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말도 안 되는 소리"…'12.3 1년' 시민들은 잊지 않았다

[현장] 비상행동 집회…"내란 혐의자 단죄", "사회대개혁" 외친 시민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인이 국회로 진입한 날로부터 1년이 지난 3일. 그 밤을 잊지 않은 시민들이 국회 앞을 찾았다. "트라우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등 그날 느낀 감정도 생생했다. 여전한 마음으로 거리로 나선 이들은 진정한 회복을 위해 필요한 일로 민주적 절차를 통한 내란의 완전 종식, 사법적 단죄를 주로 말했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이날 국회 앞에서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을 열었다. 찬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에도, 대회 시작을 30여 분 앞둔 오후 6시 30분경부터 국회 앞을 찾는 시민들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명인 정지우 씨(29)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1년 전 오늘을 "트라우마"로 기억했다. "충격적인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어 씌우고 싶어서 오늘 나온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도 죽은 사람 없이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것에 굉장히 뿌듯함을 느낀다"며 "내란 청산이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완벽히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86학번인 김준호 씨(57)는 "그날 밤을 생각하면 여전히 떨린다"며 6월 항쟁 등 "옛날 생각이 났고, 평택에 있어 국회에 올 수 없기에 발만 동동 굴렀다. 많은 사람이 돌아가실 수도 있었을 참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일을 함께 막아낸 시민들을 보며 느낀 감동을 이야기하며 앞으로도 "기득권과 싸우는데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설혜 씨(24)도 1년 전 오늘 비상계엄 선포를 보고 "'이게 실화인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했다"며 "1주기니까 기억하고 싶었고, 아직 내란 척결이 안 돼 더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내란 척결'을 위해 필요한 일을 묻는 말에는 "내란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시민들에게 지난 1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도 물었다. 지난 겨울에서 봄까지 이어진 탄핵 광장의 중요 고비가 고스란히 담긴 답이 돌아왔다.

정 씨는 지난해 12월 7일 케이팝과 응원봉이 전면에 등장한 국회 앞 첫 100만 탄핵 집회를 꼽았다. 김 씨는 그 일주일 뒤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국회 앞에 발걸음을 옮기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인 일을 보며 느낀 감격을 이야기했다. 설 씨는 '남태령 대첩'과 함께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 탄핵을 선고한 지난 4월 4일 '그동안 한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격한 울음을 터뜨린 일을 떠올렸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린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 대개혁 시민 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응원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오후 7시가 되자 본격적으로 집회 무대가 시작됐다. 그 즈음 시민들은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여의2교까지 500미터 거리 4차선 대로를 3분의 2 가량 메우고 있었다. 집회가 진행되면서는 그 옆 네 개 차선도 열었다. 주최 측은 이날 3만여 명(연 인원)의 시민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페미니스트 민주시민"이라고 소개한 첫 발언자 유하영 씨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겨냥 "1년 뒤면 다 잊고 찍어준다고 하셨나? 잊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섰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윤석열의 등장을 막기 위해 다양성과 존엄을 지키는 싸움을 포기하지 말자"며 "부당한 권위에 저항하고 소수자와 연대하며 윤석열 너머로 함께 나아가자"고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충남 부여에서 온 이주원 씨는 계엄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며 "윤석열 퇴진을 위해 싸웠던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를 드린다. 덕분에 오늘도 걱정 없이 학교 잘 다녀왔다"고 했다. 이어 "내란세력을 심판하고 청소년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극우 정치의 광풍을 몰아내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사수하자"고 호소했다.

이재원 씨는 "비상계엄 직전 주부터 김건희 특검 촉구 집회 행진차량 음향감독으로 활동했다"며 비상계엄 선포를 보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나 잡혀갈지도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며 "여러분과 함께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집회 말미에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전 공동의장단의 선언문 낭독이 있었다. 이들은 먼저 "우리는 그날 밤 힘을 합쳐 내란을 막아냈다"며 "빛의 광장에 함께 한 우리 시민들 모두에게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내란수괴와 주요임무종사자에 대한 재판은 비상계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진행 중"이고 "사회대개혁은 여전히 과제로 남겨져 있다"며 "내란을 막기 위해 이 광장에 모였던 것처럼 우리는 앞으로 완전한 내란·외환 종식과 사회대개혁 실현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집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다시 만난 세계>,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국민의힘 당사로 행진했다. 당사에 다다른 뒤에는 한동안 "내란동조 공범세력 국민의힘 해산하라", "사법부도 공범이다" 등 구호를 외치는 등 항의행동을 하고 오후 9시 30분경 해산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린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 대개혁 시민 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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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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