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에서 스스로 '피고' 되는 게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인가

[기고] 안보실장의 ‘자기기소’, 협상력 깎는 자해행위

국가안보실장의 언어는 곧 국가의 협상력이다. 안보실장은 국내 여론을 향해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외 협상에서 한국의 원칙과 '레드라인'을 정하고, 부처를 조정해 집행 가능한 합의를 만들어내는 최종 책임 라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對)한국 25% 관세 재인상' 발표를 전제하며, 관세 문제·쿠팡 논란·안보 후속 협의를 한 줄로 연결한 발언은 위성락 안보실장의 발언은 내용보다 형식이 더 위험하다. 사실관계의 진위와 무관하게, 그 발언은 한국을 협상의 '피고'로 세우는 자기기소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상은 도덕 재판이 아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은 반성문이 아니라 조건이다. 우리가 먼저 "우리가 못했다"는 서사를 공개적으로 확정해 주는 순간, 상대는 그 문장을 근거로 요구의 강도를 높이고 비용을 전가한다. 특히 "관세 협상이 무너졌다"는 식의 규정은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협상은 대부분 타결과 파기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이어진다. 조정과 지연, 재협의가 반복되는 국면을 최고 조정자가 먼저 '붕괴'로 단정하면, 이후 실무는 거의 예외 없이 방어전으로 전환된다. 문제는 실무가 아니라 프레임이다. 프레임을 내주면, 실무는 지키는 싸움밖에 남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통상과 안보를 한 프레임으로 엮어버린 데 있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 머릿속에 박힌 잘못된 프레임에 있다. 이 꼬인 실타래는 통상과 안보를 '경제안보'라는 이름으로 한 덩어리로 묶어버린 순간부터 시작됐다. 그 결과, 동맹의 언어는 "가치"에서 "청구서"로 빠르게 이동했고, 트럼프식 거래 정치가 돌아오자 그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됐다.

이번 인터뷰는 그 취약점을 '사실상 확인'해 준다. "관세 합의가 흔들린 영향이 다른 분야에 미치고 있다", "예정돼 있던 협의들이 지연되고 있다"는 말로 관세 차질의 여파가 안보 후속 협의로 번져 핵추진 잠수함·우라늄 농축·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같은 민감 의제의 일정이 늦어지거나 멈출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남겼다.

더 나아가 "쿠팡, 디지털 무역장벽, 온라인플랫폼법, 손현보 목사…다 관련된 이슈"라고까지 단언했다. 이 순간 한국은 협상의 주도자가 아니라, 통상에서 발생한 충격을 안보에서 감당하는 나라처럼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신뢰를 갉아먹고, 대내적으로는 불필요한 분열 프레임을 키운다.

무엇보다 안보 의제는 속도전이 아니라 통제·검증·제도 설계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미국 협상팀이 지금쯤 한국에 와 있어야 했다"는 말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제대로 못해 협상이 지연됐다"는 자인으로 읽힐 위험이 크다. 안보실장이 스스로 그런 해석의 여지를 열어주는 순간, 대미협상력은 물론 미·중·일과의 관계 구조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전략도 설 자리가 좁아진다.

쿠팡 대목도 같은 결이다. 쿠팡은 한국에서 성장해 한국 시장·고용·소비 생태계에 깊이 연결돼 있지만, 지배구조와 상장 등 제도적 기반은 미국과 맞닿아 있다. 바로 그 경계성 때문에 기업 이슈는 미국 정치에서 언제든 통상·규제·여론전의 압박 카드로 전환될 수 있다. 이때 안보실장이 취할 태도는 "해명"의 언어가 아니라, 사실관계·관할권·규범의 층위를 분리해 과잉 정치화를 차단하고, 정부가 통제 가능한 제도적 정리와 재발 방지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고백이 아니라 관리다.

이번 인터뷰에서 더 심각한 대목은 '내부'에 대한 언어다. 위 실장은 "한국 외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가 이념성", "아마추어리즘이 많아진 것도 문제"라고 말하고, "성과에도 나를 경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는 취지로 덧붙였다. 국내의 다양한 목소리와 견제, 부처 간 이견, 전문가·시민사회의 비판은 협상을 무너뜨리는 '잡음'이 아니라, 오히려 협상가가 활용할 수 있는 '제약의 힘'이다. 상대가 "한국은 국내 절차와 여론 때문에 이 선은 넘기 어렵다"고 믿을수록, 그 선은 레드라인으로 굳어지고 가격은 내려간다.

그런데 이를 '이념성·아마추어리즘'으로 싸잡아 약점처럼 말하는 순간, 내부의 다양성은 협상 자산이 아니라 '정리해야 할 장애물'로 바뀐다. 상대는 "한국 내부 제약은 진짜 제약이 아니구나"라고 학습하고, 시간 끌기와 압박 강도를 높일 유인을 얻는다. 협상에서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스스로 비하하는 것은, 레드라인을 스스로 지우개로 지우는 행위에 가깝다.

안보실장의 책무는 분명하다. 통상은 통상대로, 안보는 안보대로 철저히 분리해 서로를 인질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내부에서 치열하게 토론하되, 일단 조율된 결정은 대외적으로 일관되게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언어를 절제해야 한다. 협상전략은 대외 선언이 아니라, 상대가 우리의 패를 쉽게 읽지 못하게 만드는 원칙과 침묵의 규율이어야 한다. 자책의 문장은 곧 국가의 가격표가 되기 때문이다. 불만과 문제 제기는 비공개 채널에서 단호하게, 공개 메시지는 원칙·일정·대안으로 제한해야 한다. 그 기준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떤 '설명'도 안보실장의 책무를 대신할 수 없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1월 14일 일본 오사카에 마련된 대한민국 프레스센터에서 한일 정상회담 관련 주요성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동엽

김동엽 교수는 해군과 국방부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1년 중령으로 예편했습니다. 국방부에서 북핵과 군사회담을 담당했고, 예편 이후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 민족공동체지도자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지금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저술 및 연구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