호했지만, 전쟁이 멈췄다는 것 자체 외엔 높은 평가를 내릴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듯 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양해각서 체결은 미국에 이롭다고 생각한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 시작되고 이란에서의 적대행위가 멈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핵 문제 및 다른 문제 관련 이란과 수용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시도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회견에서 "경제적 재앙"을 막기 위해 이란과 합의했고 평화 가능성이 언급될 때마다 "주식시장이 로켓처럼 상승했다"며 양해각서를 옹호했다. 그는 이란이 합의를 위반하면 "맹폭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19일 미·이란 양해각서 서명식은 열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란 관영 프레스TV를 보면 17일 에스마일 바가에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국영 방송을 통해 양해각서가 양국 대통령의 전자 방식 서명을 거쳐 공식 발효됐고 "스위스에서 서명식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종이로 된 양해각서에 서명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중재국인 파키스탄 셰바즈 샤리프 총리도 양해각서가 중재자 승인도 거쳤고 "즉시" 발효된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1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폐막 기자회견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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