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 참사 1년인데… "책임자 처벌 0건, 정보 공개 0건"

[현장]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서울 시민 추모대회

지난해 12월 29일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1주기를 앞둔 가운데, 상경한 참사 유족들이 독립적인 사고조사위원회를 하루 빨리 구성하고, 조사 결과와 자료를 유족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2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국토교통부 등의 주최로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서울 시민 추모대회'가 열렸다. 무안공항 참사 유족 100여 명을 포함해 1999년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참사, 1999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2021년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참사, 2022년 이태원 참사 유족 등이 함께 참가했다.

정부 측에선 강희업 국토교통부 2차관과 방현하 12.29 여객기참사피해자지원단장이, 국회의원으론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참여했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활동하는 고 이한빛 PD의 유족 이용관 씨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등도 자리를 지켰다.

이날 무안공항 참사 유족들은 모두 '진상 규명'이 적힌 푸른 색 조끼를 입었다. 유족들은 독립된 조사기구와 철저한 진상규명, 투명한 정보공개 등을 요구하며 무안과 서울에서 여전히 싸우고 있다. 지난 7월 3일부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매일 1인 시위와 농성을 진행 중이다. 참사 희생자 179명에 맞춰, 오는 28일까지 179일 간 대통령실 앞 직접 행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1년 지났는데,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답은 참담합니다. 현재까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책임자 처벌 0건, 정보공개 0건. 179분의 생명이 희생된 참사에서, 국가는 단 한 명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김유진 무안공항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유가족 발언을 시작하며 "국토교통부는 유족에게 단 한 장의 핵심 자료도 제대로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국토교통부 소속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지난 1년 동안 셀프조사, 밀실조사로 일관했다"며 "유족이 질문하면 침묵했고, 자료를 요구하면, 국제규정이라며 뒤에 숨었다"고도 밝혔다. 셀프조사는 참사 책임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조사위원회를 운영한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

조사위는 지난 7월 유족에게 조종사의 과실이 원인이라는 취지로 중간 조사 결과 일부를 전달했다. 유족은 이에 피해 확대의 직접적 원인이 된 콘크리트 둔덕이나 조류 충돌 등은 언급이 없었던 점, 조사 자료나 중간보고서 등을 유족에 전면 비공개했던 점에서 조사위 측에 크게 반발해 왔다.

그러다 지난달, 항공철도조사위가 12월 4~5일 중간 조사 결과 발표 형식의 공청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서 유족은 상경 투쟁을 시작했다. 지난 1일 대통령실 앞에서 삭발식을 열었고 밤샘 농성도 시작했다.

당시 조사위가 제안한 공청회 형식도 유족의 거센 반발을 샀다. 김 대표는 "'유족 참석은 20명으로 제한한다. 유족은 직접 발언하지 말라. 유족이 지정한 전문가만 발언할 수 있다. 단 5일 안에 전문가 명단을 제출하라.' 이것이 유족에게 허락된 것이었다"며 "공청회는 졸속 마무리 위한 형식적인 절차, 정부와 조사기구가 정해 놓은 결론을 1주기에 맞춰 포장해 발표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유족들의 투쟁으로 조사위는 예정한 공청회 일정을 연기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10일 항공철도사고조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조사위를 국무총리 소속의 독립 조사기구로 전환하는 내용이 골자다. 개정안은 지난 18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김 대표는 "그러나 조사위 소속이 바뀌었다고, 진실이 보장되진 않는다. 유족에 주어진 건, 그저 국토부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발언권 정도"라며 "둔덕, 조류, 국토부, 제주항공, 글로벌 대기업 보잉사 기체 결함까지, 성역 없이 조사할 용기가 있느냐? 그 조사를 가능케 할 전문 인력, 예산, 장비를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할 것이냐?"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제 다시는 치졸한 국가의 모습을 유족에게 보여주지 말라"며 "유족에게 위로의 말은 필요 없다. 진짜 위로는 철저한 진상규명이다"라고 밝혔다.

▲2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서울 시민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너무 보고 싶다" 오열 국토부 차관 "세심히 살피겠다"

이어 강희업 국토교통부 차관이 무대에 올라 추도사를 읽었다. 강 차관은 "정부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느꼈을 여러분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조사위원회를 국무조정실로 이관하는 법률이 지난 12월 통과된 만큼, 국토부 차원에서도 신속하게 이관 작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강 차관은 또 "유족 여러분의 일상회복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과제"라며 "정부는 유가족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 더 촘촘히,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세월호 참사 유족 김종기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대표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에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책 세워야 다시는 참사로 국민이 억울하게 희생당하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외치며, 지난 12년을 싸웠다"며 "하지만 진상은 아직 채 다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을 진 사람은 말단 직원뿐이고, 국가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송혜진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도 무대에 올라 "이태원 참사에 이어 무안공항 참사에서도 유족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음모론, 보상금을 노린다는 악의적 발언과 지역혐오 발언이 난무했다"며 "더 안타까운 건 2차 피해가 하나의 고정된 패턴처럼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유족들을 공격하는 이들이 이제 있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최근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참사 등 매년 새로운 참사가 발생하고 유족 수는 늘어가기만 한다"며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유족들께 감히 말씀드린다. 이 싸움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세월호 유족이 10년 넘게 싸운 토대 위에서 이태원 유족은 특별법을 만들었다. 오늘 유가족이 요구하는 조사위 독립, 투명한 조사, 온전한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발언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조종사 개인의 잘못으로 사고 원인을 몰고 가는 건 앞으로 국가가 시민 안전을 홀대하겠다는 의사 표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길이 비록 힘들고 지치더라도, 잘 견뎌내서 마침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길 바란다"며 "여러분들의 행보에 연대하는 시민들이 함께 할 것이니, 힘을 내시라"고 인사했다.

▲2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서울 시민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송경용 신부는 "추모행사에 정부 당국자가 단 두 명 나와 있다.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꼬집었다. 생명안전시민넷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 건설을 목표로 만들어진 단체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운동을 펼치고 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2020년 국회에 첫 발의된 이후, 5년째 표류 중이다. 22대 국회에서도 지난 3월 국회의원 77인이 공동 발의했으나, 아직 소관 상임위 심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송 신부는 "이 법이 통과됐더라면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눈, 비를 맞으며 거리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국민의 생명, 안전을 지키는 일을 가장 첫 번째 임무로 하는 정부와 국회는 왜 이 일을 정쟁으로 몰아가고, 왜 하루빨리 제정하지 않는가"라 비판했다. 이어 "참사가 벌어졌을 때 피해자 인권이 존중되고, 피해자에게 모든 정보가 정확히 전달되고, 피해자 중심으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그런 상식적인 나라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무안공항 참사로 아내와 두 아들을 잃은 김영헌 씨가 올라 망자에 대한 추모 편지를 읽자, 유족들이 앉은 무대 앞 편에선 "보고싶다", "너무 보고싶다"는 말과 오열 소리가 뒤섞여 퍼졌다. 여러 번 울음을 터트린 김영헌 씨는 편지 7장을 차례로 넘기며 "우리 가족을 파괴한 주범, 내 아내의 인생과 아들들의 청춘과 삶을 파괴한 주범, 그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라고 말했다.

끝으로 백미순 참여연대 공동대표, 안지중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조계종 법정스님, 박세희 진보대학생넷 대표 등이 무대에 올라 △무안공항 참사 진실 규명 △밀실·셀프 수사 중단 및 독립적 사고조사위원회 즉각 설립 △유족들에게 모든 정보 투명하게 공개 등의 요구안을 낭독했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29일까지 참사 2주기 추모 행사를 유가족 협의회와 진행한다. 오는 24일과 28일엔 무안국제공항에서 각각 '유가족의 밤' 및 '추모의 밤' 행사가 진행된다. 오는 27일엔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광주·전남 시도민 참사 추모대회'가 열리며, 1주기 당일인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1주기 추모식이 개최된다.

▲2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서울 시민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손가영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