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정보'의 어려움에 대해 실감한 적이 있다. 소위 말하는 앱테크가 취미인 할머니께 어플리캐이션 속 퀴즈 풀이를 가르쳐 드리면서다. 문제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스마트폰 조작 방식도 점점 복잡해졌고, 할머니는 손자가 없을 때에도 당신께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그 조작법을 원천부터 익히길 원했다.
먼저 깨달은 건 내가 사용하는 용어에 영어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스크롤, 페이지, 드래그, 앱, 클릭... 평소 사용하던 영단어들을 한국어로 적절히 바꾸는 것에서부터 난항을 느꼈다. 말하자면 일종의 정보격차다. '모르는 이'가 어떤 부분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지'를 적절하게 파악하는 것부터가 '아는 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할머니는 모르는 단어를 속사포처럼 내뱉는 손자에게 하나하나 '모르겠다'고 말하기보단, 설명을 죽 듣다가 마침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고백하는 쪽을 택하곤 했다. 당연하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 또한 '모르는 이'에겐 부끄럽고 면목 없는 일일 수 있다. 전달자의 태도나 실력이 형편 없을 수록 더더욱 그러할 테다.
더 큰 문제는 30대 청년과 80대 노년이 스마트폰 조작법을 '인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보고 있는 화면보다 아래 화면을 보기 위해선 스크롤을 내려야 한다. 나는 이를 '할머니, 여기서 화면을 내려봐'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그런데 스크롤을 내리기 위해선 화면에 닿은 손가락을 '올려야' 한다. 그게 문제였다.
평소 스마트폰 기본 기능을 무리 없이 사용하는 할머니지만, 무의식적으로 활용하던 조작방식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설명하자 외려 혼란이 온 듯했다. "내려봐. 내려야죠. 내가 한 것처럼." 몇 번을 다그친 뒤에서야 손가락을 '올려야' 화면이 '내려가는' 과정이 할머니에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 간의 이 같은 엇박자가 정보를 전달하던 내 개인의 태도와 실력 문제라는 점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이 경험은 30여년 평생을 대부분 정보습득에 있어 주류적 존재로만 살아온 내게 '쉬운 정보'의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도, 정책공보물이나 근로계약서도, 누군가에게 우리 사회는 너무나 '어렵다.'
"글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글의 뜻이 잘 와닿지 않을 때, 설명을 들었지만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멈춰 선다. 누군가에게 다시 묻고, 타인의 결정에 의지하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그런 상황에 놓인 발달장애인을 수없이 봤다. 그러면서 이해 없이 이루어진 선택은 온전한 선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본문 중.)
<쉬운정보>는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정보 약자를 위해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 '소소한 소통'의 대표 백정연이 지난 10년의 고군분투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의 쉬운 정보 제작기는 사회에서 이른바 '보통'의 위치를 누려온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정보격차를 메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실감케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구조적으로 어렵다.' 저자의 활동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중요한 정책 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여야 한다"는 발달장애인법 제10조로부터 시작됐지만, 역설적으로 '법이 있음에도' 구체적인 기준과 합의가 없어 '법이 작동하지 않는' 현실로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쉬운 정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생소한 사회에서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심지어 정보약자 당사자들도 쉬운 정보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사회적기업 소소한 소통의 활동을 나열한 기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보 약자의 접근과 이해를 가로막는 구조를 함께 다시 살펴보자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제안"이다.
발달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위해 시작한 쉬운 정보 사업에서 저자는 정보의 어려움이 비단 발달장애인 뿐만 아닌 이주민, 고연령층, 저연령층 등 광범위한 계층의 문제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정보의 접근이란 개념 또한 확장된다. 정보는 스마트폰이나 어플리캐이션 사용법 같은 일상생활을 넘어 정책공보물이나 판결문에 대한 이해, 문화예술의 향유, 연애나 취업과 같은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마주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막다른 길에서 힘겨워 하다가, 기어이 일보 전진하며 다음을 꿈꾸는 저자의 경험은 우리 사회에서 쉬운 정보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쉬운 정보를 고려할 필요 없었던 정보의 주류들에게도 더 없이 소중한 기록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뒷사람들 눈치에 원하는 햄버거를 선택하지 못한 어떤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제 익숙한 사례다. 스마트폰 좀 만질 줄 아는 손자가 귀가할 때까지 앱테크 활용을 망설이는 할머니처럼, 또 다른 누군가가 근로계약서 앞에서, 행정서비스 앞에서, 판결문 앞에서 주저하고 있다. 누군가의 "이해 없이 이루어진 선택"에 지나치게 둔감해 온 사회를 돌아볼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