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은 언감생심, 갈비뼈 금가기도…'보디캠' 달고 아이들 가르칠 판"

[특수교사는 지금 上] 11년째특수교사로 일하는 최민영 씨의 한탄

법정 정원을 초과한 과밀 학급에서 다루기 힘든 중증 장애학생들을 담당했던 특수교사 A씨. 교사당 최대 6명의 학생을 맡아야 하는데 A씨는 8명을 담당했다. 자연히 업무 과중, 과도한 수업 시수 및 행정 업무 등에 시달렸다. 하지만 인천시교육청은 학급 증설, 교사 추가 배치 등을 요구하는 A씨를 묵살했다.

결국 A씨는 지난해 10월, 신체 건강 악화와 심리적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두 달 전에는 격하게 행동하는 학생을 중재하고 지도하던 중 허리가 꺾이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병가를 내고 쉬지도 못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고인의 죽음 이후 진상조사서가 나왔고 9월 말, 순직을 인정받게 됐다. 고인이 사망한 지 11개월 만이다. 일선 특수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A씨만이 이런 환경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누구에게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교육환경이라는 것이다.

특수교사 A씨 사건을 계기로 <프레시안>은 현재 특수교사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최민영 씨(가명)는 11년째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다. 장애학생의 교육 및 사회적 적응을 지원한다. 경상남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일반학생과 장애학생이 함께 다니는 학교다. 여기서 최 씨는 6명의 장애학생들이 속한 특수반 담임을 맡고 있다.

현재 다니는 학교는 올해 3월 부임했다. 이전 다니던 학교는 1년 정도 다녔는데, 학부모들과의 갈등으로 지금의 학교로 옮겼다. 보통 학부모들은 특수교사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오해와 갈등이 결국 극에 달하면서 최 씨는 학교를 떠나야 했다.

최 씨가 맡은 장애학생의 도뇨(요도구에서 방광까지 카테터라는 기구를 삽입하여 인공적으로 오줌을 뽑아내는 일)가 발단이었다. 이 학생은 오전에 한 번은 도뇨를 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마땅히 해 줄 사람이 없었다. 학부모는 담임인 최 씨에게 이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단순한 일은 아니었다. 학생의 성기에 카테터(소변줄)을 넣어서 소변을 배출해야 했다. 의료행위였다. 이를 하다가 아이가 감염되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 법적 책임은 오롯이 최 씨에게 있었다. 고심 끝에 학부모에게 죄송하다며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그런 최 씨가 야속했다. "왜 해주지 못하느냐", "나도 집에서 하는데 선생님도 할 수 있다" 등의 말이 쏟아졌다. 학교에서 직접 시연까지 하면서 "이렇게 하는 거니 선생님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아무런 처벌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도 쓰겠다고 했다.

그래도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학교와 MOU체결을 맺은 병원에 자문을 구했다. 의료인이 도뇨를 위해 학교로 출장을 올 수는 있지만 인건비가 무척 비쌌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찾고 찾아 결국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자원봉사자를 구했다. 그래도 학부모의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하시면 되는데, 왜 책임 회피를 하세요? 제가 뭐 문제 생기면 소송할 사람으로 보이세요?"

▲ 2024년 11월,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인천 특수교사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7개 교원단체는 인천 특수교사 사망 관련 진상 규명과 함께 특수교사 여건 개선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우리 아이 안 챙겨주냐며 교사 등을 내려치는 학부모

이후에도 여러 번 학부모와 부딪혔다. 사람인지라 감정이 남았고,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없었다. 몸에도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장기 병가를 내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혼란스러울까봐 참았다. 특수교사는 1년 동안 한 학교에 근무하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갈 수 있다. 1년만 참고 버텼고 기간이 될 즈음 전보를 신청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소식을 접한 학부모가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 특수교사가 1년만 근무하고 다른 학교로 전근 가는 것은 무책임하니 이를 막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더는 견디기 어려웠다. 교육청에서도 학부모의 민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올해 3월, 지금의 학교로 옮긴 이유다.

그렇다고 지금 학교에서 불화가 없는 건 아니다. 아이들을 돌볼 선생이나 보조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반면, 부모들의 부탁은 늘 차고 넘친다.

한번은 옆 반 특수교사가 1주일 동안 휴가를 내서 그 반 아이들까지 최 씨가 돌봐야 할 때가 있었다. 아이들 등하교 지도부터 식사, 화장실 가는 것까지 다 챙겨야 하니 몸이 10개라도 부족했다. 그렇게 일하던 중, 하교 시간에 몸이 불편한 학생을 휠체어로 주차장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 조금 늦었다. 학부모는 그런 상황이 마뜩잖았던지 최 씨의 인사도 받지 않고 무표정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최 씨에게는 주차장까지 아이를 데려다 줄 의무는 없다. 부모의 요구에 배려도 응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는 하교가 약간 늦은 것에 뿔이 잔뜩 나 있는 듯했다. 아이를 차량에 태우기 위해 안전벨트를 풀어 허리를 굽힌 찰라, 최 씨의 등에 학부모의 손바닥이 내리쳐졌다.

"우리 아이 이렇게 안 챙겨 주실거예요."

고개를 돌려 보니 아이의 학부모였다. 갑작스럽게 등을 맞고 휘청했던 최 씨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도 때리는 소리에 놀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제자 앞에서 맞으니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무척이나 불쾌했다. "왜 때리는 건가요" 놀란 목소리로 묻자 이내 정신을 차린 학부모는 "제가 손버릇이 좀 나빠서요"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최 씨의 등을 어루만지며 "선생님이 좋아 보여서 그런 거에요"라며 애써 무마하려 했다.

일상에서 끊이지 않는 민원과 마찰

하교시간에 약간 늦은 게 학부모의 화를 불러일으켰고, 이를 참지 못한 학부모가 손찌검을 한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정 급하면 아이를 교실로 직접 데리러 왔으면 될 일이었다.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온갖 감정이 올라왔다. 결국, 최 씨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교권 침해로 학부모를 신고했다. 그리고 그 학부모는 교권 침해 1호 조치를 받았다. 학부모는 최 씨에게 서면으로 사과문을 보내고 재발 방지를 서약서로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도 학부모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호 조치는 강제조항이 없기 때문이었다.

불안한 건 최 씨였다. 이후 복도에서 학부모를 만나기라고 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은 죄가 없는데도 그랬다. 괜히 교권 침해 신고를 했다는 후회도 밀려왔다. 그렇다고 되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3개월을 버티자 학부모에게 사과문이 전달됐다. 봉투 속 A4용지에는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행동을 조심하겠다.'

사과를 위한 사과였다. 그냥 자신을 직접 만나 그때는 경솔했다며 충동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사과했다면 풀어질 마음이었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 씨였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말이나 행동이 가끔 칼날처럼 변하기 마련이다.

이후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최 씨는 아이를 데리러 오는 학부모의 그림자만 봐도 신경이 곤두섰다.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내년에는 최 씨가 자기 아이의 담임을 맡지 못하게 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교육청에 최 씨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왜 특수교사를 하고 있는가' 회의가 밀려왔다.

이처럼 '특수한' 행동을 하는 학부모는 드물지만 한 번 당하면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는다. 문제는 일상에서도 학부모와 소소한 마찰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장애를 지니고 있기에 학부모들은 아이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를 부탁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통합반으로 수업을 받으러 갈 때나 화장실을 이용할 경우, 교사가 반드시 동행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보조교사 등 인력은 정해져 있기에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다. 학생 한 명당 교사 1명이 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대한 학부모의 '학구열'도 마찰로 이어지는 요소다. 선 긋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라고 하거나, 중증장애이기에 통합반 수업을 받을 수 없지만 이를 고집하는 학부모도 있다. 그럴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없다. 현행법상 학부모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인천 특수교사 추모제에서 동료 교사들이 눈물 흘리고 있다. 7개 교원단체는 인천 특수교사 사망 관련 진상 규명과 함께 특수교사 여건 개선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훈육은 사라진 지 오래, '보디캠' 달고 다녀야 한다는 자조섞인 말도

아이들의 폭력적인 행동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다.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 가끔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연필을 책상에 계속 찍으면서 선생을 쳐다보는 행동을 한다든가, 최 씨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휘감고 놓아주지 않는다든가, 여러 행동을 보인다. 꼬집거나 몸으로 밀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럴 경우, 법규상 아이 몸에 손을 대면 안 되기에 보조교사나 자원봉사자가 조심스럽게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말이 좋아 떨어뜨려 놓는다는 것이지, 아이에게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고 떼어 놓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료 교사 중에는 덩치 큰 아이가 밀치는 바람에 책상에 갈비뼈가 부딪혀 금이 간 이도 있다. 일하다 다쳤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도 못해 사비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반면, 학부모들이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아이가 스스로 다쳐 멍이라도 들면 곧바로 의심의 눈초리로 최 씨를 쳐다본다.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의심은 쉬이 풀리기 어렵다.

최 씨는 가끔 동료 교사들과 대화를 나눌 때, 우스갯소리로 '보디캠'을 달고 수업을 해야 할 판이라고 하곤 한다. 서로 간 불신이 쌓인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동 중재 업무, 즉 아이의 행동 교정을 위해 훈육을 한다는 건 매우 어렵다. 아이가 떼를 쓰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할 경우, 취할 수 있는 훈육 방법은 사실상 없다. 오은영 박사처럼 아이의 팔다리를 붙잡고 아이가 순응할 때까지 기다리는 행동도 불가능하다. 자칫 팔목에 손자국이라도 남으면 학부모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훈육은 언감생심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떼를 쓰면, 보조교사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들어오는 식이다. 그게 모두에게 편한 게 되어버렸다.

특히 '주호민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는 누군가 늘 녹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더욱 조심하게 되고, 매뉴얼 대로만 아이들을 대하는 식이다. 이전처럼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고 행동을 교정하는 일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업무 스트레스에 무력감도

최 씨는 이대로 가다가는 조만간 자신도 옷을 벗게 될 수 있겠다 싶다. 각종 민원은 물론,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지나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개선하기 위한 훈육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무력감도 상당하다.

이는 비단 최 씨에게만 적용되는 일이 아니다. 상당수 특수교사들이 공통으로 느끼고 있다. 최 씨가 웃으면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맞이할 시간은 다시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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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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