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에 근거 규정이 있고 판례를 통해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사례가 있다.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에 대한 법 적용 논의가 필요하다. 올해 심의 중 방안을 찾지 못할 경우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지난주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에서 부결된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2023년이다. 당시 양 노총은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최저임금 확대 적용'을 공식 요구로 채택하며 전원회의 쟁점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공익위원들은 핑계거리 하나를 찾았다.
"이미 제2차 전원회의에서 정리된 논의로 여겼는데 계속 논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2023년, 버스 떠난 뒤 탑승구 알려준 최임위
이게 무슨 얘기인지는 설명이 좀 필요하다. 관례적으로 최임위는 3가지 안건을 순서대로 처리한다. 1번 안건은 '최저임금의 단위'이다. 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시간, 주, 일, 월 단위 중 어느 하나로 결정해야 한다. 즉, 최저임금을 시간급으로 결정할지 아니면 주급·일급·월급 단위로 결정할지를 판단하는 단계이다. 통상 '시간급'으로 결정되어 왔다.
2번 안건은 '사업의 종류별 구분' 여부이다. 우리가 흔히 '최저임금 차등적용'이라 부르는 쟁점인데, 이 안건이 최임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당시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하며 저임금 노동자들의 열망을 대변하자 사용자 측은 대항마로 차등적용을 내세운 것이다. 통상적으로 표결을 거쳐 차등적용은 매년 부결되어 왔다.
마지막 3번 안건이 바로 최저임금 수준, 즉 액수를 결정하는 단계이다. 최저임금법 5조 3항에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기에 정용재 위원은 3번 안건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공익위원들 논리는 이러했다. "5조 3항의 경우 시간급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적용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1번 안건, 즉 최저임금을 시간급으로 결정할 것인지 여부를 논의할 때 제기했어야 한다. 이미 시간급으로 결정하기로 2차 전원회의에서 결론이 났으니 올해 논의할 수 없다."
막힌 문 앞에서 다시 준비한 노동자들
공익위원들 얘기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023년 최저임금 심의 시작 전부터 양 노총이 '최저임금 확대적용'을 공식 요구안으로 확정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 쟁점은 1번 안건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절차 안내를 하는 것이 정상 아닐까? 가만히 있다가 3번 안건에서 쟁점 토론을 시작하니 '버스 이미 떠났으니 내년에나 얘기하시라'는 핑계를 들이민 것.
결국 2023년 최저임금 심의는 이렇게 종료되고 2024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그냥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기사, 학습지 교사 등 각자의 조직에서 실태조사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교육과 학습을 시작했다.
특히 2023년에 어이없게도 절차를 핑계로 논의 자체가 좌절된 경험이 있었기에, 최저임금법과 최임위 절차에 대해 심도 있는 사전학습을 진행했다. 공익위원들이 또 어떤 핑계를 들먹일지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대비책을 미리 논의했다.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바뀌던 그 시기,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조합들은 그야말로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내며 2024년 최저임금 심의를 준비했다.
2024년, 38년 만에 나온 노동부 유권해석
2024년 최임위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1번 안건에서 '도급제 최저임금' 의제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증언대회·토론회 등의 사업을 모두 5월에 쏟아부었다. 노동 관련 언론은 물론이고 경제지와 방송사까지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노동계는 플랫폼 노동자 출신을 최임위원으로 임명하며 당사자의 절절한 목소리를 담으려 노력했다. 사용자단체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지 않느냐"는 예상질문을 해왔고,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근로자로 인정된 20여 개의 법원 판례로 응수했다.
사용자위원들이 마지막으로 기댄 논리는 이거였다. "최저임금법 5조 3항, 즉 도급제 최저임금은 최임위 논의사항이 아니다." 논쟁이 길어지자 최임위원장은 고용노동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최임위에는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이 특별위원 자격으로 매번 전원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2024년 6월 11일, 제3차 전원회의에 참여한 근로기준국장(특별위원)은 매우 명쾌한 유권해석을 내려주었다. "고용노동부 심의요청서는 최저임금법 제4조 및 제5조에 대한 것이고, 최저임금위원회는 제13조에 의거 최저임금에 관한 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즉 최저임금법 5조 3항에 입각한 도급제 최저임금에 대해 최임위가 심의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5조 3항은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1986년부터 존재했던 조항이다. 노동부는 법이 제정된지 38년 만에 처음으로, 이 문제를 최임위에서 논의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권한 인정하니 실태자료 내놓으라는 공익위원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최임위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들은 거의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음이 잘 드러난다. 지난해 1번 안건 운운하며 논의를 좌절시켰으면, 이 문제에 대한 노동부 유권해석이나 법률적 검토를 미리 해둬야 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38년 만에 노동부 유권해석이 나왔음에도 최임위는 법 적용을 포기했다. 이번에도 공익위원들이 나섰다.
2024년의 경우 "법 제5조 제3항의 대상을 구별해 별도의 단위를 설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며 다만 "올해 심의를 종료한 후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의 대상이 되는 근로자와 관련 구체적 유형, 특성, 규모 등에 관련해 실태와 자료를 노동계에서 준비해 주시면 추후 논의가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공익위원 의견에 최임위 노동자·사용자위원들 모두 동의해 2024년에도 논의는 무산되었다. 어떻게든 논의를 회피하려 했던 사용자위원 태도는 그렇다 해도 이 내용에 노동자위원들까지 동의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하반기부터 양 노총을 중심으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관련 실태조사가 활발하게 벌어지게 되었다.
2025년, 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든 심의자료
2024년 최임위는 38년 만에 나온 노동부 첫 유권해석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신 다양한 실태조사 데이터를 장착한 노동계는 2025년 최임위 1번 안건에서 다시 한번 도급제 최저임금 쟁점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2025년 최임위에서도 도급제 최저임금은 정식 안건으로 다뤄지지 못했다.
다만 한 발짝 진전된 공익위원 의견이 나오긴 했다. 공익위원들은 "현재까지 제시된 실태조사로는 논의를 진척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나 "고용노동부가 가능한 수준에서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의 적용과 관련된 대상 규모, 수입 및 근로조건 등 실태를 조사하여 그 결과를 2027년도 최저임금 심의 시(즉, 2026년 최임위에) 제출해 주시기를 요청"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이제야 조금씩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제대로 심의를 하기 위한 실태조사와 데이터 자료를 제공할 책임은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권리는 헌법 32조에 명시된 권리이며, 이를 실현할 의무는 최임위가 아니라 정부에 있다.
하지만 2023년부터 최임위 쟁점이 된 이 사안에 대해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2024년에 첫 유권해석을 내렸을 뿐 실태조사 책임을 노동계에 떠넘길 때도 쳐다만 봤다. 그러다가 2025년이 되어서야 공익위원 권고를 통해 정부에게 실태조사 및 데이터 제출 의무가 부과되었다.
연구용역 발주, 공문 한 장 보낸 정부
그러는 사이 2025년 6월에 정권이 바뀌었다. 계엄과 탄핵으로 윤석열 정부가 몰락하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것. 게다가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에 '도급제 최저임금 심의 지원'은 물론이고, 더 넓은 적용대상을 상정한 '최저보수제'까지 포함시켰다.
공익위원 권고 이행을 위해 새 정부는 도급제 노동자 관련 실태조사와 최저임금 보장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올해 3월 말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최저임금 심의요청서에 '도급제 근로자 별도적용 여부'가 명시되었다. 최저임금법 시행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플랫폼·특수고용 노조들은 40년 만에 이뤄지는 도급제 최저임금 심의 준비를 위해 실태조사 및 연구는 물론이고, 뉴욕·시애틀·호주를 비롯해 풍부한 해외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실현가능한 대안 및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했다. 도급제 심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 4일부터는 세종시 최임위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
6월 4일과 9일, 11일. 전원회의에서 3차례 도급제 최저임금 안건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 중 2차례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각각 자신의 실태조사 및 구체적인 대안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사용자위원들은 말을 아꼈고 공익위원들이 오히려 많은 질문을 던졌다.
또다시 '나중에'로 미뤄진 정부 국정과제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정부가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는 '절대 대외비'라며 워터마크로 식별번호까지 부여해 최임위원 내부에만 공개되었다. 최임위원을 빼면 보고서를 본 사람이 없으며, 심지어 최임위에서 이 보고서에 대한 정부의 책임있는 설명 한 번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모든 업종에 실현하기 어렵다면 별도 전문위를 설치해 집중 논의를 거쳐 시행하자는 수정제안도 무시되었다. 공익위원들은 오직 고용노동부장관의 심의요청에 명시된 "도급제 근로자 별도적용 여부"만 표결 가능하다며 생산적인 대안 논의를 진척시키지 않았다.
결국 6월 11일 전원회의에서 이뤄진 표결 결과는 처참했다.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 각 9명으로 구성된 27명 모두 투표에 참석해 찬성 11, 반대 15, 무효 1로 부결된 것이다. 무려 40년을 지체해온 권리 실현을 또다시 좌절시키는 데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2023년에는 논의절차를 핑계로 좌절, 2024년에는 실태조사와 데이터가 없다는 핑계로 무산, 2025년에 비로소 정부에 실태조사 의무를 부과했으나, 2026년에는 더 이상 댈 핑계가 없으니 막무가내 표결로 부결시킨 것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공익위원'들 문제도 상당하지만, 연구용역 발주와 공문 한 장으로 의무를 방기한 정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불 끄랬더니 화재원인 연구용역 발주
노동계가 우려 또는 반대를 표명하는 '일하는사람법' 등에 대해서는 노동부, 국회 등 주최로 수십 차례의 토론회가 열렸다. 하지만 '도급제 최저임금'이나 '최저보수제'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도 정부가 주도한 토론이 진행된 바가 없다. 똑같이 국정과제 목록에 올라와 있지만, 정부는 철저히 차별적인 태도를 취한다.
2025년 최임위에서 요청한 것은 '연구용역 발주'가 아니었다. 정부에 도급제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실태조사와 데이터를 보고해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걸 '연구용역 발주'로 외주화해 버렸다. 최임위에서 관련 보고서 내용을 질의하면 "연구진의 의견"이라며 거리를 두고 정부 책임에 대해서는 뒷짐을 졌다.
정부 스스로 국정과제에 올리고,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장관이 공문으로 심의요청서를 보냈으면, 최소한의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정부 행정의 기본 아닌가?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40년 기다림만 좌절된 것이 아니라 정부 국정과제가 무산된 것인데, 이에 대해 정부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다.
'도급제 최저임금' 대상보다 넓은 범위에 적용되는 '최저보수제' 역시 이재명 정부는 연구용역 발주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소득에 불이 났는데, 정부는 화재원인 연구용역을 발주한 꼴이다. 권리를 보장한다 해놓고선 '연구용역 결과 기다리자'며 접수증만 준다. 이번에는 연구용역 결과가 나왔음에도 정부가 손 놓고 방관한 꼴이다.
정부가 비운 자리 채운 노동자
도급제 최저임금 부결 사태로 이재명 정부는 노동정책 추진을 위해 필요한 신뢰 점수를 잃었다. 특히 국정과제에서 항상 강조해온 바 있는 870만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신뢰에 금이 갔다. 40년 간 법전에서 잠자던 법률적 근거도 이들이 찾아냈고, 실태조사·증언대회·토론회·연구조사와 대안 제시 등 마땅히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채워가며 운동을 만들어왔다.
최임위에서 부결이 이뤄진 바로 다음날(6월 12일), ILO 총회에서 한국 정부는 "고용관계에 있는 플랫폼노동자에게 법령 또는 협약상 최저임금이 있는 경우 그에 미달하지 않는 보수 지급을 보장하고, 고용관계에 있지 않은 플랫폼 노동자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협약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제사회 '보여주기식 행정'은 있지만 실질적 권리의 진척에는 인색한 정부, 도급제 최저임금 논의의 지난 4년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법의 근거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당사자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며, 자료와 대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부족했던 것은 권리를 현실로 옮기려는 정부의 의지와 책임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연구용역의 예고가 아니다. 최임위 부결과 보고서 뒤로 숨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미 확인된 현실을 바탕으로 최저임금이라는 헌법적 권리의 대상과 기준, 절차와 일정을 제시하는 일이다. 40년 동안 법전에 머물러 있던 조항을 다시 "나중에"로 미루지 않으려면, 정부는 이제 보여주기·생색내기 행정을 넘어 책임지는 행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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