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종전 합의에도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의 교전을 이어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 수위가 높아졌다. 이란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 철수가 종전 조건이라고 못 박았다.
레바논 국영 <NNA> 통신을 보면 16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공습으로 최소 4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나바티에주 마이파둔 마을에서 차량 두 대가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았고 인근 쇼킨 마을에서도 차량 한 대가 공격 대상이 됐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헤즈볼라가 이란 전쟁에 참전한 3월2일부터 이란 종전 합의가 발표된 14일까지 레바논에서 3783명이 숨지고 1만1699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247명이 어린이, 363명이 여성, 133명이 의료 종사자다. 이는 레바논 보건부 집계로 전투원과 민간인 사상자가 구분돼 있지 않다. 레바논에선 이스라엘군 공습과 대피 경고 등으로 120만 명 가량이 피난민이 된 상황이다. 통신은 이스라엘군 발표를 종합해 이스라엘 쪽에선 레바논 전투 관련 군인 28명, 민간인 4명이 숨졌다고 덧붙였다.
이란군은 관련해 강경 대응을 위협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을 보면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는 16일 저녁 성명을 통해 이틀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84차례 휴전을 위반했고 이를 멈추지 않는다면 "가혹한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레바논 휴전 범위를 두고 미, 이란, 이스라엘의 견해 차가 두드러지며 이 문제가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란 반관영 <ISNA> 통신을 보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16일 이란 수도 테헤란 주재 외교관들에 종전 합의에 대해 설명하며 레바논 전투 종료가 종전 조건임을 분명히 하고 여기엔 레바논 영토 점령 종료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군이 이번 분쟁 기간 점령한 모든 영토에서 철수하지 않는 한 전쟁이 끝난 걸로 간주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5일 레바논 남부에 이스라엘군이 "필요한 만큼" 주둔하겠다고 밝혔고 미 고위 당국자도 레바논 철수는 합의 조건이 아니라고 설명한 상황이다. 미국과는 달리 이스라엘 여론 다수가 이란 전쟁을 지지하는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 종전 합의로 정치적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9일 공개된 미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인 75%가 미국의 이란 공격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전쟁을 시작했지만 종전 협상에선 배제됐다.
트럼프 "이스라엘, 헤즈볼라 찾을 때마다 아파트 부숴" 작심 비판
종전 합의 직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외곽을 폭격하고 합의 뒤에도 헤즈볼라와의 교전을 멈추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레바논 주거시설 공격을 지적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16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열린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군주과의 양자회담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계속 공격할 경우 합의가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보냐는 질문을 받고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너무 오래 싸웠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며 "누군가를 찾을 때마다 아파트를 부술 필요가 없다. 그 아파트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 전원이 헤즈볼라 소속인 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폭격을 "악랄했다"고 표현하며 "미국이 없으면 이스라엘도 없었다. 내가 없었다면 이스라엘도 없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면서 "난 비비(네타냐후 총리 애칭)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비비는 이제 레바논 관련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죽이지 않고선 일을 완수할 수 없다면 시리아가 그 일을 할 것"이라며 "이스라엘에 시리아가 헤즈볼라를 처리하게 하라고 제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AP> 통신을 보면 미 국무부에서 일했던 애런 데이비드 밀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네타냐후가 트럼프가 진정 원하는 것, 이 전쟁에서 벗어나는 걸 방해한다면 트럼프는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행사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이터 "이란 재건기금에 한국 기업 등 투자 약정"
한편 종전 합의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 3000억달러(약 454조원) 규모 이란 재건 기금 관련 한국 기업 등이 이미 투자 약정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16일 <로이터> 통신은 합의 내용에 대한 직접적 지식이 있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 기금 절반 이상이 이미 확보됐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한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 기업들이 이미 투자를 약정했다고 밝혔다. 기업 목록은 제공하지 않았다. 소식통은 미국, 걸프국들, 남아메리카 및 아프리카의 여러 기업들도 에너지, 물류, 제조, 운송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민간 투자 약정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기금이 종전 최종 합의 타결을 위한 경제적 유인의 일환으로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이란은 이 기금을 전쟁 보상 성격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트럼프 정부는 이를 이란에 대한 투자 성격으로 설명하며 미국 정부 자원이 아닌 걸프국을 포함한 타국 자원을 통해 조달할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란 고위 소식통은 <로이터>에 이란 쪽이 4000억달러(606조원)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자 미국이 거부했고 이 과정에서 재건·개발기금 구상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번 합의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 기금이 제재 및 동결자산 해제와는 별개라고 덧붙였다.
이란은 종전 합의에서 동결자산 해제, 제재 해제, 해상 봉쇄 해제 등 경제적 이득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는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이 초반에 많은 동결자금 확보를 꾀하는 이유가 미국에 대한 근본적 불신 탓이라고 지적했다.
미 존스홉킨스대 발리 나스르 중동·국제관계학 교수는 신문에 이란 정권 핵심 인사들은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할 것이라고 믿지 않아 이러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른 1월 봉기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당근은 그들에게 극도로 중요하다. 문제는 당근이 실제로 있다는 신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 초 이란에선 환율 등 경제 불만을 이유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었고 이란 정부는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해 당국 공식 집계로 3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합의 발표 뒤 하락세인 유가는 3월 이후 처음으로 70달러대로 하락했다. 16일 국제유가 기준인 8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이틀 연속 5% 가량 하락해 배럴당 78.9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7일에도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영국일광절약시간대(BST) 오전 8시26분 기준 전날보다 소폭(0.63%) 하락한 배럴당 78.36달러에 거래 중이다. 전쟁 전 배럴당 70달러대였던 유가는 전쟁 뒤 배럴당 120달러 수준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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