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집엔 쓰레기 종량제 봉투 충분해? 인스타그램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급기야 내 귓전을 울린다. 주유소 가격을 주시하며 언제 주유할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꽤 되었다. 거의 모두가 같은 걱정거리를 안고 있지만, 주유비를 거의 매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화물 노동자들의 시름이 유독 깊다.
'석유 지진'이라 해도 좋을 이번 사태의 위력을 실감하는 또 다른 부류는 농어업계 종사자들이다. 비닐하우스 난방 원료, 농업용 비닐과 보온재의 원료, 트랙터나 어업용 선박의 동력원, 상품 포장 용기의 원료가 죄 석유이기 때문이다. 고유가 쇼크에 농어촌 직격탄이라는 제목의 뉴스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한국 농어업이 실은 석유농어업이라는 사실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산업계도 불안하다.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산업 등에도 원유 공급 부족으로 인한 충격이 전망되고 있다.
이 모든 신음은 썰물에 갑자기 드러난 땅을 넌지시 지시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가 썰물이라면, 드러난 땅은 한국 경제의 기반인 석유 경제 또는 화석연료 경제다. 전력 생산, 건물 난방, 상품과 원재료 등의 수송(물류), 항공과 그 외의 교통(관광과 이동), 건설, 자동차, 조선, 섬유, 석유화학, 농어업…이 모든 부문이 한국에서는 석유나 가스 없이는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 이 모두가 삐걱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에서는 파열음이 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설이 잘 지적했듯, 이번 사태로 "에너지 위기가 산업 생산과 생활물가 위기로 번지는 구조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해야 한다. 이 에너지 위기는 '화석연료 에너지 위기'라고 불려야 한다.
이 위기는 한국 경제의 이중적 외부 의존성, 취약성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1차 외부는 언제든 '해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산유국들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2차 외부, 즉 지구의 원유 자체라고 봐야 한다. 무한 추출, 무한 공급이 가정되어서는 안 된다. 2040년 이전, 어쩌면 그 이전에 원유 생산량이 감소될 것이라는 게 통상적인 예측이다. 생산량 감소가 불쏘시개가 되어 산유국들이 봉쇄나 그와 비슷한 선택지로 기울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원을 다원화하는 경제를 구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적어도 누군가는 지금 이것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는 단순히 RE100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유념하자. 화학비료와 플라스틱의 생산, 공간 난방, 항공기 운행 등에서의 변화는 전기화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썰물 덕에 느닷없이 드러난 땅에서 우리는 나프타라는 물질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프타는 어떤 물질인가? AI보다 더 잘 말해보겠다. 원유를 정제해 만든 이 물질, 그리고 이것의 변형태인 에틸렌 없이 우리의 안락한 삶은 지속될 수 없다. 랩, 비닐, 플라스틱 용기, 칫솔모…등이 모두 이들의 변신물들이지만 주방, 거실, 방에 놓인 각종 가전제품에도 이들은 붙어 있다. 전력도 고전압 케이블 피복 원료인 나프타 없이는 집까지 들어오지 못하니, 거실에서 TV, 컴퓨터, 스마트폰을 쓰는 자는 누구든 나프타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 만일 당신이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면, 타이어나 내외장재 재료가 된 나프타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물이 필요하고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자 하는 당신에게도 나프타는 소중하다. 수도관과 창틀, 바닥과 벽에도 나프타가 들어가 있으므로. 심지어 이 물질은 당신의 몸도 감싼다. 신발, 장갑, 옷, 가방에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건물 안에서 춥지 않게 지내다가 자동차를 타고 집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는, 누군가 석유를 태우며 만들어 공급한 연어나 와인 등을 향유하는 일상까지 더하면 우리의 삶, 그 전체 그림이 나온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석유를 태우는 삶이고, 우리는 모두 '석유 귀신'이다.
이것은 하나의 문제인가, 아닌가?
한국 경제의 이중적 취약성 외에도 석유 자체가, 석유를 얻으려고 인간이 벌이는 짓이 우리에게 답을 일러준다. 석유는 해양 미생물, 플랑크톤 등의 유기물 사체가 해저의 무기물과 섞이고, 지각 내의 압력과 온도에 의해 변형되어 생성된 물질이다. 그러니까 석유는 지구의 창작물이다. 인간이 나쁜 물질인가? 마찬가지로 석유도 그 자체로는 나쁜 물질이 아니다. 석유를 뽑아 쓰는 행위도 나쁜 행동은 아니다. 석유와 석유 사용에 돌을 던지지 말라.
문제는 선 넘기에 있다. 석유를 추출해서 수송하고 사용하고 연소하는 행위의 강도 말이다. 한 마을이나 국가의 구성원들이 나프타, 에틸렌으로 만들어진 물질을 사용하거나 내연기관 자동차를 굴리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행위를 50억 명 이상이 동시에 할 때 발생한다. 50억 명 이상의 욕망을 해소해줘야 하므로 석유 추출량은 대규모여야만 한다. 이 대규모가 악이다. 대규모일 때만 석유는 "땅속에서 쉬지 않고 뽑아 올리는 (…) 죽음의 주스"(나희덕, <피와 석유>)가 된다.
이 악은 속삭인다. 추출 과정에서 생물들이 죽어 나가고 땅과 바다가 오염된다고? 나도 잘 알지. 하지만 인류의 편의와 복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어.' 원유 유출 사고로 오염이 일어난다고? 평형수 배출로 생태계가 교란된다고? 알지. 수송 과정에서 대기 오염이 발생하고, 석유 연소 과정에서 기후변화가 심화하고 초미세먼지도 급증한다고? 그것도 잘 알지. 하지만….
하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을까? 기후변화와 대기 오염으로 인한 충격을 인간 자신조차 계속 받고 있는데도? 그것은 분명 일종의 경제적 비용인데도?
한국의 큰 질병은 시야(사고)의 좁음, 꿈의 왜소함이다. 공간적으로 넓게 봐야만 하고 시간적으로 길게 봐야 한다. 호르무즈의 해적질 앞에서는, 기름값이 언제나 내릴까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석유 귀신 말고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존엄한 존재로 사는 삶은 이 땅에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삶의 그림을 그려야 하고, 우리는 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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