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유한하나 삶은 영속하기에…시민 주도 돌봄이 필요하다

[복지국가SOCIETY] 돌봄 위기, 시민의회와 타임뱅크로 전환 모색을

초고령화와 각자도생의 시대, '돌봄'은 이제 우리 삶의 가장 절박한 화두가 되었다. 아픈 부모를 모시는 자녀의 어깨는 날로 무거워지고,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동동거리는 맞벌이 부부의 발걸음은 위태롭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복지 제도를 확대해 왔지만, 역설적이게도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지금의 돌봄 제도가 현장의 목소리보다, 행정의 효율성을 따지는 전문가들의 책상 위에서 주로 설계되기 때문이다.

정치는 유한하지만, 삶은 영속적이다

이제 돌봄에 대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다. 돌봄은 개인이 온전히 책임져야 할 사적인 부담이 아니며, 국가가 시혜적으로 베푸는 일방적인 서비스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안에서 주민들이 서로를 돌보고 연결되는 '공동체적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구조를 만드는 출발점은, 돌봄의 진짜 주인인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것이다.

특히 최근 치러진 지방선거 이후의 정세는 우리에게 '시민의 지속적인 역할'이 왜 중요한지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선거 결과에 따라 지방정부의 수장이 바뀌거나 연임되고, 지역 정치권의 판세가 요동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가 만든 갈등과 분열의 잔상이 지역사회에 남기도 하며, 때로는 정권의 향방에 따라 기존의 좋은 복지 정책이 흔들리거나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시민들의 불안감이 존재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복지와 돌봄만큼은 선거 결과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시민 주도의 단단한 뿌리'를 가져야 한다. 정치는 유한하지만 주민의 삶은 영속적이다.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지방정부가 출범하는 지금이야말로, 여야의 진영 논리를 넘어 주민들이 직접 삶의 현장에 필요한 정책을 요구하고 감시하는 '시민 민주주의'의 엔진을 켜야 할 때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일상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행정의 눈이 미처 닿지 못하는 돌봄 현장의 왜곡과 모순이 너무나도 처절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복지 현장에는 돌봄 사각지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편에서는 복지 수혜 정보와 제도의 맹점을 발 빠르게 역이용하는 복지 시민단체와 기만적인 상황들이 목도된다. 정작 가장 뜨거운 돌봄이 필요한 곳은 소외되는 '복지 자원의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행정 편의주의가 낳은 복지 양극화

더욱 기막힌 것은 행정 편의주의가 낳은 경직성과 현장 근무환경의 역차별이다. 일상적 독립 수행이 어느 정도 가능한 이용인이 주로 찾는 주간활동센터는 종사자와 장애인 비율이 1:1이나 1:2로 촘촘하게 지원되는 반면, 신체 모든 부위의 조작과 이동에 100% 종사자의 손길이 필요한 중증 뇌병변 장애인 주간이용시설 등은 여전히 획일적인 1:3 기준에 묶여 있다. 현장의 실제 '돌봄 난이도'는 무시한 채, 행정이 분류해 놓은 '사업의 종류'에 따라 기계적으로 인력을 배정하다 보니 발생하는 모순이다. 이로 인해 가장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는 종사자들은 번아웃과 무기력에 내몰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증 장애인과 가족에게 돌아간다. "돌봄은 왜 이토록 유연하지 못하고 경직되어 있는가?" 현장의 이 눈물 어린 질문에 이제는 제도가 답해야 한다.

시민들이 직접 돌봄과 복지 정책을 결정하는 민주주의는 이미 국내외를 막론하고 검증된 흐름이다. 영국 의회가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들과 함께 수십 년 간 묶여있던 '성인 돌봄 재정 개혁안'을 도출해 낸 선례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민연금 개혁 공론화 시민대표단이나 지자체 단위 공론장을 통해, 까다로운 복지 문제일수록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주민이 모였을 때 가장 정교하고 연속성 있는 답이 나온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

우리 안산은 이미 이 거대한 전환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돈이 아닌 '시간'을 화폐로 삼아 주민들이 서로의 시간과 온기로 공적 돌봄의 빈틈을 메우는 혁신적인 상호 돌봄 모델, 바로 '안산타임뱅크'다. 내가 이웃의 아이를 1시간 돌봐주면 1시간을 적립하고, 훗날 내가 몸이 아플 때 다른 이웃으로부터 가사 도움으로 그 시간을 돌려받는 이 호혜적 시스템 속에서, 안산의 주민들은 일방적으로 '받는 복지'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돌봄의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

주민주도 복지를 위한 대안, 시민의회와 타임뱅크

다가오는 10월, 안산은 특별한 자리를 마련한다. '서로의 시간이 이웃이 되다 - 안산타임뱅크 연결의 숲' 사업의 값진 결실을 나누는 성과보고회다. 이번 성과보고회는 단순히 한 해의 사업을 정산하는 자리가 아니다. 주민들이 현장에서 몸소 증명해 낸 '상호 돌봄'의 에너지를, 올 하반기 안산의 지속 가능한 복지 제도를 설계할 '돌봄시민의회'의 동력으로 연결하는 역사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선거 이후 새롭게 정비된 안산의 정책 환경 속에서, 그리고 복지 현장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돌봄시민의회'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졌다. 성별, 연령, 지역을 고려해 무작위로 추출된 안산의 이웃들이 시민의회에 한자리에 모여, '연결의 숲'에서 길러낸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극히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지게 될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갈라진 이웃의 마음을 돌봄 공동체로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정당한 돌봄 권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도록, 시민이 참여하는 모니터링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사업 지침 뒤에 숨은 행정 편의주의를 깨고, 장애 정도와 돌봄 난이도에 맞춘 '유연한 인력 배치 기준'을 안산시 조례로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우리 동네의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타임뱅크를 어떻게 더 촘촘하게 확장할 것인가?"

이 정직한 질문과 치열한 토론 끝에 나올 주민들의 제안은, 그 어떤 전문가의 용역 보고서나 정치인의 일회성 공약보다 강력하고 실효성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닌, 안산의 골목길에서 매일의 삶을 살아내며 겪은 주민들의 '삶의 경험'과 현장의 고뇌가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눈 이웃 사랑의 시간이 정책이 되고, 정치적 파도나 관료주의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울타리가 되는 경험은 우리 안산에 강한 효능감과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을 것이다.

▲출처 : 프리픽(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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