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시진핑 비위 맞추려 노력한 트럼프, 다음은 시진핑이 트럼프 가지고 놀 수도"

[정세현-박인규의 정세토크 시즌 2] "2013년 시진핑이 제안한 '신형대국관계', 처지 곤궁해진 트럼프가 사실상 동의"

지난 13~15일 중국 베이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구체적인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캐나다와 그린란드, 베네수엘라 등 다른 국가들을 위협하던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고압적 태도가 시 주석 앞에서만큼은 다소 누그러진 듯이 보였다.

이와 관련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전쟁 이후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 배경을 짚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문제 등에서 중국의 협력을 요구했을 것이고 미국산 석유나 대두, 비행기 등을 판매하는 거래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목표한 만큼 이뤄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시진핑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그동안 다른 정상회담에서 상대를 압박하던 태도와는 다른,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표정이 나오더라"라며 미국이 이처럼 어려운 처지가 된 이유에 대해 "결정적인 것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라고 짚었다.

그는 "트럼프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꼬임에 빠져서 이란 전쟁에 끌려 들어가면서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현저히 잃어버렸다"라며 "나토 회원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은 이란 전쟁 문제에서 선을 그었는데, 이 국가들은 미국의 중국 봉쇄에도 같이 참여해야 할 나라들이었다. 미국의 이란 전쟁은 이들을 오히려 중국 편에 서게 만들면서 트럼프의 몰락을 부추겼고 이에 따라 미국의 쇠퇴 속도도 빨라졌다"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이란을 설득해서 전쟁을 끝내고 싶다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도 내 말 안듣고 한국이나 일본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니 나만 바보되게 생겼는데 문제를 좀 풀어달라고 시진핑에게 이야기했을 수 있다"라며 "그러나 시진핑은 그걸 왜 해야 하냐면서, 상황을 이대로 끌고 가서 트럼프의 무릎을 꿇리고 싶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신형 양극체제에서 중국이 약간 우위에 있는 상태로 가고 싶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은 이란전쟁을 빨리 해결해 봐야 별로 득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미국과 계속 대화하자면서 미국이 갈증 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이나 헤게모니를 좀 더 키워 나가려 할 것"이라며 "시간이 중국편이 된 상황에서 중국이 이란을 다독거려 전쟁을 끝내는 건 어려워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은 앞으로 미국에 더 뻣뻣하게 나갈 수 있다. 미국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농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면 대두를 중국에 팔아야 하고 무기를 만들려면 중국으로부터 희토류를 가져와야 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칼끝을 쥐고 있고 중국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형국"이라며 "이렇게 되면 9월 미-중 정강회담에서는 시진핑이 트럼프를 가지고 놀 수도 있다"라고 예측했다.

박 고문 역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네타냐후가 꼬신 이란 전쟁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도 트럼프가 참전하는 쪽으로 밀어붙였고, 결국 곤경을 자초하고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2013년 시진핑이 오바마에게 제안했던 '신형 대국관계', 즉 중국판 '신형 양극체제(Neo Bi-polar System)'가 도래하고 있다"라며 "어쩌면 트럼프가 13년 만에 시 주석의 제안에 사실상 동의해준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북한이 지난 3월 22~23일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영토 조항을 신설한 것을 두고 정 전 장관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명시된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규정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정전협정의 효력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근거한 군사분계선을 북한이 국경선으로 삼게 되면 그동안 정전협정을 관리해 온 유엔군사령부의 법적 위상이나 권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라며 "국경선이 돼버리면 이걸 계속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관리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도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담은 18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미중 정상회담에 대해 총평을 해보자면 중국 위상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종료가 가속화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회담을 통해 구체적으로 합의된 것이라고는 9월에 시진핑 주석이 미국에 간다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중국 쪽에서는 미-중 관계가 국제정치에서 제일 중요하다면서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경쟁을 하자는 것을 주요 메시지로 내놨다. 그리고 대만문제는 내정문제니까 간섭하지 말라고 했고 평화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미국과 이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대해서는 대화로 풀어야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 이후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 문제 등에서 중국의 협력을 요구했을 것이고 미국산 석유나 대두, 비행기 등을 판매하는 거래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목표한 만큼 이뤄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떤 중국통은 트럼프가 9월에 시진핑을 부른 것은 중간선거용, 그러니까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시진핑 역시 정치적인 측면에서 챙긴 것이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이번에 예외적으로 미 전쟁부 장관인 피트 헤그세스가 동행했는데 미국과 확대 정상회담 때 중국도 국방장관이 나섰다. 이를 두고 중국 인민들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보여줌으로써 시진핑의 4연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측면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세현 :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시진핑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그동안 다른 정상회담에서 상대를 압박하던 태도와는 다른,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표정이 나오더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2012년 저서 <온 차이나>(On China)에서 미국을 '쇠퇴하는 국가(decling country)'로, 중국을 '떠오르는 국가(rising country)'로 규정했는데 이것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진핑 주석은 2012년 10월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되고 2013년 3월 국가 주석에 오른 뒤 그해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회담을 가졌었다. 그는 당시 회담에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 나눠 써도 충분할만큼 넓다"고 말하면서 "중국과 마국이 '신형대국관계'를 구축하자"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전까지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중동에 대한 보복 조치를 하며 중동에 군사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2010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40%가 되면서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G2로 올라서자 오바마 정부는 중동에서 발을 빼고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본격화하며 중국을 견제해 왔다.

트럼프 정부 1기 출범 때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채택하면서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직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도 이 전략은 계속됐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뻗어 나오려는 중국의 남진(南進)과 동진(東進)을 막으려는 일종의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이었는데 미국이 러시아 우크라 전쟁에 끼어들고 이란 전쟁을 벌이면서 이 전략이 흐지부지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중국이 구매력 등에서 여러 나라에 매력적인 상대가 되는 바람에 인-태전략이 힘을 잃어버리게 되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다. 트럼프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꼬임에 빠져서 이란 전쟁에 끌려 들어가면서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현저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은 이란 전쟁 문제에서 선을 그었는데, 이 국가들은 미국의 중국 봉쇄에도 같이 참여해야 할 나라들이었다. 미국의 이란 전쟁은 이들을 오히려 중국 편에 서게 만들면서 트럼프의 몰락을 부추겼고 이에 따라 미국의 쇠퇴 속도도 빨라졌다.

이런 흐름을 보면서 2013년 6월 시진핑이 오바마에게 제안했던 '신형 대국관계'를 13년 만에 트럼프가 사실상 동의해 준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트럼프의 정책 결정 스타일도 현재 미국의 상황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미국 유학파들은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을 높게 평가했었다. 이들은 미국은 대외정책 결정과정에서 국방부, 국무부, 에너지부, CIA 등 정부 부처와 백악관, 민간 싱크탱크 전문가들의 의견들을 투입(Input)한 뒤 정책 수립(Conversion)과 반응을 검토(Feedback)하고 나서 결과물(Output)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미국 외교정책이 합리적이고, 미국이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미국은 이렇게 모든 요소와 변수들을 다 고려해 가면서, 또 국제적으로도 동맹국들과 협의를 통해 미국의 대외정책 방향과 전략적 중점 등이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이 위대한 것이고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은 SNS인 트루스 소셜 본인 계정에 메시지를 쓰는 걸로 정책 결정과정(Decision Making Process)을 대신하고 있다. 이제는 트럼프 때문에 대학 강단에서 '미국외교정책 결정과정론' 같은 강의를 할 수 없게 됐다고 할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Bi-polar System)가 구축됐다가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고 이후 탈냉전 시기가 도래하면서 미국중심의 일극체제(Uni-polar System)로 바뀌었다. 그러다 트럼프 시대가 열리면서, 이것도 무너지고 이제는 2013년 시진핑이 오바마에게 제안했던 '신형 대국관계', 즉 중국판 '신형 양극체제(New Type Bi-polar System)'가 도래하고 있다.

오는 9월에 미중 정상회담이 또 열린다면 신형 양극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일부에서 중국과 미국에 러시아까지 거론하면서 다극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데, 러시아는 변수는 되지만 다극의 '일극'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러시아는 우선 GDP가 미국이나 중국과 견줄 정도가 되지 않는다. 즉 군사력을 키울 수 있는 경제력이 없다. 과거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유산이나 지정학적 이점을 가지고 국제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5월 19-20일 시진핑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으로 달려온다는 것은 중국과 미국 사이의 양극체제에서 러시아가 어떻게 위상을 정립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미-중 사이 양다리 외교를 통해 러시아의 존재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베이징에 오는 것이라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현지시간) 오후 티엔탄 공원에 방문했다. ⓒAFP=연합뉴스

박인규 : 트럼프의 의사 결정이 절차를 밟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의사결정으로 이뤄지고있는 데 대한 문제는 분명해 보인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네타냐후가 꼬신 이란 전쟁에 대해 "말도 안된다"고 했는데도 트럼프가 참전 하는 쪽으로 밀어붙였고, 결국 스스로 곤경을 자초하고 심화시켰다고 평가된다.

그런데 미국과 이란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9월까지 이란전쟁이 계속되면 우리를 포함해 에너지 빈국들은 수급 문제가 생겨 어려워진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중국이 이란에 압력을 넣어 전쟁을 끝내면 본인도 체면치레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겠지만,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표가 나온 것은 없다.

정세현 : 중국 외교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만만디(慢慢地, 천천히 진행한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적을 이용해 다른 적을 물리친다)가 대표적인 특징인데 여기에 '기미불절'(羈縻不絕)도 있다. 이는 말 고삐를 느슨하게 매어 놓으며 어느 정도 자유는 주지만, 빠져나가려고 하면 잡아 당긴다는 뜻인데, 중국이 타국과 이러한 식으로 관계를 가져가려는 특성을 보인다.

중국은 이같은 외교적 원칙에 따라 이란 전쟁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굴레를 쓴 건 미국이 된 셈이다. 레버리지를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쥐어 준 셈이기도 하고.

트럼프는 이란을 설득해서 전쟁을 끝내고 싶다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도 내 말 안듣고 한국이나 일본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니 본인만 바보되게 생겼는데 문제를 좀 풀어달라고 시진핑에게 이야기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시진핑은 "내가 그걸 왜 해야 하냐"며 현 상황을 이대로 끌고 가서 트럼프의 무릎을 꿇리고 싶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신형 양극체제에서 중국이 약간 우위에 있는 상태로 가고 싶을 것이다.

시계열적으로 보면 중국은 자신들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 덩샤오핑은 1987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3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의 발전목표로서 '2개의 백년론'을 제시했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 즉 의식주 걱정이 없는 중진국을 만드는 것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모두가 잘사는 선진국인 다퉁(大同)사회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었다.

실제 경제적으로 중국은 2010년 G2 국가로 자리잡았고 2021년에 1인당 소득 1만 달러를 기록하며 샤오캉 사회 건설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다퉁 사회 건설에는 이제 23년이 남았는데, 미국 경제학자들 중에는 2035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 GDP를 능가할 수 있다는 전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퉁 사회는 모두가 한 울타리에서 평화롭고 사이좋게 지내는 건데 주도자는 중국이 되는 것이다. 즉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 되는 것인데, 중국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가 자충수를 둬서 2049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앞으로 8~9년 후에는 미국보다 경제력이 커질 수 있고, 시진핑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완성되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중국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메리카 대륙을 미국의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구상과도 짝을 이룰 수도 있다. 미주대륙은 미국세상이 되고 유라시아 대륙은 중국 세상이 되는 식으로 말이다.

따라서 중국은 이란에 대한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이란전쟁을 빨리 해결해 봐야 중국에 별로 득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미국과 계속 대화하자면서 미국이 갈증 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이나 헤게모니를 좀 더 키워 나가려 할 것이다. 시간이 중국편이 된 상황에서 중국이 이란을 다독거려 전쟁을 끝내는 건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도 이란전쟁 개입이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결정이 됐지만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죽도 밥도 안 된 상태에서 이 전쟁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 계속 기름값은 올라갈 것이고 미국의 몰락은 빨라지겠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태다.

박인규 : 시진핑은 이번 회담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마가'(MAGA)가 양립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세현 : 2007년 10월 15일 중국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후진타오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중국의 외교목표는 '중화부흥'이라고 제시했다. '중화'라는 용어는 중국이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의 영화(榮華)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를 다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 후진타오의 구상이었다.

이후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가 된 직후 한 행사에 참석한 시진핑은 '중국몽'(中国梦)을 언급했다. 이건 중국인들이 다시 천하의 중심이 되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2012년 이후 이 용어는 중국의 도처에 내걸리기 시작했다. 시진핑의 장기 집권 비전이 중국몽이었던 셈이다.

계획대로 해나가고 있는 시진핑 입장에서 내년 가을 열릴 당대회에서 4연임에 큰 장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이 상황에서 리더십이 바뀌면 중화부흥과 중국몽이 실현되기 어려울테니 4연임을 해서라도 일단 이를 끝내놓고 내려가겠다는 식의 명분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몽을 향해가면서 인민들의 공감대를 구축하려는 중국은 앞으로 미국에 더 뻣뻣하게 나갈 수 있다. 미국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농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면 대두를 중국에 팔아야 하고 무기를 만들려면 희토류를 중국으로부터 가져와야 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칼끝을 쥐고 있고 중국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형국인데, 이번에 보잉 비행기도 기존에는 500대 산다고 했었다가 200대만 팔았다는 것 아닌가? 이렇게 되면 9월 미-중 정강회담에서는 시진핑이 트럼프를 가지고 놀 수도 있다.

박인규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미-중 정상회담 직전인 13일 서울에서 만나서 의제를 조율했다고 하는데 이건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정세현 :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이미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본다. 좀 과장이 될지도 모르지만, 일본도 못하고 대만도 할 수 없는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 것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 한국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재자(moderator)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걸 시사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에 가서 미국과 협의할 수는 없고 일본과 관계가 좋지 않아 일본을 꺼리기 때문에 한국밖에 장소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중재자 역할 할 수 있다는 것을 미-중이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외교적으로 몸집과 영향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이번 지방선거 끝나고 나서 이런 현실을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인사를 찾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 하겠다는 윤석열의 '립 서비스'를 믿고 그를 검찰총장 시켰다가 나라가 이렇게 어려워진 것 아닌가? 인사는 정말 중요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인사가 만사'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인규 : 미국이 2차대전 끝나자마자 서유럽과 동아시아, 중동 등 세 곳을 보루로 삼아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을 봉쇄하면서 패권을 유지해 왔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나면서 나토가 위기에 빠졌고 이란과의 전쟁으로 인해 중동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나서서 이란과 협력을 통해 미군이 없는 안보를 만들겠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동아시아는 아직 이런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시진핑이 이번 미-중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미국에게 "대만을 건드리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상황이 됐다. 우리 입장에서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효용성 등에 대해 드러내놓고는 아니더라도 미군과 군사동맹이 동아시아 평화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 아닌가?

정세현 :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외 정책의 기본은 대 소련 대 중국 봉쇄였다. 그걸 깨고 나가려는 것이 시진핑의 '신형 대국관계론'이고 일대일로 프로젝트인데, 이번에 이란 전쟁 이후 미국의 대중 봉쇄 정책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본다.

근데 그렇다고 주한미군을 나가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중 봉쇄 라인이 깨졌기 때문에 미국이 주한미군을 전략적으로 유연하게 써야 하는 상황이다. 즉 평택에 있는 미군을 빼서 동중국해나 남중국해로 보내는 등의 상황이 많아질 텐데 그렇기 때문에라도 주한미군사령관이 가지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아와야 한다.

미국의 대중 봉쇄 정책이 흔들리기 때문에 주한미군은 대만 문제 등에 개입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이 다급해진 상황에서 우리가 여기에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우리 군에 대한 전작권을 가지고 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이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전작권 반환과 관련해 "2029년 3월까지 해당 조건을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미 전쟁부)에 제출했다"라고 밝혔다.

2006년 7월 노무현 정부가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2012년 4월 17일에 미국으로 부터 찾아오기로 합의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북핵문제가 복잡해졌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 시기를 2015년 12월 31일로 미뤄 놓아 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전작권 환수 문제를 시기문제가 아니라 조건문제로 만들어 놨다.

중국 견제 때문에 '아시아로 귀환(Pivot to Asia)을 서두르던 미국으로서는 "얼싸 좋구나!"가 된 셈이다. 전작권 환수가 시기문제에서 조건문제로 바뀌면서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조건 불충족이라는 꼼수 장벽에 막혀 결국 전작권 환수에 실패했다.

이런 실패 사례를 이재명 정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니 전작권 반환은 안된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원래 해주기 싫으면 원칙은 합의해 놓고 조건 타령하면서 시간 끌다가 유야무야 만드는 것 아닌가?

여기에 우리 군 당국도 주한 미군사령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게 문제다. 전작권을 찾아오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군사적 전문성 핑계로 장성들이 미국 말을 따라야 한다고 할 때 이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으로 가야 한다. 소위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는 말로 주한 미군사령관이 바라는 대로 하자는 장성들을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두 국가, 북한이 하자는 대로? 우리가 고민하고 대응해야

박인규 : 북한이 지난 3월 22~23일에 진행된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를 통해 헌법을 개정했다. 개정된 헌법에서 북한은 영토 조항(제2조)을 신설했지만 남한에 대해 교전중이라느니 적대적이라는 수식어는 따로 없었다.

정세현 : 헌법에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로씨야(러시아)련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령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령해와 령공을 포함한다"라는 구절을 명시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보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닌 5월 17일 전군의 사단·여단 지휘관을 노동당 중앙청사로 소집해서 "남부 국경선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북한은 헌법에서 영토 규정을 신설하고 남쪽과 경계선을 국경선이라고 밝히는 등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명시된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규정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정전협정의 효력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1991년 12월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별도 합의 전까지 기존의 이 경계선을 유지하며 존중한다는 표현도 있었는데 북한이 이를 국경선으로 규정해버린 헌법 영토조항의 연장선상에서 서해5도 주변의 경계선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북한은 지난 1999년 9월 2일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했는데 연평도와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로 가기 위한 좌우 폭 1마일의 해로 통항만 허용하고 인근 수역은 북한의 해역이므로 자신들이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많은 차이가 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근거한 군사분계선을 북한이 국경선으로 삼게 되면 그동안 정전협정을 관리해 온 유엔군사령부의 법적 위상이나 권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국경선이 돼버리면 이걸 계속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관리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도 생기기 때문이다.

▲북한이 3월 23일 평양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회의 2일회의를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박인규 : 국제정세에서도 중대한 변화가 있지만 남북관계에서도 두 국가론이라는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정세현 : 북한이 하자는 대로 끌려갈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전협정 상의 군사분계선(DMZ)을 국경선으로 만들려는 북한의 목적이 그동안 60년대 북한이 '3대혁명 역량강화론'에 입각하여 꿈꿔왔던 소위 '조선반도의 공산화'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그 꿈을 접고 남한에 먹히지 않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를 따져보고, 거기에 어떻게 우리가 대응할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국경선을 계속 군사분계선이라고 고집하고 '북한 너희도 우리의 일부야'라고 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하는데 좀 공허한 측면이 있긴 하다.

일단 따로 살자는 북한은 유엔사의 군사정전위원회 차원에서 하는 연락도 앞으로 안 받을 수도 있다. 또 북한은 1990년대 초에 이미 조선인민군 판문점 연락대표부라고 명칭을 바꿨는데 우리도 바꿔야 할 필요가 생길 수도 있다.

두 개 국가를 일단 기정사실로 받아줄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 호칭 변경도 필요하다. 저쪽에서 우리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건 자기들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불러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수원에서 열리는 아시아 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17일 입국한 북한 여자축구선수단이 인천공항에 들어오면서, 그동안의 관례에 따라 우리측이 제공한 '방문증'을 거부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명의의 '려권(旅券)'을 제사한 것이 그 상징적 행동이다.

박인규 :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되 이걸 건설적이고 평화적으로 바꾸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정세현 : 어떻게 보면 이재명 정부가 운이 나쁜 것인데, 적대적 두 국가가 아니라 평화적 두 국가 관계라도 구축하려면 일단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걸어왔던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 또 전작권을 찾아오게 되면 국경선과 군사분계선 문제도 같이 검토해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박인규 : 이번 정상회담으로 미-중 간 세력 교체 또는 전이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 내부의 대외 사령탑에서도 이런 부분을 고려해 대외정책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어떻게 진용을 갖춰야 할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정세현 :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까지 이란 전쟁 관련해서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미관계를 잘 관리해 왔지만, 미국의 우리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으로 미-중 간에 힘의 균형추가 이동하기 시작한 마당에 미국의 우리에 대한 압박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트럼프 임기 후반과 겹치는 향후 1~2년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도 외교안보 진용을 강화하고 전열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 데다가 다음 달 초 지방선거가 끝나면 국무총리 변화 가능성도 있어서 인사 수요가 발생할 수도 있다.

미-중 간 힘의 균형추, 세력관계가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팀에 미국만 바라보는 외교를 본인의 DNA로 삼아왔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으면 이재명 대통령이 '자국중심성'이 있는 외교안보 정책을 펼쳐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변화하는 상황에 잘 대비해 나가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자국중심성이 있는 시각으로 판세를 읽어낼 수 있는 참모들을 외교 안보 분야에 장·차관 또는 청와대 참모진으로 임명해야 하겠다는 결기를 발휘해줘야 한다.

올해는 이재명 정부의 집권 2년차이기도 하고 전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시점이다. 이런 시대에 편중된 국제정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대통령을 보좌하면 자칫 썩은 동아줄을 붙들고 있다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미국-이란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될지 아니면 고비를 넘길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힘은 어쨌든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적응할 수 있는 멘털리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미(反美) 색채가 강한 사람을 쓰라는 뜻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상인적 현실감각'과 '서생(書生)적 문제의식'을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늘공'(늘 공무원의 줄임말, 직업 관료를 뜻하는 은어) 이었던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당장 필요한 대책개발을 주로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서생적 문제의식을 많이 가지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현업에서 물러나니까 그런대로 서생적 문제의식이 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현장지시를 하는 걸 보면 본인이 상인적 현실감각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 같고 서생적 문제의식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참모진도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겸비한 사람들로 짜이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또 대통령과 참모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자문기구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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