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여야 공동발의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 회복률이 최소 50%는 보장될 수 있게끔 일정 금액을 국가가 지원하는 '최소보장제'와 함께 보증금 회수가 극도로 어려운 피해자에게는 최소보장금을 '선지급'하는 제도가 도입된다. 이는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의 요구이기도 했다. 내년 5월이면 특별법 시효가 끝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매일같이 애를 태우고 있다. 지난 3년간 특별법을 통해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은 3만 7000명(지난 2월 28일 기준)에 달한다. 이번 개정안이 무사히 통과돼 피해자들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
한편 전세사기가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도 이어진다. 지난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임대인을 대신해 갚은 보증금 규모가 전년 대비 55.1% 급감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법원에 접수하는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 건수도 전년 대비 40.8% 급감했다. '사건'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니 전세사기 문제가 해결돼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는 '전세사기'라는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 있는 걸까?
주거제도가 아닌 금융제도로서 전세
지난달 10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전세사기 근절대책'이라며 주택정보공개 확대, 공인중개사 책임 강화 등을 지시했다. 하지만 전세사기 근절은 말 그대로 문제의 뿌리를 정확히 짚고 이를 해소할 때 가능하다. 그 뿌리는 전세 제도에, 다시 말해 전세 제도가 톱니바퀴로 기능해온 한국 주택시장의 매커니즘 자체에 있다. 전세 제도가 한국 주택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해왔는지 보지 않고 전세사기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전세사기 '근절'도 요원한 일이 된다. 진정으로 전세사기 없는 사회로 가는 길을 찾고 싶을 때 우리가 함께 다뤄야 할 질문은 바로 전세라는 제도 자체다.
한국에서만 보편화됐다는 전세 제도는 '살만한 집'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주거제도이기에 앞서, 원활한 '주택자금조달'을 돕는 사적 금융제도로 오랫동안 기능해왔다. 그러지 않고서야 전세로 피눈물 흘린 세입자들이 이토록 오래 방치될 리 없다. "전세 사기 45명 구속", "상습 전세금 사기에 세입자들이 7000만 원을 잃었다"는 1980년대 초 <조선일보> 보도처럼 보증금 떼이는 문제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사회문제다. 전세로 살다가 어렵게 모은 목돈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은 그 자체로 '주거불안'이었다.
반면 주택시장에서 주택구매자의 자금조달 방법으로서 전세 제도는 부동산 시장이 커지고 집값이 오를수록 더욱 공고해졌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금융화 속에서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제도를 도입·확대했다. 국가가 앞장서 '주택시장'이 형성되고 작동할 수 있도록 금융제도와 정책을 세우고, 금융권과 건설자본은 이 구조 아래 자신들의 이윤을 안정적으로 쌓아갔다.
이런 주택정책의 틀이 잡히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정부는 건설자본을 이용해 빠르게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최선책이라 봤다. 국가의 역할은 민간자본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고 정부 부담은 낮추는 방식이 곧 주택정책의 핵심이었다. 1980년대에 시작된 선분양 제도, 청약 제도, 택지개발의 공영화 등은 효과적으로 건설자본의 사업성을 보장해왔다. 민간자본을 통해 주택공급을 하는 것이 곧 주택정책일 때, 이윤 창출을 최우선 목적으로 삼는 자본의 사업성 보장은 정책의 우선순위가 된다. 민간자본을 더 많이 끌어들일 수 있어야 부동산 시장이 커지고 주택공급도 수월해진다.
개인들이 목돈을 끌어오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채권, 청약저축, 주택구입자금대출, 전세대출 등은 모두 이런 구조를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국가가 설계하고 도입한 제도다. 온갖 금융제도를 동원해 주택소유주들이 더 많은 목돈을 끌어올수록, 건설자본이 더 많은 아파트를 지을수록, 정부의 주택공급 실적이 더 높아진다.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상품은 부동산 시장을 더욱 부풀리게 되고, 2008년 전세대출정책 도입은 이를 더 부추겼다.
주택소유주에게 전세 보증금은 주택담보대출과 더불어 주택의 구입비용을 충당하고 원하는 수준의 집값 상승분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지렛대가 된다. 세입자에게 집을 빌려주기 위해 '전세'를 내놓는 주택 소유주는 없다. 주택을 추가 구입하거나 건축비를 충당하고 싶을 때, 혹은 다른 용도의 목돈이 필요할 때 전세를 활용한다.
정부는 이를 '주택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하고 확대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제도는 점차 완화돼 한때는 주택가격의 100%에 달하는 전세도 국가가 보증해 대출이 가능했다. 만약 주택가격을 부풀릴 수 있다면 실제 집값보다 높은 전세 보증금을 취할 수 있게 됐다.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집을 사고팔며 돈을 벌 수도 있었던 것이다.
전세사기 유형 중 가장 많은 비중이 '무자본 갭투기'인 것은, 정부의 주택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다. 전세사기 사태 이후 현재는 주택가격의 90%까지만 대출보증이 가능하다지만, 여전히 세입자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오히려 세입자가 대출받는 금액의 80~90%만 보증해주는 것으로 보호범위가 축소됐다. 전세 제도가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조치다.
'그래도 전세가 낫다'는 말로 괜찮아질 수 없는
전세사기 불안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에도 여전히 많은 세입자는 '월 주거비를 낮추기 위해' 전세를 이용한다. 때로 전세는 자가 마련의 직전 단계로도 여겨진다. '그래도 전세가 낫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 데는 각종 대출상품을 도입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전세대출과 같은 금융제도가 계속해서 집값 상승을 견인하고 부동산 시장 규모를 확대하는데 쓰이면서 임대료도 함께 상승한다. 세입자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전세를 택한다. 이는 전세대출을 택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출이 나오지 않았다면 당연히 그 집에 안 들어갔겠죠. 대출이 나오니까 들어간 거였어요"라는 전세사기 피해자의 증언은 전세살이가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76%가 청년층인 것은,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전세대출제도가 활성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도시연구소의 <깡통전세 전세사기 피해자 실태조사(2023)>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30세 미만 청년 중 87.6%가 전세 보증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 이미 전세는 전세대출이라는 금융상품과 사실상 한 몸이다.
'대출 없이 전세 살 수 없다'는 말은 전세 제도가 세입자를 자발적인 채무자로 만들어야만 유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또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주거의 권리'는 세입자 본인의 신용 수준에 맞춰 포기해야 하는 욕심이 된다. 지층에서 지상으로, 곰팡이 없는 집으로, 볕 잘 드는 집으로 그렇게 좀 더 괜찮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은 그가 조달가능한 대출액에 따라 하나 둘씩 포기해야 하는 선택지가 된다. 이 질서를 그대로 둔 채, 세입자가 겪는 부정의와 불안을 걷어내기 어렵다.
한국의 주택정책이 전세 제도를 진정 주거제도로 사용하려 했다면, 보증금 미반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응당 전세 제도의 필수 전제로 작동해야 했다. 하지만 떼인 보증금 규모가 500만 원, 1000만 원을 넘어, 대출 낀 억대의 보증금이 되기까지 그런 제도 변화는 없었다. 사회적 재난이라는 '전세사기'를 겪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간 정부의 주택정책은 과열도 침체도 아닌 '부동산 시장 안정화'였을 뿐, 세입자들의 주거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장을 통한 주택공급으로 주거정책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 정부에 세입자 주거비 부담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세입자 보증금 미반환 문제는 '사적 개인'들의 문제였을 뿐이다. 주거비 부담을 외면할 수 없게 되자 이자까지 지원해주며 세입자에게 전세대출을 알선하고 세입자를 기어코 '자발적 채무자'로 만든 것은 국가다. 그러나 전세와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유지되던 집값이 무너질 때, 그 피해는 오롯이 세입자의 몫이 된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 되는 주거 제도로
세입자 주거난을 해소하겠다며, 주택임대사업 활성화와 전세대출을 확대해 온 정부 정책이 '전세사기'를 만들어냈다. 국가에 전세사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나 합당한 요구라는 것을 많은 피해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2023년 2월 28일,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 나라를 원망하며 죽음으로 탄원한 첫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에 이어 잇따르는 죽음 속에서 피해자들이 전국에서 모여 국가의 책임을 촉구했다. 데모 한 번 해본 적 없는 이들이 생전 처음 피켓을 만들고 스크럼을 짰다. 국회 앞에서 농성장을 열고, 수만 명의 서명을 모으고, 매일같이 집회를 열고 투쟁했다.
2023년 5월, 윤석열 정권에서도 전세사기특별법은 기어코 제정됐다. 이들의 피눈물로 만들어진 법은 수만 명의 피해자를 구제했다. 피해자들은 서로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정부는 전세사기특별법의 시효를 내년 5월로, 피해를 인정해주는 계약을 작년 5월 신규 계약 건 까지로 제한하며,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사건의 '종결'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전세사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세입자들의 불안으로 남을 것이다.
당장 전세 제도가 내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한 단계적 조치가 도입돼야 한다. 주택가격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보증금을 높일 수 없도록 하는 '보증금 상한제'는 가장 빠르게 도입해야 할 1차 과제다. 결국 전세의 비중과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세가 주택시장의 자금조달 통로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던 주택 공급 중심의 정책이 변해야 한다. 주택시장의 자금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전세대출을 받게 하고 이자를 지원해 왔던 게 그동안 정부 정책이었다.
이제 임차인이 지불하는 주택 사용료로서 '월세'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보증금을 포함한 임대료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주거 정책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지닌다. 집은 인권의 문제다. 정부가 직접 주택을 공급하고 운영하는 공공주택을 포함해, 민간 주택시장에 대한 공적 개입이 모두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주거 공공성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주택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 정책 아래 형성된, 사람보다 돈이 우선되는 주택시장의 기존 질서를 바꿔야 한다. 단지 집이 필요했을 뿐인 세입자가 희생자가 되는 일을 더이상 반복할 순 없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