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몰락'과 '알함브라의 추억'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2022년 여름, 나는 앞으로 5년 안에 이룩할 목표 하나를 정했다. 클래식 기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마스터하는 일이었다. '5년'은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였다. 윤석열이 집권한 뒤 세상만사가 싫어지고 마음속 불길이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이때 생각해낸 것이 기타 연습으로 5년을 버텨보자는 궁리였다. 야만의 시간을 외면하기 위한, 나만의 은신처였다.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이다. 어떤 일에 몰두하면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간다. 시대의 소음을 음악의 선율로 상쇄하며 세월의 강을 건너기로 했다. 강물에 몸을 맡기고 한 박자씩 노를 저어 가다 보면 언젠가는 반대편 언덕에 닿을 것이다. 그때 내 손에 영롱한 연주곡 하나 남는다면, 그것으로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 이하 알함브라)은 근대 기타의 아버지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남긴 불후의 명곡이다. 이 곡은 트레몰로 기법 연주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트레몰로는 손가락이 빚어내는 아득한 물방울의 파문이다. 오른손 엄지가 저음의 토대를 받치고, 다른 세 손가락이 멜로디를 촘촘히 튕겨낸다. 실이 풀리듯, 꽃잎이 터지듯 음들은 찰나에 명멸하지만, 그 순간들이 겹겹이 이어지며 듣는 이의 넋을 붙든다.

알함브라는 아름다운 꿈의 궁전이지만, 내게는 난공불락의 성채였다. 트레몰로 연주는 '뮤지컬' 이전에 '피지컬'의 영역이다. 손가락의 속도와 지구력이 관건이다. 육상 달리기에 비유하면, 100미터를 11~12초대에 주파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체력으로는 20초 안에 들어오기도 버겁다. 알함브라 연주는 단거리가 아니라 중거리다. 1500미터를 4분 안에, 그것도 출발선부터 결승선까지 똑같은 속도와 보폭으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달려야 한다. 달리기의 요체는 다리와 심장이고, 트레몰로는 손가락과 신경 조직이지만, 그 본질은 같다.

아마추어 중에도 알함브라를 능숙하게 연주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어린 시절, 늦어도 20~30대에는 시작한 사람들일 것이다. 나처럼 쉰 살이 넘어 늦깎이로 입문해 이제 예순 후반에 접어든 나이에는 거의 부질없는 희망에 가깝다. 손가락의 물성이 이미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각했다. '다섯 해를 붙들고 늘어지면 흉내쯤은 낼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앞으로 5년간 세상사 시름을 잊고 살기에는 이만한 방법도 없을 것이다.'

그 뒤 하루에 몇십 분이라도 매일 연습을 거르지 않으려 애썼다. 트레몰로 연습은 달리기와 다르게 처음부터 빨리 뛰는 게 아니라, 천천히 또박또박 모든 음을 정확히 내는 훈련을 차곡차곡 쌓아 점차 속도를 높여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진전은 더디기만 했다. 선율이 물처럼 흘러야 하건만, 내 손은 자꾸 거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오른손은 엇박으로 흔들렸고, 왼손은 지판 위에서 길을 잃었다. 계절이 몇 차례 바뀌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사이 윤석열 정권의 폭정은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갔다.

▲AI 생성 이미지

2024년 7월 말께, 내 '알함브라 5개년 추진계획'을 알고 있던 한 후배가 말했다. "좀 서둘러야겠는데요. 아무래도 윤석열 임기 다 못 채우고 탄핵될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을 거야. 박근혜 때 경험이 있어서 보수 세력이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걸." 그때만 해도 그가 계엄으로 스스로 자폭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 내란 사태가 터졌다. 알함브라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물론 '바람직한 차질'이었다. 한가하게 기타를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동안 중단했던 칼럼도 다시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렸고, 그해 6월 대선도 무사히 끝났다. 다시 편한 마음으로 기타를 손에 잡을 수 있게 됐다.

애초의 계획을 수정해 '연습 기간 연장' 결정을 내렸다. 내란 재판 1심 선고일까지를 새로운 마감 시점으로 삼았다. 국가적 사변에 의한 불가피한 사정 변경이 있었으니, 그 정도의 기한 연장은 정당하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2026년 2월 19일, 마침내 윤석열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선고가 내려졌다. 판결 내용이야 어쨌든 내란 사태의 큰 매듭 하나가 지어졌고, 나의 알함브라 여정도 일단 종착역에 다다랐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1심 재판 마무리 '기념'을 겸한 '총결산'을 해야 할 시간이다. 알함브라를 정성껏 연주해 핸드폰으로 녹음했다.

들어보니 아직은 갈 길이 먼 수준이었다. 옥구슬을 굴리는 듯한 영롱한 트레몰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음들은 맑은 물방울이 아니라 거친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속도도 일정치 않고, 박자는 곳곳에서 흔들렸다. 그나마 비슷하게 흉내를 내는 정도라도 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윤석열이 임기를 온전히 채웠다 한들 내가 명연주자가 될 리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 미숙한 연주를 전적으로 내 손가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흠결의 상당 부분은 윤석열에게 책임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윤석열의 시간이 파괴한 것은 단지 민주주의와 국가 시스템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평온한 삶을 무너뜨리고, 가슴 속에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깊숙이 박아넣었다. '윤석열 때문에 알함브라 연습 일정이 깨졌다'는 말은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그가 휘두른 야만의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상이 치명적 손상을 입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삶이 회복 불가능한 균열을 겪었는가. 폭정의 무거운 둔기에 맞은 타박상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푸른 멍으로 남아 극심한 통증을 안겨주고 있다. 끊어진 기타 줄은 갈아 끼우면 되지만, 사람들의 부서진 시간은 되돌릴 길이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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