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 전국 최초의 시민의회를 만들 수 있을까?

[복지국가SOCIETY] 광명 시민의회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속적인 하향세를 기록하며, 43%라는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원인에 대한 사회적 진단이 좀 더 치밀하게 이뤄져야겠지만, 한국사회의 심각한 불평등과 불균형을 이재명 정부가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민주권 정부'라 이름했지만, 여전히 국민에게 제대로 된 주권을 부여하겠다는 징후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정치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진영논리에 갇혔고, 선거 때나 겨우 주인이 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유권자·주권자로서의 목소리는 일상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다. 빈부, 이념, 세대 간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지만, 정치권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민심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해결책으로 시민의회가 등장하고 있다.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갈등의 이슈를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시민들이 전체 계층을 대표하는 소우주를 구성하고, 상당한 기간 숙의과정을 거친다면 제대로 된 시민들의 통합된 집단지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이미 해외에서도 수백 차례의 경험과 실증사례가 있다니 최소한의 검증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필자도 우리 사회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에 시민의회를 접하고 지역의 모델을 만드는 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있다.

전국 최초 시민의회 도입을 약속한 광명시

광명시청사 앞에는 "모든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우리 헌법 1조를 연상케 하는 멋진 표현이다. 이미 관료주의에 많이 물든 공무원들이지만, 매일 출근하면서 되새겨 봐야 할 말이기도 하다. 문장만 아름다운 구호일 수도 있겠지만, 매일 현관을 드나들면서 시민들이, 공무원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훌륭한 문장이다.

▲광명시청사 출입구 현관. ⓒ시민의회 광명포럼

민주주의가 전세계적으로 퇴행하는 현실이지만, 광명시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고, 혁신적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의회' 제도 도입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5월 3선에 도전장을 낸 박승원 광명시장 후보는 시민의회광명포럼과 정책협약을 맺고, 광명에서 전국 최초로 시민의회를 도입하겠다고 협약했다. 박승원 시장은 무난하게 3선에 당선됐고, 어떤 청사진의 시민의회를 도입할지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광명시는 그동안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주민참여예산제, 주민자치회, 500인 원탁회의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며 주민자치 역량을 키워왔다. 시민들이 직접 지역의 예산을 편성하고, 마을의 현안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존의 주민자치 노력은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다 보니 특정 계층의 목소리만 과잉 대표되고, 다수 시민은 배제되었다. 첨예한 이해관계 앞에서 기존 주민기구는 합의의 장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결국 제도는 있었지만, 각 계층의 목소리가 두루 반영되고 실천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없었다. 한계 극복과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시민이 시정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 그 새로운 형식이 '시민의회'라는 것에 공감하고, 지역사회와 시장이 협약함으로써 좀 더 구체화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6·3 지방선거 기간에 전국 최초 시민의회 도입을 약속한 박승원 광명시장(가운데). ⓒ시민의회 광명포럼

광명이 상상하는 시민의회의 기대와 우려

광명시와 시민의회포럼이 정책협약으로 추진하는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는 바로 이러한 한계를 돌파할 강력한 대안이다. 시민의회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사회를 압축한 '미니 공중(Mini-public)'을 구성하고, 이들이 충분한 정보와 전문가의 설명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숙의 과정을 거쳐 공공정책을 논의하고 권고하는 민주주의 제도다. 그리고 일정 기간 활동 후 교대함으로써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을 방지하고, 민주주의의 학교로서 모든 시민에게 지속적인 참여를 보장할 수 있다.

이는 고대 아테네의 추첨제 정신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것으로, 정당 정치의 이해관계나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오직 '공공선'을 기준으로 정책을 권고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정당성을 갖는다. 특히 광명처럼 크지 않은 지역사회는 시민의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수월하고, 시민의회의 기능이 잘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다.

한국사회와 마찬가지로 광명의 지역사회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통과 주거문제, 기후, 돌봄, 지역순환경제 등등.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현안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참여와 결정이 없는 상태에서 행정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함으로써 좋은 정책도 제대로 된 효능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민의회는 행정과 지방의회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 속에 만들어지는 유기적 거버넌스 체제라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시민의회가 기존의 지방의회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지만, 시민의회가 숙의와 토론을 통해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만들고, 이를 광명시의회가 제도화하고, 광명시가 집행하는 구조이니 협력적 거버넌스를 제도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광명시장이 전국 최초로 시민의회를 도입하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우여곡절도 예상된다. 경로의존성의 법칙(Law of Path Dependency)이란 말처럼, 기존의 관행과 관습을 되풀이하려는 많은 기득권자가 있을 것이고, 한 번도 제대로 된 시민주권을 향유하지 못한 시민들은 시민의회라는 새로운 공론장에서 의견을 함께 나누고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어색할 것이다. 시의회, 행정 등과 협력적 거버넌스를 만들어가려고 하지만,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이런저런 충돌과 갈등도 있을 수 있다.

새로운 길은 항상 어렵고 힘들기에, 뜻을 낸 시장과 시민들이 담대하게 길을 함께 찾아 가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한국사회에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으면 한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해 지역에서 매월 두세 차례의 모임을 가지면서 시민들의 지혜를 모으고 있으니 뜻있는 분들의 동참도 기대한다. 자세한 내용은 시민의회전국포럼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 볼 수 있다.

지역에서 새로운 희망과 이정표를

이재명 정부가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제공하는 '기본사회', 국민에게 실질적인 주권을 부여하겠다는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했지만, 여전히 가시적인 청사진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5000만 명의 국민을 한 번에 움직이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기에 오히려 희망은 30만 중소도시인 광명 같은 작은 지역에서 보다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작은 규모의 지역에서 혁신적인 사회실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35년 전에 지방자치를 부활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혁신적인 실험과 정책을 지원하고, 지역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후원한다면 이재명 정부가 뜻했던 것들은 더 빨리,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다. 좀 더 과감하게 사회혁신을 추진하고 지방정부를 통해 혁신의 모델들을 만들어간다면 이재명 정부의 낮아진 지지율을 반등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선거로 대표를 선출하고, 시민의회로 국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말처럼, 광명시와 시민의회광명포럼의 협약은 단순히 하나의 제도를 더 도입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선도 도시인 광명에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고, 시민이 진정한 주인으로 바로 서는 민주주의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 시도라 할 수 있다. 광명에서 시작하는 시민의회의 불꽃이 성공적인 지역 모델로 자리잡고 한국 사회로 확산한다면,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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