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강진 사망자가 2200명 이상으로 불어난 가운데 주로 남성으로 구성된 구조 및 의료 인력들이 가족이 아닌 여성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탈레반의 억압적 규범 탓에 여성 구조 및 치료를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구호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탈레반 정권에서 교육, 직업, 이동 등 자유를 박탈 당한 아프간 여성들은 재난 상황에서도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
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탈레반 당국은 아프간 동부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205명으로 늘었고 부상자도 3640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전에 공개된 사망자 규모인 1400명에서 크게 증가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낭가르하르주 잘랄라바드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6 지진 뒤 2일 규모 5.5 여진이 발생하며 낙석으로 인해 도로가 추가로 끊겨 구조에 차질이 빚어진 상황이다.
독일지구과학연구센터(GFZ)에 따르면 4일에도 이 지역에 규모 6.2 여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인한 추가 피해 규모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당국이 지진으로 주택 6700채가 파괴됐다고 파악 중인 가운데 아직 잔해 속에 갇힌 이들이 많아 사상자 증가도 우려된다. <로이터>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나무와 진흙 벽돌로 지어져 지진에 취약한 이 지역 주택들에 최근 폭우가 더해져 지반이 불안정해지며 피해를 키웠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4일 구호단체 이슬라믹릴리프는 조사 결과 지진으로 피해 지역의 건물 98%가 파괴되거나 손상됐고 가구당 평균 2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고 추산했다.
피해 지역인 낭가르하르, 쿠나르주 등이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고 도로가 끊겨 구조 및 구호가 충분히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대부분이 남성인 구조대가 여성 구조를 망설이며 지진 피해 여성들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 받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뉴욕타임스>(NYT)는 가족이 아닌 남녀의 신체적 접촉을 금지하는 탈레반 규범 탓에 대부분 남성으로 이뤄진 구조대에 의한 여성 구조 및 부상 치료가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낳은 쿠나르에서 자원봉사 중인 남성 타지불라 무하제브(33)는 전원이 남성으로 구성원 의료팀이 무너진 건물 잔해 밑에 갇힌 여성을 구출하는 것을 주저했다고 증언했다. 갇히고 부상 당한 여성들은 잔해 아래서 다른 마을 여성들이 이들을 구출하러 올 때까지 방치됐다고 한다. 그는 여성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도 남성 친척이 없으면 피부끼리 닿는 것을 피하려 구조대가 주검의 옷을 잡고 끌어냈다고 덧붙였다.
무하제브는 "여성이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남성과 아이들은 먼저 치료를 받았지만 여성들은 따로 떨어져 앉아 치료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여성의 중등학교 이상 진학을 막고 비정부기구(NGO) 활동까지 금지하며 아프가니스탄엔 여성 의료인과 여성 구호활동가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지진 다음 날 자사 기자가 쿠나르 마자르다라 지역에 도착했을 때 의료, 구조, 구호 인력 중 여성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방문한 한 지역 병원에도 여성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2일부터 피해 지역에 도착하기 시작한 간호사와 인도주의 활동가 중에도 여성은 소수에 불과했다.
탈레반 정부 보건부 대변인인 샤라파트 자만은 피해 지역에 여성 의료 인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쿠나르, 낭가르하르, 라그만 병원엔 여성 의사와 간호사가 많이 있고 지진 피해자들을 치료 중"이라고 주장했다.
쿠나르 안다룰루칵 마을 지진 피해자인 비비 아이샤(19)는 <뉴욕타임스>에 지진 발생 36시간 이상이 지난 뒤 마을에 첫 구조대가 도착했지만 모두 남성이었고 이들은 다친 남성과 어린이는 서둘러 옮겨 치료했지만 소녀를 포함한 여성들은 피를 흘리고 있어도 뒷전으로 밀렸다고 증언했다. 이 마을엔 4일까지 여성 구호 활동가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아이샤는 "신이 나와 내 아들이 살려주셨다. 하지만 그날 밤(지진) 이후 여기서 여성이란 언제나 가장 마지막까지 보이지 않는 존재란 걸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이번 지진은 탈레반의 여성 인권 탄압으로 인한 국제사회 지원 급감,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해외 원조 삭감, 탈레반 정권의 NGO 활동 제한 등으로 아프간이 이도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가운데 발생해 구호 단체들은 극심한 자원 부족을 호소 중이다. 4일 <AP> 통신은 구호단체 노르웨이난민위원회의 경우 아프간에 있는 직원이 2023년 지진 때의 절반 이하인 450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창고도 한 곳만 남았고 비상 재고 또한 없다고 한다. 이 단체의 아프간 담당 홍보·옹호 고문인 마이삼 샤피이는 "사람들은 도움이 당장 필요한데 자금을 지원 받아도 물품 구매에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쿠나르 누르갈의 유엔(UN) 시설에서 부상자를 돌보고 있는 샴샤이르 칸은 "약품도 서비스도 충분치 않다"며 "이들에게 더 많은 약과 천막, 음식과 마실 물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통신에 전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