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논란'에 직업환경의 "야간근무에 적응할 수 있다는 인식은 오해"

김현주 교수 "유방암 위험, 심혈관 사망률 등 높아…의학적 사실 소홀히 하면 안 돼"

새벽배송 규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야간노동 문제를 오래 다뤄온 직업환경전문의가 '야간근무에 사람이 적응할 수 있다'는 인식은 오해라며 의학적 사실이 논의의 토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간근무자의 유방암 위험, 심혈관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와 수면장애, 우울증 등으로 고통받는 야간근무자를 봐온 임상경험도 함께 제시했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3일 페이스북에서 "쿠팡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이 논의 속에서 가장 먼저 다뤄져야 할 '사실'이 의외로 소홀하게 다루어 지고 있다"며 "새벽배송을 당장 금지하거나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논쟁이 소비자의 편리함이나 노동자의 선택이라는 프레임에만 갇히지 않고, 야간노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썼다.

그는 이어 자신의 야간노동 연구·임상 경험에 대해 "1999년부터 노동자들의 건강진단 업무를 수행하면서 수많은 야간작업자를 만났다"며 "병원·물류센터·제조업 현장에서 교대근무자들의 수면장애, 심혈관질환, 우울증, 생체리듬 이상을 수없이 보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1년에는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 제도 의무화 방안 연구'의 책임자로 참여하여 제도 설계에 관여했다. 과로와 야간노동 끝에 돌연사하거나 뇌출혈,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노동자과 유족들을 만났고, 산재판정에도 12년 이상 참여했다"며 "올해는 야간. 배달 등 고위험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건강보호방안 연구를 수행하고 있어 택배산업 노사 이해관계자를 약 50명을 인터뷰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런 경험이 지금의 글을 쓰게 만든 이유"라며 "야간작업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교대근무보다 고정 야간이 낫다. 사람은 적응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2년 야간노동을 'Group 2A,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요인'으로 분류했다"며 "특히 10년 이상 고정 야간근무를 지속한 여성 노동자는 유방암 발생 위험이 40~56% 증가했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유방암 발생은 총 야간근무 일수에 비례해 증가한다고 보고됐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의 제조업·운수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고정 야간근무자의 심혈관 사망률이 주간 근무자의 약 2배에 이른다는 결과가 보고됐다"며 "이는 '야간노동은 몸이 적응하는 과정'이 아니라, 회복되지 못한 생체리듬의 파괴가 누적되는 과정임을 뜻한다"고 했다.

또 "야간노동은 단순히 '피곤한 시간대에 일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뇌와 호르몬, 체온과 혈압, 면역 시스템은 낮과 밤을 기준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다"며 "그 리듬을 장기간 거스르면, 수면 부족을 넘어 심장질환, 고혈압, 당뇨, 우울증, 심지어 암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수십 년간의 역학조사에서 확인됐다. 야간노동에 적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생체지표를 측정하여 확인하여 보고한 논문도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새벽배송을 금지해야 하는가'라는 정책 논의는 '노동자가 선택했으니 괜찮다'거나 '소비자가 원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야간노동, 장시간 노동, 고강도 노동, 휴식 부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건강을 소진시키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의학적 원칙은 분명하다. 야간노동은 건강에 유해하며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며 "공동체의 유지에 필수적인 야간 노동은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앞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 쿠팡·컬리·CJ 등 주요 택배사가 참여한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0시부터 오전 5시까지 심야 배송을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오전 5시 출근 조가 사전에 설정한 긴급한 새벽배송을 처리하자는 안도 함께였다.

▲서울 시내 주차된 쿠팡 배송 트럭.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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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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