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중부 및 남부를 폭격하며 위태롭게 이어지던 가자지구 휴전이 고비를 맞았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협정 위반을 문제 삼은 이스라엘은 일단 휴전을 재개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테러 기반 시설 해체 작전 중이던 이스라엘군 병력을 향해 테러리스트들이 대전차 미사일 공격 및 총격을 가했다"며 "이는 휴전 합의에 대한 노골적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휴전 합의 위반에 대응해 가자지구 남부 테러 목표물에 대한 일련의 공습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공습 목표물에 땅굴(터널) 갱도, 무기 저장고, 군사 구조물 등 수십 곳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사건은 이날 오전 10시30분께 라파 남동쪽의 이스라엘이 통제 중인 철수선 안쪽에서 일어났다. 이스라엘군 초기 조사에 따르면 해당 지역 땅굴에서 나타난 하마스 조직원들이 로켓추진유탄(RPG) 등을 이용해 굴착기를 공격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군 2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라히야에서도 무장 세력이 철수선을 넘어 이스라엘군에 접근했다며 이들에 폭격을 가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날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수십 명이 사망했다. <AP> 통신은 가자지구 보건당국 및 의료진을 통해 사망자가 36명이 이른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 북부 알아우다 병원은 중부 누세이라트 및 부레이지 난민촌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주검 24구를 넘겨받았다고 밝혔다. 남부 칸유니스 나세르 병원에 따르면 칸유니스 및 무와시 지역 천막이 공습 당해 어린이 2명, 여성 1명 등 총 4명이 숨졌다. 중부 자와이다에 위치한 임시 카페에도 공습이 가해져 최소 6명이 죽었다고 가자지구 보건부가 밝혔다.
병원 소식통을 인용해 총 사망자 수를 44명으로 집계한 영국 BBC 방송은 주민들에 따르면 이날 칸유니스 동부에 최소 12차례 폭격이 가해졌고 피난민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방송은 현지 소식통들에 따르면 하마스 정예부대 사령관 야시아 알마부흐를 포함해 하마스 조직원 6명이 자와이다 공습으로 숨졌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습으로 휴전 지속에 대한 가자지구 주민들이 불안감이 다시 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일 베히트라히야 출신 이스마일 바바(48)가 "우리가 매달렸던 거짓 안전감이 끝났다는 걸 느꼈다"며 "이제 겨우 지역 간 이동을 자유롭게 시작했는데 다시 공포와 경계심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네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전쟁 시작 뒤 11번이나 피난길에 올랐다. 바바는 "휴전이 시작된 뒤 단 하루도 공격이나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며 "휴전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어 두렵다"고 토로했다.
이스라엘은 1차 휴전에 따른 철수선으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가자지구 절반 이상을 점령 중이다. 우발적으로 철수선을 넘은 주민들에 대한 공격 우려가 제기된 상황에서 <가디언>은 17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집을 확인하러 차량으로 이동하다 철수선을 넘어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망한 일가족의 장례식이 18일 열렸다고 전했다. 이들 11명 가족 중 7명이 어린이였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가자지구 언론국에 따르면 휴전 발효 뒤 이스라엘군에 의해 최소 97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됐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 "휴전 재개" 선언에 "첫 시험 통과" 낙관도
다만 이스라엘군이 휴전 재개 의사를 밝히며 상황은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스라엘군은 19일 밤 "정치 지도부 지시에 따라 휴전 이행을 재개한다"며 군이 "휴전 합의를 계속해서 준수하고 위반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AP>는 휴전 협상에 참여한 이집트 고위 당국자가 사태를 진정시키려 "24시간 내내" 접촉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당국자를 인용해 이날 공습 중 중단한 가자지구로의 구호품 유입도 20일 오전 재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당국자는 단 가자지구 남부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검문소는 별도 공지가 있을 때까지 폐쇄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파 검문소는 전쟁 초 구호품 전달의 주된 통로였지만, 이스라엘 쪽은 라파 검문소가 개방되더라도 구호품 유입에 사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상태다.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라파에서 일어난 이스라엘군 공격이 하마스 지도부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BBC를 보면 하마스 무장조직 알카삼 여단은 성명에서 "올해 3월 전쟁이 재개된 뒤 그곳에 남은 우리 집단들과의 연락이 끊겼다"며 "따라서 우린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과도 연관이 없고 그곳에 있는 우리 전투원 누구와도 소통이 불가능하다. 만일 그들이 살아있다면 말이다"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19일 전용기(에어포스원)에서 취재진에 이스라엘군에 대한 이번 공격이 하마스 지도부보다 조직 내 "반군"과 관련돼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며 휴전이 여전히 유지 중이라고 못 박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마스의 휴전 위반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천명했지만 전투 재개를 언급하진 않았다.
미 CNN 방송은 이번 사건 뒤 가자지구 휴전이 "첫 번째 중대 시험에서 살아남았다"고 평가했다.
'뇌관' 인질 주검 여전히 절반 이상 송환 안 돼…하마스 무장 해제도 난망
다만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 숨진 인질 주검 반환을 둘러싼 이스라엘 쪽 수사가 점차 과격해지고 있는 가운데 하마스는 18일 추가로 주검 2구를 인계했지만 여전히 28구 중 16구가 돌아오지 못한 상태다. 하마스 쪽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6만8000명 이상이 죽고 건물의 80%가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잔해 속에서 인질 주검을 인양하는 게 특수 장비 없이는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불신 중이다.
휴전 발효 뒤 하마스 보안군이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가자지구 내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며 이 조직이 가자지구 내 통제권을 재확립하려 시도 중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반엔 하마스에 폭력단(갱단) 소탕 관련 "일정 기간 승인"을 내줬다고 밝혔지만 이후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사람들을 계속 살해한다면 합의 위반이며 우린 들어가 그들을 죽이는 수밖에 없다"고 발언을 강화했다.
휴전 2단계 협상의 주요 쟁점이 될 하마스 무장 해제도 쉽게 합의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17일 <로이터> 통신은 이틀 전 이뤄진 하마스 정치국 위원 모하메드 나잘과의 인터뷰를 공개하며 나잘이 무장 해제 관련 확답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나잘은 하마스가 무기를 포기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고 "예 혹은 아니오로 말할 수 없다. (무장 해제)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하마스가 무기를 포기한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넘겨질 것인지 등 구체적 사항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