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에서 발표된 한-EU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한국 외교가 직면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성명은 북·러 군사협력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규탄'의 언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북한의 NPT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도 재확인했다. 국제사회의 보편 규범과 연대한다는 명분은 섰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강경한 언어의 대가로 한반도가 짊어져야 할 안보적·외교적 비용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성명이 발표되자마자 북한 외무성은 한국이 "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며 격렬하게 반발했고, 한국을 "불변의 적국"으로 재규정했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다극화 체제를 옹호하며 서방 주도 진영 외교에 대한 불쾌감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북·러 밀착을 견제하려던 외교적 수사가 도리어 북·중·러의 결속 명분을 강화하고, 한반도를 진영 대립의 최전선으로 내모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이 역설의 뿌리는 구조적이다. 냉전 종식 이후 한국 외교의 좌표는 단순했다. 미국 중심 질서에 편입되는 것이 곧 발전이고 안전이었다. 그 판단이 유효했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는 세계가 바뀌었는데 한국 외교의 문법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의 세계질서는 단극에서 다극으로 이동하고 있다. 브릭스(BRICS)는 구매력 기준으로 G7의 총생산을 이미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인공지능·양자기술·전기차 분야에서 미국과 정면 경쟁하는 과학기술 강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중동·동아시아를 동시에 관리하는 데서 전략적 과부하를 느끼며 동맹에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G7이 세계 전체가 아닌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 외교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시선으로만 현실을 해석하고, 그들의 전략 언어를 그대로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인다. 한-EU 공동성명이 바로 그 전형이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자신들의 생존 문제로 본다. 북러 군사협력도 유럽 안보를 직접 흔드는 사안으로 받아들인다. EU가 강경한 언어를 쓰는 것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선택이다. 문제는 한국이 그 언어를 그대로 떠안는 순간 발생한다. 그들이 감당하는 비용과 한국이 감당하는 비용은 다르다. 미국과 유럽은 바다 건너에 있지만, 북한은 바로 너머에 있다.
공동성명의 문장 구조를 다시 읽어보면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앞에서는 상대를 국제법 위반 행위자·불인정 대상·제재 대상으로 규정하고, 뒤에서는 그 상대와 평화공존하고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말한다. 북한(조선)이 읽는 것은 뒤의 희망이 아니라 앞의 규정이다. 핵보유국 지위, 북러 군사협력, 인권이라는 조선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세 사안을 한 문서에 강한 어조로 병렬한 방식은 대화의 입구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닫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성명 직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미 한국이 밝혀 온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바로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외교에서 같은 문장도 어느 정부가, 어느 시점에, 어떤 상대와, 어떤 문맥에서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신호가 된다. 이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평화공존과 단계적 비핵화 협상을 말한 직후, 그 정부가 내놓은 첫 고강도 대북 공동문서가 보내는 신호는 이전 정부의 문서와 같을 수 없다. 익숙한 문구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 자체가 전략적 무감각의 증거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무감각이 한 사람의 판단 착오가 아니라 구조적 조정 실패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다. 김동엽 북한학대학원 교수의 칼럼에서의 언급대로 "외교부는 국제규범의 언어를 쓰고, 통일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며, 안보실은 군사위험을 계산한다. 그 차이 자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차이를 대통령의 전략 방향 아래 하나로 수렴시켜야 할 조정 기능이 이번 공동성명에서 작동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평화를 말하고 외교 문서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면, 그것은 이중 전략이 아니라 전략의 분절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발 압박도 가시화되고 있다.루비오 국무장관의 현 한국 정부를 향한 "친중·좌파" 발언, 반공청년단장의 EAST-WEST센터 이사 임명, 국무부 인사들의 극우 인사 선(先)면담이라는 비정상적 순서, 방한 친트럼프 인사들의 국내 소요 선동 발언, 이에 더해 미셸 스틸의 주한대사 임명. 이 사안들을 개별적으로 보면 무관해 보이지만 패턴으로 읽으면 다르다. 이재명 정부가 전작권의 조속한 전환, 한미연합훈련 조정,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한 선별적 접근 등에서 미국의 기대와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에 대한 조직적 압박의 성격이 보인다.
동맹 내 이견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견을 상대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해소하려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동맹의 문법이 아니다. 이 압박 앞에서 필요한 것은 굴복도, 감정적 대결도 아니다. 냉정하고 원칙적인 상호주의다.
결국 21세기 한국 외교의 핵심 과제는 친미도 반미도, 친중도 반중도 아닌 자율이다. 미국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중국과도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러시아·동남아·중동·아프리카와도 다층적 관계를 구축하는 자율 외교다. 강대국은 언제든 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한반도를 떠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수사가 아니다. 눈앞의 현안을 정밀하게 풀어가는 더 정교한 외교다. 세계 무대에서 가치를 외치는 더 큰 목소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평화중견국으로서 판을 읽고 국익을 확보하는 더 깊은 설계가 시급하다. 외교적 수사가 화려하고 거칠어질수록,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한반도의 평화적 공간은 좁아질 뿐이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낀 중견국에 외교는 곧 생존이다. 자주(自主)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가 있고, 상대를 관리하고 지형을 넓히는 정밀한 전략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 평화가 있다.
진정 평화를 말하는 정부라면, 거친 언어로 상대를 압박하는 것을 넘어 평화를 만들어낼 실질적인 전략을 국민과 국제사회에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보아왔듯 힘에만 의존하는 수사는 외교의 공백을 감추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진정한 평화중견국의 위상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전략적 공간의 깊이에서 나온다. 이를 위한 외교안보라인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한 연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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