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개헌 반대 농성주도자가 강기훈 유서를 조작했다, 신상규의 두 얼굴

[기고]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신상규, '검찰공화국' 탄생의 숨은 설계자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신상규(申相圭, 1949~) 항목을 읽다가 한 가지 사실에 오래 멈춰 있었다. 1969년 6월, 서울법대 1학년생 신상규는 3선 개헌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전국 대학생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하고 개헌반대 처벌해제 농성을 주도했다. 인권운동가 서준식은 그를 "굉장한 활동가였으며 학구파였던 친구"로 기억했다.

그리고 22년 후인 1991년 5월, 검사 신상규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했다. 민주화운동으로 분신한 청년의 유서를 강기훈이 대신 썼다고 꾸민 것이다. 3선 개헌에 반대하며 농성하던 대학생이, 민주화운동가를 탄압하는 검사가 됐다. 이 22년의 거리가 이 글의 핵심이다.

1949년 강원도 철원 출생, 사법시험 합격까지 7년을 기다리다

신상규는 1949년 9월 25일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1968년 경복고를 졸업하고 서울법대에 입학했다. 1972년 대학을 졸업했으나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 1979년 제2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 검사로 임관했다.

동기들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서울법대 68학번 동기로는 서준식(전민련 인권위원장), 채만수(민족민주운동연구소장), 최규성(서울민통련 부의장) 등 사회운동가들이 있었다.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하고 같은 거리에서 시위했던 사람들이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신상규는 그 갈림길에서 검사의 길을 택했고, 그 길 끝에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있었다.

세계사 속의 동류, '과거의 활동가, 현재의 탄압자'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떠오른다.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 체제에서 활동했던 일부 법률가들이다. 196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1970년대 군부 쿠데타 이후 체제에 편입해 인권침해에 가담한 경우가 있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이런 현상을 '자기기만'으로 분석했다. 과거의 행동과 현재의 행동사이의 모순을 직시하지 않는 것. 신상규가 3선 개헌 반대 농성과 강기훈 유서 조작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거리가 22년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1984년 서창덕 납북어부 간첩조작, 어민을 스파이로 만들다

신상규의 반헌법 행위의 첫 번째 장면은 1984년이다. 전주지검 군산지청 검사로 재직하던 그는 납북귀환어부 서창덕을 간첩으로 조작해 기소했다. 보안사가 수사를 주도하고 신상규가 기소를 맡았다.

서창덕은 1960~70년대 바다에서 조업하다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민이었다. 그는 북한에 억류된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일반상황을 진술한 것이 간첩활동으로 둔갑했다. 2012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사건발생 28년 만이었다.

납북어부 간첩조작의 구조는 단순하면서도 잔혹했다. 바다에서 납치돼 돌아온 것 자체가 의심의 대상이었다. 북한에 억류돼 있는 동안 한 모든 진술이 증거가 됐다. 그리고 검사는 그 허위증거를 공소장으로 번역했다. 피해자의 이중 고통, 납치의 트라우마에 더해진 간첩누명을 신상규는 기소장 한 장으로 완성했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검찰공화국의 탄생

신상규의 반헌법 행위의 정점은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 검찰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1991년 5월, 노태우(1932~2021) 정권말기 분신정국에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에서 분신자살했다. 검찰 강력부장 강신욱(1944~)의 지휘 아래 주임검사 신상규는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1964~)을 유서대필자로 지목했다. 강기훈이 김기설 대신 유서를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것이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이렇게 기록한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검찰이 앞장서서 조작한 사례로,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까지 공안사건은 주로 안기부나 보안사가 조작하고 검찰은 기소를 맡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검찰이 직접 조작의 주체가 됐다. 신상규는 그 전환점의 주임검사였다.

수사과정에서 신상규는 필적감정인으로 당시 이미 다른 사건에서 뇌물수수로 구속 중이던 국과수 직원 김형영을 활용했다. 이 문제적 감정인이 "강기훈의 필적"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신상규는 이를 기소의 근거로 삼았다. 강기훈은 1991년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복역했다. 2015년 5월 14일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24년이 걸렸다.

신상규는 지금도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법적책임도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조작한 사건의 재심이 진행되던 동안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조작사건을 심판하는 체계 안에 여전히 앉아 있었다.

북풍 수사, 노무현 대선자금 수사, 검찰권력 강화의 연속

신상규는 강기훈 사건 이후에도 굵직한 사건들을 맡았다. 1997년 서울지검 남부지청 부장검사로 '안기부 북풍 조작사건'을 수사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가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도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사건이었다. 수사는 이루어졌지만 핵심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2년 대선 직후 서울지검 3차장으로서 노무현(1946~2009) 대통령 대선자금 수사에 관여했다. 이 수사는 노무현 정권 초기에 막강한 검찰 권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를 이렇게 총괄한다.

"이러한 흐름은 '안기부 북풍 조작사건' 수사, 노무현 대선자금 및 측근 비리 수사 등으로 이어졌다. 한국사회에는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검찰의 권한남용, 인권침해, 정치개입이 지속되었고,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권력을 휘두르다가 결국 2024년 12·3 내란 사태를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신상규는 그 검찰공화국 탄생의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길퍼드 4인 사건(1974년)을 담당한 수사관들과 검사들은 이후 광범위한 조사와 책임 추궁의 대상이 됐다. 비록 최종 형사처벌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제도적 반성과 변화가 이어졌다. 무고한 사람들을 기소한 검사가 이후 검찰요직을 두루 거치고 총장 후보로 거론되는 일은 없었다.

한국에서 신상규는 강기훈에게 24년의 억울함을 안겼다. 그리고 검찰요직을 두루 거쳐 고등검찰청장까지 올랐고, 이명박 정권에서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됐다. 재심무죄가 나온 뒤에도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1991년 신상규를 떠올렸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이 직접 연결 짓듯, 신상규가 기여한 검찰공화국의 구조가 그 밤으로 이어졌다. 3선 개헌에 반대하며 농성하던 대학생이 24년 뒤 재심무죄를 받을 사건을 조작했다는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가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신상규 ⓒ반헌법행위자열전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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