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사가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일지 모르지만, 이 사회의 많은 사람이 알게 모르게 빚지고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우석균 선생은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성수의원에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노동자, 미등록 이주노동자, 장애아동과 그 가족, 노인, 성소수자 등 의료 접근이 쉽지 않은 이들에게 문턱 없는 의료를 제공했다. 스쳐가듯 환자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 진료실 풍경이 된 지 오래지만, 그는 환자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시간과 관심을 쏟으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꼼꼼히 물었던 의사였다.
그러나 그는 단지 좋은 의사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건강권을 둘러싼 투쟁의 자리마다 그가 있었고, 그 투쟁 중 일부는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담론과 제도가 되었고 일부는 시민사회와 보건의료영역의 중요한 의제로 이어졌다. 의료를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권리로 바라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 불평등을 정치경제적으로 이해하며, 노동과 소득, 주거와 차별의 문제까지 연결해 고민했던 그는 보건의료운동의 중요한 길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구체적으로 관여했던 활동은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에서부터 반전운동에 이르기까지, 다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다. 우리는 그의 삶과 발자취를 공적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의사'로서의 그의 삶은 많은 의료인에게 의미를 갖는다. 경제적 보상을 위해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비급여 진료를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컨설팅받는 것이 문제화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의료는 상품이 아니라며 환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누구나 필요할 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전념했던 의사의 삶은 그 자체로 지금의 흐름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말이 교과서에서나 볼법한 말이 되는 시대에, 그의 삶은 그 말이 현실 속에서 살아있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한 명의 훌륭한 의사의 미담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그가 남긴 뜻을 충분히 이어가는 일이 아닐 것이다. 문턱 없는 병원이 예외적 선의에 기대지 않고 보편적 구조로 자리잡도록 만드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겨졌다. 더 나아가 진료실 바깥에서 이어간 사회 변혁을 위한 그의 헌신도 기억해야 한다. 추상적인 가치를 말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구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단지 시간이 날 때만 틈틈이 정치적 구호를 외치거나, 당위적으로 말만 얹는 활동가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건 사람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지금의 구조는 너무 공고해서 다른 형태를 떠올리기조차 어렵고, 변화의 가능성 자체를 의심하게 되는 때가 많다. 그런 시대에 그의 말과 삶의 궤적은 다른 의사, 다른 의료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우석균 선생은 의사이자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현장의 노동자와 환자,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그의 실천은 전문가가 약자를 대신해주는 시혜에 머물지 않았다. "풀뿌리 투쟁 없이는 어떠한 법과 제도도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룰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은, 사회를 바꾸는 힘은 결국 주민과 당사자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이었다. 그는 의료의 문턱을 낮추는 일도, 건강권을 확장하는 일도 시민 스스로가 권리를 요구하고 함께 조직될 때 비로소 지속될 수 있음을 일러주었다.
그가 투쟁했던 사안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싸움은 때때로 놀라울만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형태만 바뀌어서 이어지기도 한다. 건강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의료의 상품화는 기술과 시장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소수의 헌신이나 몇몇 전문가의 양심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진정으로 그의 투쟁을 잇는다는 것은 그가 만들고자 했던 문턱 없는 세계를 사회의 보편적 구조로 만드는 일이며, 이를 지속 가능한 힘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환자와 돌봄 당사자, 노동자와 장애인, 지역 주민과 현장의 비의료 노동자들이 의제를 만들고 운동의 중심에 설 때 비로소 병원의 문턱이 낮아지고, 건강권이 보편적 권리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석균 선생의 삶을 기억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헌신을 기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가 남긴 과제를 우리 모두의 과제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의료는 시장의 상품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공적인 것이라는 점을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환자로서, 장애인으로서, 노동자로서, 지역주민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낼 때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하는 사회가 가능해진다. 우리 연구소 역시 그 목소리들이 모일 수 있도록 담론을 만들고 연대를 넓혀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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