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 산단 송전탑 반대' 농민의 외침 "그만해라, 너네 많이 묵었다"

[현장] 전국 각지 반대 대책위 모인 '용인 산단 및 송전선로 건설 반대 전국행동' 출범

16일 오후 1시 전북, 전남, 충남, 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시민 1000여 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계단 앞을 꽉 메웠다. 저마다 손엔 "생존권 사수", "무조건 백지화", "지켜내자 공주 정안밤", "반도체 용인 산단 이전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참가자 대부분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과 장년의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결사 반대'가 적힌 붉은 색 조끼를 입고 이마에도 빨간 머리띠를 두른 채 회견에 참가했다. 이날 출범을 알린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 참가자들이다.

전국행동을 만든 전국 75여 개 시민사회단체 및 지역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외쳤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산단은 2023년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돼 2024년 말 국가 산업단지로 지정됐다. 불과 2년 만에 모든 승인 절차가 완료되면서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이 줄곧 제기됐다.

용인 반도체 산단은 한 해 국가 전체 전기소비량의 16.5%에 달하는 16GW(기가와트) 전력이 필요하고, 하루 80만t(톤)의 용수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지만, 경기도 용인엔 그만한 전력과 물의 공급원이 없다.

정부는 산단 내 3GW 용량의 LNG 발전소를 건설하고, 송전선로를 추가 확충해 비수도권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공급할 거란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500kV(킬로볼트) HVDC 동해안~수도권, 345kV 호남~수도권 등의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 계획이 추진 중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 참가자들이 16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범을 알렷다. ⓒ프레시안(손가영)

"그만해라. 많이 묵었다!"

황성렬 충남 송전탑 백지화 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은 마이크를 잡고 과거 영화 '친구'의 대사를 읊으며 "이게 충남 도민들의 지금 심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충남은 수도권에 에너지를 보내기 위해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61개 중 29개가 몰려 있고, 그 전기를 보내기 위해 송전탑이 400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지중화율은 1.4%로 전국 꼴찌"라며 "이 전기를 보내기 위해 우리 충남도민은 그동안 건강권, 재산권을 잃고 어렵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도 없고 에너지도 없는 곳에, 아무것도 없는 용인에 덩그러니 반도체 산업단지를 세우겠다 하고, 지역에서 물과 에너지를 모조리 빼앗아다가 세우겠다 한다"며 "지역이 언제까지 고통받아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전남, 전북에선 15개 시군의 주민들이 대책위를 만들어 전국행동에 참여했다. 모두 호남에서 수도권을 향하는 송전선로 건설 계획에 연관된 지역이다.

정철 송변전선로 반대 광주전남대책위원회 상임대표는 "지금 전남엔 해남, 장성, 강진, 화순, 임실, 영광, 곡성, 광양, 광주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송전로와 변전소가 추진되고 있다"며 "곳곳에서 반대하는 주민들과 추진하는 한전과의 마찰이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남 영암군민들은 지난 4일에도 '345kV 신해남∼신장성 송전선로 건설사업' 입지선정위원회가 열린 나주 한 호텔을 찾아가 주민 의견 수렴 없는 일방적인 의결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호텔을 에워싼 경찰 기동대에 막혀 회의를 참관하지 못했다.

정 대표는 이에 "얼마 전 내가 있는 영암에선 경찰과 용역업체를 동원해 회의실을 꽁꽁 싸고 최종 후보지로까지 확정했다"며 "회의장에 들어가려는 주민을 경찰이 막아섰고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주민 한 분이 쓰러져 긴급 구속도 됐다"고 밝혔다.

그는 "제2, 제3의 밀양이 광주 전남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며 "누가 우리를 이리 만들었나? 어딘지도 잘 모를 수백 km 떨어진 곳의 반도체 공장을 위해 우리 머리 위에 불덩어리를 실어야 하느냐?"고 크게 외쳤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에 참가한 충남 공주 의당면 주민들. ⓒ프레시안(손가영)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 참가자들 ⓒ프레시안(손가영)

참가자들은 "대통령도 응답했다"는 구호를 여러 차례 외쳤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일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기업에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으로 눈길을 돌려 그 지역에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한 것을 두고 서다.

전국행동 또한 "TSMC(대만 기업)는 대만의 중소도시권에 대규모 Fab(팹)을 배치해 재생에너지 조달 및 지역 인력 연계 정책과 병행하고, 미국의 인텔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인근, 애리조나 피닉스 외곽 등 넓은 토지와 재생에너지 기반이 가능한 지역에 공장을 건설했다"며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전력, 용수, 부지 확보가 쉬운 비수도권 지역에 공장을 분산 배치하는 전략을 취한다"고 주장했다.

전국행동에 참여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하원오 의장은 "용인 반도체 산단 때문에 국토 서쪽 절반이 초고압 송전탑과 선로로 난도질당하고 있다"며 "한전은 돈을 앞세워 수십, 수백 년간 이어진 농촌 공동체를 파괴하고 정부와 국회는 빠르게 합의한 사람들에겐 더 많은 돈을 주겠다며 법 개정까지 밀어붙이며 그 뒷배가 돼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행동은 "밀양 사태부터 동해안 송전선로까지, 속도전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는 얻었지만, 여전히 정치는 금전적 보상과 강행 절차만 해답인 양 주민을 배제한다"며 "이에 전남, 광주, 전북, 충남, 대전, 경기 지역의 주민들이 에너지 불평등의 고리를 끊기 위해 송전선로 건설 대책위를 구성했고, 전국행동이란 이름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용인 반도체 국가 산단 계획 전면 재검토 △수도권 전력 수요 분산 및 송전선로 건설 최소화를 위한 전력수급기본계획 마련 △전력망 불평등 해소와 송전선로 갈등 해결을 위한 제도 마련 등을 요구했다.

참가자 1000여 명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 광화문 인근으로 자리를 옮겨 청와대 사랑채까지 2km를 행진했다. 이들은 용인 반도체 산단 계획 전면 재검토를 바라는 요구안을 청와대 측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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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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