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9일 가자지구 휴전협정에도 불구하고, 학살과 식민통치는 끝나지 않았다. 국제적인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이 학살 중단을 압박할 가장 큰 힘이었지만,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새로운 방식의 식민통치를 꿈꾸고 있다.
지난 2년 가자지구에서 학살당한 주민만 7만여 명에 달한다. 지난 2월 8일 의학저널 <랑셋>에 제이나 자말루딘(Zeina Jamaluddine) 등 5명이 발표한 논문은 집계된 사망자 수가 실제보다 41% 적을 것이라 분석한다. 이를 감안하면 사망자수는 11만여 명(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약 5.65%)에 달한다. 대부분 민간인이고, 그 중 약 2만 명은 어린이다. 유엔 직원 346명이 사망했고, 언론인 252명이 살해당했다. 우리가 어찌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두번째테제, 2025)의 저자 안드레아스 말름은 2023년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단순히 인도적 재난으로 보지 않는다. 19세기 초부터 이어져 온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 지배와 화석연료 전쟁의 역사를 통해 읽어야만, 비로소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목도하고 있는 이 끔찍한 사태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다.
말름은 오늘날의 전쟁을 19세기 제국주의와 연결한다. 1840년 영국 해군은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선을 전쟁에 처음 사용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을 공격했고, 팔레스타인의 성벽 도시 아크레를 완전히 파괴했다. 이는 영국이 '화석 제국'으로서 중동을 지배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다. 이로써 산업혁명으로 만든 잉여 면직물을 판매할 새로운 시장을 얻은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 전쟁을 통해 얻은 팔레스타인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유대인에 의한 식민화'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려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새빨간 거짓말과 함께, 화석연료를 사용할 기술력으로 땅을 강탈할 논리가 됐다.
1830년대에 창안된 일종의 '기독교 시온주의'는 종교적 명분이라기보다 영국 자본주의의 확장을 위한 도구였던 셈이다. 실제 당시 영국 외무장관 헨리 존 템플(Henry John Temple)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자본가들을 정착시키면 지역의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고 구상했다.
현재로 돌아와보자. 가자지구에서 7만여 명 이상의 평범한 사람들을 학살하는데 활용된 이스라엘 점령군의 군사장비는 모두 석유로 구동되며, 미국에서 공수된 무기도 화석 연료로 움직인다. 또한 이스라엘군은 '아빠 어디가(Where’s Daddy)'와 같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해 방대한 데이터와 감청 정보를 분석했고, 이렇게 해서 어떤 민간인들을 학살할지 자동으로 추려냈다. '석유의 근육과 알고리즘의 머리'를 합쳐 테크노-제노사이드를 자행한 것이다.
이 학살의 원천은 화석연료에 있다. 최근 이스라엘은 동지중해 레반트 분지 가스전을 개발해 독일·이집트·요르단 등에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이스라엘은 유럽에 가스와 원유를 수출하며 주요 공급자가 됐다. 이스라엘이 17년째 가자 앞바다에서 불법적인 해상 봉쇄를 유지하며 팔레스타인 어민과 아이들을 상대로 실탄으로 위협하거나 살해한 것도 가스전 때문이다. 유엔과 알 메잔 인권센터와 국제앰네스티의 자료들에 따르면, 2012년 이래 이스라엘 해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어민을 대상으로 한 공격은 약 3000여 건에 달한다.
1998년 발견된 가자 마린 가스전과 레반트 전역의 가스·석유는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 보고서 기준 천연가스 가치 4530억 달러, 석유 710억 달러 규모로 평가된다. 이스라엘은 이미 리바이어던 가스전에서 62만 세제곱킬로미터, 타마르 가스전에서 31만 세제곱킬로미터의 가스를 생산해 이집트와 유럽 등에 수출하고 있다.
2023년 10월 29일 이스라엘 정부는 해양 가스전 탐사 라이선스 12개를 외국 기업 컨소시엄에 부여했다. 이 중 6개를 소유한 에니(Eni)·다나(Dana) 컨소시엄은 입찰 대가로 이스라엘 정부에 막대한 자금을 지불했으며, 그 수익과 로열티가 이스라엘의 전쟁 자금으로 갈 수 있게 됐다. 일단 모든 가스 생산기업은 매출의 12.5%를 로열티로 이스라엘 정부에 즉시 납부하며, 벌어들인 순이익 중 법인세율은 23%다. 이외의 특별과세와 이스라엘 국부펀드 지분을 포함하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앞바다의 가스전 수익 중 상당부문은 전투기와 살상 드론 확충 등 이스라엘 점령군을 위해 쓰일 것이다.
한국석유공사의 공모는 국제법 위반
이 컨소시엄의 주요한 주체 다나 페트롤륨이 바로 한국석유공사가 소유한 100% 자회사다. 이들이 거머쥔 라이선스 중 약 62%는 국제법상 팔레스타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속한다. 즉 한국석유공사는 국제법을 위반하며 집단학살을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헤이그협약 제4차 부속 규정은 "점령국이 점령지의 공공시설물·토지·산림 등을 관리자 또는 수익사용자로만 할 수 있으며, 점령지 자원을 파괴하거나 새로 채굴하는 것은 오로지 군사작전상 절대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네바협약 33조 제2항 역시 "어떤 보호 대상자도 본인이 직접 저지르지 않은 범죄에 대해 처벌받을 수 없다. 집단 처벌 및 모든 형태의 협박이나 테러 행위도 금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147조 역시 "약탈"을 "중대한 위반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2024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은 이스라엘의 점령을 "불법"으로 규정했으며 "모든 국가가 점령지에서 경제·투자 관계를 끊을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공기업 한국석유공사의 100% 자회사가 식민지 점령국 이스라엘에 호응해 팔레스타인이 주권과 영유권을 가진 해역의 천연자원에 대한 탐사권을 이스라엘 점령당국으로부터 매입한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이다.
특히 2024년 7월과 9월, 각각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 총회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을 불법이라 규정하고 전면 철수를 요구한 이후로는 더이상 법적인 다툼의 여지조차 없다. 한국석유공사는 즉각 이 사업을 멈춰야 한다.
2년여의 시간동안 한국 시민사회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300여 개 단체)을 구성하고 멈춤 없이 연대해왔다. 오는 26일 오후 4시, 수십여 명의 사람들은 울산의 한국석유공사 앞으로 향할 예정이다.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해외에서 식민 자원을 수탈하는 사업에 연루돼 전쟁범죄에 사실상 공모하는 데 반대하는 국내외 시민 1만 명의 서명을 전달하고, 항의 집회를 연다. 한국석유공사 측에 면담을 요청한 상황이나, 아직까지 이 면담이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이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실천은 팔레스타인 가스 개발에 참여하는 한국석유공사에 직접 찾아가 함께 항의하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팔레스타인 해역을 수탈에 가담하며 이윤을 위한 에너지체제를 강화하는 한국석유공사에 항의 서명을 전달하기 위해 11월 26일, 울산으로 향하는 '팔레스타인 연대 버스'에 오르자.
지구를 해방시키는 투쟁은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다
지난 2년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그리고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 학살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나 인도적 비극이 아니다. 말름은 이 학살이 19세기 이후 서구 제국주의가 구축한 '화석연료 기반의 세계질서'의 가장 극단적이고도 일관된 표현이라 규정한다. 어떤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에너지 체제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생산해 온 거대한 폭력의 최신 버전이라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홍수와 가뭄, 몇 달째 멈추지 않는 산불과 해수면 상승, 식량 위기. 이제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 예측이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총체적 붕괴다. 기후위기를 우려하고 또 미약하나마 실천하려 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식민 통치에 맞선 저항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둘은 화석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모두에 맞선다는 점에서 '이미' 연결돼 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없이는 기후정의도 없으며, 기후정의를 위한 모든 운동이 팔레스타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이는 구조적 폭력의 핵심을 비껴가는 단편적 운동에 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말름은 주장은 단순한 윤리적 연대의 요청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로부터 시작된 비극에 대한 치밀한 분석에 따른 전략적 결론이다. 팔레스타인이 점령되는 방식은 지구가 파괴되는 방식과 동일하며, 이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한 지구적 멸망과 지역적 학살은 계속 공진화할 수밖에 없다. 파이프라인, 해상 플랫폼, LNG 터미널, 송전망 등 에너지 기반시설에 대한 직접적 저항이야말로 이 폭력의 심장을 흔드는 현실적 방법이다.
위기의 시대에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는 길만이 지구를 지키는 길"이며 "지구를 해방시키는 투쟁은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다"는 말름의 단언에 이렇게 덧붙일 수 있겠다. '그리고 머나먼 한국 땅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한국석유공사와 이스라엘의 공모를 중단시키는 것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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