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노동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의학적 정설이다. 야간노동 규제는 국제적 대세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산업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거의 이뤄진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새벽배송 논란이 그 합의가 어떤 영역에서는 단단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균열은 왜 생겼을까. 모두가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있어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이며,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프레시안>은 전문가와 활동가들에게 새벽배송 논란을 지켜보며 한 생각을 물으려 한다. 편집자
강태선 사이버대학교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근로감독관 출신으로 현장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는 산업안전보건 연구자다.
새벽배송 논란에 대해 강 교수는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논의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벽배송이 등장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장기 역학연구가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물론 이 말은 새벽배송 등 야간노동의 위험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강 교수는 한국의 새벽배송을 콕 집은 역학연구가 있었다면, 지금 일고 있는 사회적 논란의 상당 부분은 해소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연구가 없는 이유로 그는 국가적 차원의 독립적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부재를 꼽았다. 당장 해야 할 일로는 그간 쌓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새벽배송에 대한 후향적 코호트(cohort, 특정 기간 공통 경험이나 특성을 공유하는 집단) 역학연구를 꼽았다. 화학물질에 적용되는 '노 데이터 노 마켓(No Data, No Market)', '입증책임 전환' 등 원칙을 야간노동 분야에 적용하자고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진짜 원인 제공자인 기업에 건강 위험의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지난 10일 강 교수와 전화로 한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프레시안 : 새벽배송 논란이 한창이다. 이를 보며 산업안전보건 연구자로서 어떤 생각을 했나?
강태선 :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문제라고 본다. 다만 이 논쟁에서 과학이 도외시되고, 원인 제공자인 기업이 빠진 채 이념화, 정치화된 논란이 벌어지는 데 대해 대단히 우려한다.
사회적 대화를 해도 사고, 과로, 심혈관질환, 암 등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문제에 관해서는, 과학적 팩트체크를 통해 양보해서는 안 되는 선을 그어야 한다.
프레시안 : 이번 논쟁에서 야간노동의 위험성은 많이 환기된 것 같기도 하다.
강태선 : 일반적인 야간 교대근무(night shift work)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는 꾸준히 수행됐다. IARC(국제암연구소)가 야간 교대근무를 인간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위험 요인으로 구분한 배경이다. 그 외 일반적으로 사고나 질환 위험도도 야간근무자에게 더 높다.
심혈관질환 관련 역학연구를 종합한 메타연구 중 가장 최근 연구(Jiayu Xi 등, 2025)에 따르면, 비야간근무자에 비해 야간근무자의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약 10% 이상 높았다. 야간근무가 5년 증가할 때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7%,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은 4%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새벽배송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노동형태다. 노동인구도 대규모라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더 심각한 영향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가 시급한데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독립적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있었다면, 사회적 논란 상당 부분 해소됐을 것"
프레시안 : 새벽배송에 대한 역학연구는 어느 수준인가?
강태선 : 올해로 새벽배송이 시작된 지 10년 넘었다. 2022년 이래 실태조사 수준 연구가 일부 진행됐을 뿐이다. 한국의 새벽배송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장기 역학연구는 없고, 고안조차 안 되고 있다. 그런 연구가 있었다면 지금 사회적 논란의 상당 부분은 해소됐을 거다.
최근 폐암 산재가 다발하고 있는 학교 급식 노동자 상황이 비슷했다. 2021년부터 급식실 조리사 폐암이 산재로 승인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련 근거가 중국, 대만, 홍콩 등에서 진행된 조리사 폐암 역학연구였다. 해당 지역의 고온 튀김요리 관행이 폐암 위험에 영향을 줬다고 봤다. 한국 요리는 좀 다르니 급식 노동자의 폐암 위험도가 높지 않을 거란 짐작이 있었고, 산재 승인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뒤늦게 한국의 급식 노동자 폐암 위험에 대한 역학연구가 진행됐다. 15년 이상의 자료를 모아 후향적으로 인과관계를 볼 수 있는 장기 코호트 연구를 진행했고, 중국 조리사보다 더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젠 그런 논란은 종식됐다.
프레시안 : 새벽배송 분야에서는 왜 그런 연구가 안 됐을까.
강태선 : 한국에는 독립성을 가진 노동과학연구소가 없다. 1977년에 만들긴 했는데 12년 만에 없애버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그런 일을 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여기는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등이 기반이다.
프레시안 : 한국산업안전공단 산하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있지 않나.
강태선 : 산안공단은 주로 사업장에 안전보건 기술지원 또는 재정지원 사업을 하는 곳이다. 선진국 중에 재정사업을 하는 기관 밑에 산업안전보건을 다루는 연구원을 두고 그걸 국가연구원이라고 하는 나라는 없다. 규모도 작다. 50, 60명 정도 전담 연구자로 한국 정도 규모가 되는 나라의 산업을 커버하는 안전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연구 역량이 부족하니 연구원들이 자체 연구를 하기보다 주로 5~8개월 짜리 연구 용역을 발주해 관리한다. 직업과 산업재해의 단순 상관관계를 볼 수 있는 단면연구도 1년 이상 걸린다. 장기 코호트는 수 년에서 수 십년 걸린다. 한국은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장기 코호트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한 나라다.
노동과학연구소가 살아 있었다면, 그래서 국가 과학기술 R&D 사업에 산업안전보건이라는 코드가 명확히 존재해 새로 등장하는 위험한 노동 문제에 대해 중장기 예산을 배정했다면, 새로운 직종이 탄생할 즈음에 관련 연구가 이미 만들어졌을 확률이 높다.
프레시안 : 그런 연구기관이 만들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강태선 :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차관급으로 격상되면서 독립적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들었다. 내부 반대가 있다는 소리도 들리는데, 그걸 뚫고 꼭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 수천만 명의 생명과 안전이 달린 문제다.
"야간노동에도 '노 데이터 노 마켓' 원칙 세워야"
프레시안 :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당면한 야간노동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강태선 : 일단 지금이라도 한국의 새벽배송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후향적 코호트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이미 시작됐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속성으로 파일럿 연구를 수행하고 장기 연구가 가능한 연구기관 설립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책 면에서 화학물질 사례를 볼 필요도 있다. 산업 발전과 함께 각종 화학물질이 개발돼 광범위하게 시판됐다. 기업은 화학물질의 긍정적 효과만 선전하고 부작용은 감추려 하거나 연구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은 나중에야 드러났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만연한 후 제조사도 '먹튀'하고 나면, 국가가 막대한 자원을 들여 피해를 조사하고 보상해야 했다.
1945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혁신적 살충제로 홍보되며 농업·방역을 넘어 가정에까지 판매된 DDT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레이첼 카슨이 DDT의 해악을 경고하는 <침묵의 봄>을 썼을 때, 화학기업은 과학적 근거가 없고 감성적 과장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방역과 농업과 식량 안보를 위협한다고도 공격했다.
화학제품의 역사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그래서 유럽에서 '위험성이 입증되지 않은 물질은 금지할 수 없다'는 일반적 법 논리를 뚫고, 피해가 뒤늦게 드러나는 화학물질의 속성에 적합한 사전예방주의 원칙에 따른 입법이 시작됐다.
유럽연합 화학물질 관리 규정인 '리치(REACH)'가 대표적이다. 여기 담긴 정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노 데이터 노 마켓'이다. 기업이 새로운 화학물질을 시장에 도입하려면 독성 데이터에 대한 연구결과를 내놓으라는 거다. 한국의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이를 계수한 것이다.
프레시안 : 야간노동의 일반적 위험성이 인정되고 피해가 뒤늦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두 사례가 정말 비슷해 보인다.
강태선 : 야간노동에도 화학물질 규제와 비슷한 법제를 만들어야 한다. 새벽배송 같은 야간노동 서비스를 지속하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진짜 책임자인 기업이 코호트 연구에 자금을 대고 안전성을 입증하라고 해야 한다. 기업에만 맡겨놓으면 유리한 데이터만 내놓으려 할 거니까 국가기관이나 사회적 대화 형식의 개입이 필요하다.
지금은 새벽배송으로 성장한 쿠팡 같은 기업이 이 논쟁에서 완전히 빠져 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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