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해 논란이 인 적이 있었다. 그의 말에서 120시간이라는 황당한 숫자를 빼고 보면, 자연스레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노동자가 원하면 60시간 노동은 허용해도 될까?
질문은 이어진다. 노동자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일하겠다고 하면? 노동자가 발암물질을 다루며 일하겠다고 하면 허용해도 될까? 노동자가 '나 그냥 노예로 일하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해도 될까?
인류가 오랜시간 발전시켜온 노동법은 '그러면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산업안전에 대한 법적 규제는 우선 사업주의 전횡을 겨냥한 것이지만, 노동자도 그 틀 안에서 일하게 한다. 근무환경에 최저선을 그어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삶과 안전한 노동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이는 물론 물가와 같은 소비자 편익이나 '소비자는 왕'이라는 갑을관계적 발상에도 우선한다.
새벽배송 금지, 소비자 편익·노동자 수입 감소 때문에 안 된다?
최근 쿠팡의 성장 발판이었던 '새벽배송'을 두고 비슷한 논란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쿠팡·컬리·CJ 등 주요 택배사가 참여한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노동계가 0시부터 오전 5시까지 심야 배송을 금지하자는 안을 내면서다.
당장 보수·경제지가 반격에 나섰다. 무기는 소비자 편익과 노동자 수입이었다. "주문한 상품을 1주일은커녕 2~3일도 기다리지 못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야간배송을 금지하는 것은 택배기사 일자리 상실, 수입감소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와 같은 문장이 쏟아졌다.
그 반격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까지 동참했다. 페이스북에 "'새벽배송 전면금지' 추진은 많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망가뜨릴 것"이라며 "막아야 한다"고 쓰면서였다. 그 역시 소비자는 물론 "새벽배송으로 돈을 벌고 있는 택배기사들의 삶이 모두 망가질 것"이라는 주장했다.
안을 낸 쪽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우리도 주 5일 근무나 노동시간 제한 정도만 제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편하다"고 말했다.
한 국장은 "하지만 택배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령 근무일을 주 5일로 제한해도 야간노동으로 인한 위험성을 제거할 수는 없다"며 "소비자 편익과 노동자 건강권 사이에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는 야간노동이 생체시계를 교란한다며 이를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인 2급 발암물질로 분류한다. 이 분류는 새벽배송이 등장하기 한참 전인 2007년에 이뤄졌다. 새벽배송은 애초 등장해서는 안 되는 기획이었다는 뜻이다.
"새벽배송 규제, 한국이 나아갈 방향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시험대"
그럼에도 쿠팡은 '새벽배송'을 발판으로 삼아 급격한 성장을 일궈냈다. 그 발판 아래에는 고강도 야간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깔려 있었다. 2022년부터 2025년 8월까지 23명의 쿠팡 노동자가 숨졌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야간노동의 위험성을 직접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오전 5시 24분 관리자의 배송 독촉에 "개처럼 뛰고 있어요"라는 답해야 했던 택배 노동자 고(故) 정슬기 씨, 오전 2시 6분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야간작업 중 쓰러져 27살에 숨진 고(故) 장덕준 씨 등이다.
죽음의 행렬은 올해도 끊이지 않았다. 확인된 것만 쿠팡 안성·용인물류센터에서 각각 야간작업을 했던 일용직 노동자 2명이 숨졌다.
그렇기에 '새벽배송'을 규제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한국사회가 미뤄온 숙제에 불과하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노동정책국장은 지난달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한국이 어디로 갈지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시험대"라고 표현했다.
그 안에는 강력한 로비력을 갖춘 쿠팡을 견제할 수 있나라는 질문은 물론 산업안전이라는 물러설 수 없는 가치 앞에 소비자와 노동자가 각자의 욕망을 누그러뜨릴 수 있겠냐는 문제의식도 담겨 있었다.
스위스 제네바에 머물고 있는 이상헌 국장은 또 새벽배송 없이도 원하는 물건을 잘 구매하며 살고 있다고도 했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 교수도 저서인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서 독일에 살던 때를 회상하며 마찬가지 경험을 적었다. 불과 몇 년 전을 떠올려 보면, 한국에 사는 우리도 그랬다.
"2~3일도 기다리지 못하는 소비자"는 절대불변의 무엇이 아니라 새벽배송으로 인해 만들어진 욕망에 가깝다. '건강을 해치는 노동형태는 규제해야 한다'는 것은 노동법이 보여주듯 상식으로 자리잡은 이야기다. 마침내 다가온 "가장 중요한 시험대" 앞에서 논의 당사자들이 이를 잊지 않길 바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