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새벽 1시에 "한동훈 제명" 기습 발표

尹 사형 구형 3시간만에…'절연'은커녕 복수? 화풀이?

국민의힘이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 14일 오전 1시경 당 윤리위 의결로 '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익명 당원게시판에 한 전 대표와 그 가족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른바 '당게 사건'에 대한 징계다. 장동혁 지도부에 의한 한 전 대표 축출은 이로써 9부 능선을 넘어섰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는 전날 오후 5시께부터 8시간여 동안 회의를 열어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여부 및 수위를 논의한 결과 "피징계자 한동훈을 당헌·당규 및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 제1·2호, 윤리규칙 제4·5·6조 위반을 이유로 제명에 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윤리위 의결이 징계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최고위 결정만이 남은 상태이지만, 장 대표가 주도하는 국민의힘 최고위가 이를 뒤엎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장 대표는 윤리위 회의 하루 전인 지난 12일 KBS-TV 인터뷰에서 "윤리위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윤리위 결정을 존중하고 이 문제를 거기서 종결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었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징계 의결문에서 "한 전 대표 또는 가족이 문제 행위를 실제로 하였는가?"라고 스스로 묻고 "한동훈의 가족들이 게시글을 작성했다는 사실은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피조사인(한동훈)이 직접 게시글을 쓴 사실이 있는가는 본 중앙윤리위원회에서 확인하는데 한계가 있다", "자료에 대한 접근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피조사인이 형사사법적 절차가 요구하는 수준에서 실제로 게시글을 직접 쓴 적이 있는지는 본 윤리위원회는 밝힐 수 없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윤리위는 "다만 영미법의 민사상에서 요구하는 '상대적 증거의 우월의 가치' 정도의 수준에서는 피조사인이 게시글을 작성했다고 합리적으로 의심되어진다",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조사인이 게시글을 작성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근거로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를 강행하겠다고 했다.

또 '한 전 대표 또는 그 가족이 당 홈페이지 익명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와 당 소속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면 그것이 제명에 해당하는 비위행위인지'에 대해 윤리위는 "중대한 당헌·당규·윤리규칙 위반"이라고 판정했다. 글 건수가 1000여 건에 달하고, 반복적으로 게시된 양상 등을 보면 "조직적 공론조작·왜곡의 경향성이 의심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윤리위는 이같은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8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결정문을 통해 한 전 대표를 비난했으나, 핵심 내용은 '사실은 밝힐 수 없으나 글을 쓴 것으로 의심된다', '글을 쓴 것은 조직적 공론 조작으로 의심된다'는 두 대목이다.

윤리위는 특히 한 전 대표와 친한계 정치인들이 윤민우 중앙윤리위원장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이를 "테러리스트의 전술", "재판부를 폭탄테러하는 마피아나 테러단체에 비견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를 징계 양정의 중대한 근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피조사인이 반성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윤리위의 이날 결정은 장동혁 지도부가 주도한 일련의 흐름에 이어 나왔다. 지난해 8월말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장동혁 지도부는 9월 29일 당무감사위원장에 이호선 국민대 교수를 임명했고, 당무감사위는 이후 3개월여 간의 조사를 거쳐 지난해 12월 16일 친한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한 당원권 정지 2년 징계 권고를 한 데 이어 같은달 30일 한 전 대표가 '당게'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발표했다.

이보다 앞서 김 전 최고위원에 대해 징계 대신 '주의' 조치만 내렸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당 지도부의 압박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지난해 11월 17일 사임했고, 후임 위원장으로는 윤민우 가천대 교수가 임명됐다. 윤 위원장은 과거 언론 기고에서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를 옹호해 논란이 된 인물이었다.

윤 위원장은 지난 8일 최고위에 의해 정식 임명됐고, 그 이튿날인 9일 1차 회의를, 이어 13일 2차 회의를 열었다. 한 전 대표에 대한 제명 의결이 나온 것이 바로 이 2차 회의였다.

즉 '당무감사위 재구성→당게 사건 조사 및 윤리위 회부→윤리위 재구성→윤리위 회의 개최→징계 결정'까지 한 전 대표와 친한계를 겨냥한 일련의 과정은 일견 정해진 결론을 향해 짜여진 것으로 보일 여지가 없지 않다.

이는 장 대표의 지지층인 강성 보수층과 '윤 어게인' 세력이 한 전 대표에 대해 가지는 적대감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이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권을 잡은 장 대표로서는 구조적으로 한 전 대표와의 화해·통합을 도모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장동혁 지도부는 윤리위 결정은 지도부와 무관한 독립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당장 당 내에서도 "당무감사위나 윤리위가 당 대표와 전혀 무관한 독립적인 기구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라는 지적이 소장파 의원들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관련 기사 : 국힘 소장파, 장동혁에 우려 전달…"당게 문제 '통합' 관점서 해결해야")

공교롭게도 한 전 대표에 대한 국민의힘의 제명 의결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죄 혐의 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은 지 약 3시간30분만에 나왔다. 한 전 대표는 12.3 비상계엄 당시 국민의힘 대표이면서도 이를 비판하고 계엄 해제를 촉구한 행보를 보여, 보수진영 내에서 상징성을 가진 인물이다.

국민의힘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윤석열과의 절연'을 당 안팎에서 요구받는 가운데,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 구형이 나온 직후 당내 대표적 '반윤' 인사인 한 전 대표에 대한 제명 의결이 이뤄진 장면은 자못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단적 지지층이 사형 구형에 대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이 적대·증오하는 대상인 한 전 대표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선제적으로 이뤄진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 제명 의결이, 단지 유력 당권·대권 주자인 한 명의 정적 제거 차원을 넘어 국민의힘의 향후 진로를 시사하는 단초인 이유다. 13일 오전 국민의힘 내 개혁성향 의원모임 '대안과 미래'가 장 대표에게 당게 문제와 관련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달라고 요구한 것 역시 이와 비슷한 살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는 윤리위 발표 약 30분 후 소셜미디어에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짧은 글을 올렸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일 국회 본관에 도착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해달라고 요구했고, 이후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면서 극우·강성보수 세력으로부터 눈엣가시가 됐다. ⓒ연합뉴스

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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