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한국어 교실에서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싸우고 있다

[프레시안books] <한국어의 투쟁>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약자에게 언어는 중요한 무기다. 아마 이 말을 가장 절실하게 체감하는 이들은 이주민일 것이다. 거창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일상의 갑질과 차별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데부터 언어 능력은 필요하다. 상호 존중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도 있겠으나 약한 쪽만의 뜻으로는 어려운 이야기다.

그렇기에 이주민에 대한 한국어 교육 제도는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한국이 가장 공 들여 다듬어야 하는 체계 중 하나다. 저출생 고령화 속에서 이는 이주민을 위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창용 서울대 언어교육원 교원이 쓴 <한국어의 투쟁>은 한국사회가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묻는 책이다. 예상하겠지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너진 교실, 한국어 학습자들의 투쟁

책의 첫 부분에는 무너진 교실의 풍경이 담겨 있다. 대학은 자꾸만 줄어가는 내국인 신입생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유학을 상품화했다. 유학생은 한국에 오면 일하면서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현지 유학원의 홍보를 믿고 한국에 온다.

그 홍보대로 한국에 온 유학생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이에 쏟는 시간은 하루에 적게는 4시간에서 주말이면 10시간에도 이른다. 그러나 대학에 다닌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피로에 지친 이들이 학습에도 집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어 교육도 느슨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초중등학교도 상황은 비슷하다. 저자는 임시로 마련된 한 개의 교실에서 두 명의 교원이 칠판을 나눠 쓰며 수준이 다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초중등 교실을 묘사한다. 학생 개개인의 사정과 수준에 맞춘 '개별화 수업'이 아이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다.

대안적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도 있었다.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391명이 입국했을 때 노옥희 울산교육감은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며 이주아동의 교육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아이들의 한국어는 빠르게 늘었다.

그러나 부모들의 한국어 실력은 그렇지 않았다. 일상에서 통역 역할을 하게 된 아이들은 빠르게 늘어난 한국어만큼이나, 빠르게 어른이 되어갔다. 학생이 아닌 성인 이주민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여전히 허술하게 남아있었던 데 따른 비애다.

무너진 노동, 한국어 교원들의 투쟁

이후에는 저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국어 교원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의 세계도 무너져 있긴 마찬가지다. 대학은 한국어 교원을 보통 프리랜서로 다뤘다. 몇몇 대학에서 지휘·감독 등을 이유로 한국어 교원은 노동자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러자 대학은 한국어 교원을 주 15시간 초단시간노동자 지위에 묶어두려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이든 이유는 비슷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비용이 교육을 이긴 것이다. 프리랜서에게는 노동관계법이 일체 적용되지 않는다. 초단시간노동자는 주휴수당, 연차휴가, 퇴직금 등 일부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어 교원이 빼앗긴 것은 그대로 대학에 돌아간다.

다시 법원은 실질을 봤다. 한국어 교원의 초단시간노동자 여부를 다툰 한 재판에서 숙제 검사, 작문 피드백, 시험출제, 채점, 회의, 상담 등 강의 수반 업무를 한국어 교원의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번에도 비용은 교육을 이겼다. 학교는 수업 전 선생님들의 교안 회의를 없애고, 입학식, 수료식, 문화체험, 말하기 대회, 숙제 등을 없앴다. 시험 출제는 대학원 석박사 등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현실을 바꾸고자 한국어 교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우고 있다. 여러 난관을 뚫고 몇몇 대학에서 부족하나마, 일부 변화도 일궈냈다. 지금 저자가 가입한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에서는 이주배경 학생, 어학연수생, 결혼이주여성, 외국인 노동자 등 여러 이주민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원이 가입해 같은 뜻을 품고 활동 중이다.

한국어 교원, 이주민, 비정규직에 관심이 있다면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이란 말이 약자를 짓누르는 무기로 쓰이는 시대. 한국어 교원들이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끝에서 저자는 "학생과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보람"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교실에서 더 잘 버티기 위해 한국어 교원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주민들의 분투에도 교원들의 싸움은 도움이 될 것이다. '국어 교육'과는 전혀 다른 '한국어 교육'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를 수행하는 이들의 노동에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어의 투쟁>은 한국어 교원의 노동조건에 관심이 있는 이들 뿐 아니라 이주민의 처지에 마음을 둔 이들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나아가 저자는 프리랜서니 초단시간노동자니 하는 '구분'이 도대체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문제 전반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는 의미다.

▲<한국어의 투쟁>(이창용 지음) ⓒ빨간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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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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