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창] 견제는 권한이고, 존중은 의무다

지방의회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라는 시민의 위임이다. 행정사무감사와 시정질문, 예산 심의 과정에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법이 부여한 책무다. 이 권한이 흔들리는 순간, 지방자치는 형식만 남은 제도로 전락한다.

3일 천안시청공무원노동조합이 발표한 ‘의정활동 자료요구·질의방식에 대한 행정현장 인식조사’를 둘러싼 논란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한쪽에서는 이를 의회의 견제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조직적 저항으로 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행정현장의 고통이 수치로 드러난 첫 공식조사로 평가한다. 답은 어느 한쪽에 있지 않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1.6%가 자료 제출 기한이 촉박하다고 느꼈고, 83.8%는 자료 준비로 인해 본연의 행정업무가 지연됐다고 답했다. 이는 단순한 불만제기로 치부하기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수치다. 동시에 이 결과는 왜 상시적으로 관리돼야 할 행정자료가 의원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급히 새로 만들어야 할 업무’가 되는지, 행정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되묻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논의를 멈춘다면 절반만 본 셈이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62.5%는 ‘의정활동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대다수의 의정활동이 정상적인 범주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소수의 사례가 반복되고, 그것이 특정 의원을 중심으로 누적되며 의정활동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설문 자유응답에는 단순한 자료요구를 넘어, 의정활동의 이름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사례들도 구체적으로 담겼다. 행정사무감사나 시정질문 과정에서 작성 자료를 “초등학생 수준”이라고 공개적으로 폄하하거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성을 지르며 반복 질책했다는 증언, 설명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공개석상에서 망신을 줬다는 호소가 적지 않다. 이는 견제의 문제라기보다 방식의 문제다.

특히 일부 의원의 경우, 회기 직전이나 당일에 5년·10년 치 자료를 일괄 요구하고, 제출이 늦어질 경우 태도를 문제 삼거나 추가 압박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감시와 견제의 영역을 넘어, 권한을 앞세운 위력 행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의회의 정당한 자료요구권이 공무원의 인격을 훼손할 권한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장기 자료요구 자체를 ‘갑질’로 일반화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혈세가 투입되는 보조금과 정책사업에 대해 장기적·입체적 검증은 필수적이다. 자료요구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인권침해’ 프레임이 남용된다면, 이는 시민의 알권리를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견제와 존중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느냐다. 의회는 스스로의 권한을 축소할 필요는 없지만, 요구의 범위와 기한, 전달 방식이 합리적인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집행부 역시 자료 제출을 ‘부가업무’가 아닌 본연의 책무로 인식하고, 상시 공개와 체계적 관리라는 행정혁신으로 응답해야 한다.

견제는 권한이고, 존중은 의무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만 지방자치는 시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번 설문이 정치적 공방의 재료에 그칠지, 의정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출발점이 될지는 이제 천안시의회와 집행부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장찬우

대전세종충청취재본부 장찬우 기자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