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소송 끝에 복직했지만 '괴롭힘'…대한항공 성폭력 피해자, 노동부 진정

피해자 "저를 지킬 방패 하나 없이 서 있다"…시민사회 "노동부 판단, 지켜볼 것"

대법원에서 사측이 성폭력 피해자 보호 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점을 인정받는 판결을 받은 뒤, 대한항공에 복직한 장유정(가명) 씨가 이후 직장 내 괴롭힘과 2차 가해를 당했다며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서울여성노동자회, 재단법인 호루라기는 16일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년 간의 소송전을 거쳐 회사에 복귀한 장 씨가 또다시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낙인찍기와 조직 내 고립으로 벼랑 끝에 내몰렸다"며 "노동청의 제대로 된 직접 조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장 씨는 9년 전인 2017년 상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회사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조사 및 징계 등을 요구했다. 대한항공은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고 조기 면직 조치를 취했다. 이에 장 씨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024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 판결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선정한 '2025년 10대 디딤돌 판결'로 꼽혔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용자의 의무를 구체화한 판결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장 씨가 2025년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체들에 따르면, 장 씨는 지난해 4월 회사에 복귀한 뒤 △사전에 합의된 부서 대신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부서 배치 △부서 배치 이후 고립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객관적 조사 미이행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단체들은 또 피해자 복귀 직전 부서장 주도 면담에서 장 씨가 '회사랑 소송을 통해 길게 분쟁해왔고 정서적으로 회사랑 반대편에 있던 사람', '조직에 대한 불신 가능성이 높은 사람' 등 발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장 씨는 이날 회견을 지켜봤으나 신원보호를 위해 입장문은 사건 대리인인 김유경 노무사가 대독했다. 입장문에서 장 씨는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을 망설였다"며 "사방에서 저를 지켜보는 시선들의 한가운데에서, 작은 빌미 하나에도 언제든 내칠 준비가 된 상사들 사이에서, 저는 저를 지킬 방패 하나 없이 서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저는 회사를 떠나려고 싸운 사람이 아니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싸웠다"며 "언젠가, 누군가가 저와 같은 일을 겪는다면, 그 사람은 저처럼 7년을 싸우지 않아도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이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가장 큰 이유다. 저는 내일도 출근한다"고 밝혔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여성노동인권분과장인 김세정 노무사는 "수 년간의 법적 다툼 끝에 어렵게 일터로 돌아온 진정인을 위해 대한항공이 해야 했던 것은 피해 사실이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조치였다"며 "그러나 대한항공이 선택한 것은 '보호'나 '회복'이 아니라 '낙인'과 '배제'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가 바라는 것은 피해자가 신고한 것을 후회하는 사회가 아니라, 신고했기 때문에 더 안전해지는 사회입니다. 법이 피해자를 승소하게 만드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일터에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사회"라며 "노동부가 오늘 사건에 어떤 답을 내놓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 대표인 윤지영 변호사는 사용자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피해자의 고통은 배가 된다"며 "이를 목격하는 직원들도 실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 회사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구나. 가해자를 옹호하구나.' 그러면 일터의 분위기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고 회사에 대한 신뢰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항공은 지금이라도 나서서 잘못을 인정하고 2차 가해를 해결하기 바란다"며 "노동당국도 이 엄중한 상황을 묵과하지 마시라"고 촉구했다.

한편 대한항공 측은 이번 진정에 대한 입장을 묻는 <프레시안>에 "기준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고 있는데 서로 입자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최선을 다해 사안을 살필 예정"이라고 답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등 단체들이 16일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 앞에서 '대한항공 성희롱 피해자 2차 가해 규탄 및 노동청 진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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