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지진 사상자 급증…트럼프 집권후 지원 삭감한 미국은 "애도"만

영국은 탈레반 피해 구호기구 통한 지원 방침…"억압 속 여성들, 가족이 데려갈 때까지 병원 못갈 수도"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지진에 국제사회의 도움이 속속 도달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아프간 원조를 삭감한 미국은 애도만 표하고 지원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아프간은 이미 지진 전 탈레반 집권 뒤 인권 억압으로 국제 구호 급감, 트럼프 정부의 해외 원조 삭감, 인접국에서의 난민 강제 귀환이라는 인도적 위기 삼중고를 겪고 있었다. 탈레반 억압으로 여성의 경우 구호 접근성조차 떨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2일(이하 현지시간) <AP> 통신은 지난달 31일 오후 11시47분께 아프간 동부 낭가르하르주 잘랄라바드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6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900명으로 늘고 300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피해 지역이 산악지대인 데다 폭우 영향으로 산사태 위험까지 커지며 구조대가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미 CNN 방송을 보면 아프가니스탄 적신월사는 사망자 수가 이미 1124명에 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탈레반 정권은 지진 구호를 위해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1일 <로이터> 통신은 샤라파트 자만 아프간 보건부 대변인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과 집을 잃었다"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여학생 등교를 거부하는 등 여성 탄압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탈레반 정부는 1일 <로이터>에 "현재까지 구조나 구호 활동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한 외국 정부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이후 구호의 손길이 속속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일 중국 외교부는 "아프간의 필요에 대응해 최선을 다해 도움을 제공하겠다"며 지원 의사를 밝혔고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아프간 외무장관과 통화해 애도를 표했고 천막 1000개를 보냈고 식량 15톤(t)도 즉시 전달될 계획임을 알렸다.

2일 영국 정부는 아프간 지진 피해 구호를 위해 1백만파운드(약 19억원)를 긴급 지원하되 탈레반 정권으로 흘러 들지 않도록 유엔 등 구호기구를 통해 기금을 분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금은 유엔인구기금(UNFPA)과 국제적십자사(IFRC)를 통해 여성에 대한 필수 의료, 응급 의료 용품, 난민 대피소 지원 및 구조 인력 동원과 구급차 배치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도 지원을 밝힌 상태다.

미 국무부 중앙·남아시아국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애도"를 표했지만 지원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국제 지원 급감·트럼프 원조 삭감·인접국 난민 추방' 삼중고 속 지진 발생

이번 지진은 탈레반 정권의 인권 탄압으로 국제사회의 아프간 지원 급감 및 트럼프 정부의 해외 원조 삭감, 이란과 파키스탄이 아프간 난민을 대거 자국으로 돌려 보내는 인도적 위기 삼중고 속에서 발생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자료에 따르면 올해 아프간 지원 기금은 지진 전에도 이미 필요량의 30%를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여성 인권 보장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핵심적 요구 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며 제재가 가해져 외환보유고가 동결됐고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던 원조 상당 부분이 이탈했다. 이런 상황에서 탈레반 정권은 국내외 비정부기구(NGO)에서 여성 활동을 금지해 인도적 활동을 더욱 위축시켰다.

올해 트럼프 정부의 아프간을 포함한 해외 원조 대폭 삭감도 이 나라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OCHA 자료를 보면 지난해 미국은 아프간 원조의 45%를 담당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31일 기준 트럼프 정부의 원조 삭감으로 아프간에서 422곳 의료 시설 운영이 중단되거나 종료됐고 300만 명 이상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집계했다.

미 국무부가 지난 4월 테러 단체 탈레반에 이득을 준다며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WFP 자금 지원 중단을 알린 가운데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7월 WFP가 긴급 식량 지원이 필요한 아프간인 1천만 명 중 1백만 명만 지원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원조가 줄어든 상황에서 외국인 혐오 등으로 인한 강제 귀환을 포함한 인접국의 난민 추방 움직임은 아프간에 더 큰 어려움을 안긴다. 지난달 국제이주기구(IOM)는 인접국 이란과 파키스탄에서 올해만 150만 명 이상이 아프간으로 귀환했고 파키스탄 정부가 아프간인들의 체류 연장을 거부함에 따라 추가로 1백만 명이 더 귀환할 것으로 예측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노스이스턴대 회복력 연구 부문 책임자 대니얼 앨드리치는 "이러한 지진 여파를 수습할 때 국내 통치 구조와 국제 원조가 매우 중요한데 현 시점 아프간은 둘 모두가 안 좋은 상황"고 우려했다.

인도주의 기구 국제구조위원회(IRC) 아프가니스탄 대표 셰린 이브라힘은 1일 성명을 통해 "이번 재난이 아프가니스탄의 전반적인 인도적 대응에 추가적 부담을 줄 것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국제 원조 삭감으로 아프간에서 진행 중인 인도적 위기 대응 능력이 심각하게 저해됐다. 국제사회가 아프간 지원을 강화할 때"라고 촉구했다.

이번 지진으로 여성과 소녀들이 구호 접근에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제구호단체 케어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장 그레이엄 데이비슨은 1일 성명을 내 탈레반 정권이 여성과 소녀들에게 가하는 제한으로 인해 "생명을 구하는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계속 제한돼 이들은 지진 이후 가장 취약한 집단으로 남게 된다"고 밝혔다.

영국 BBC 방송은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쿠나르주가 매우 보수적 지역으로 여성들이 가족이 병원에 데리고 갈 때까지 의료기관에 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현장에 여성 구조대원이 없는 점도 여성의 구조 확률을 낮추는 요인이다. 쿠나르 주민인 프리랜서 언론인 마티울라 샤하브는 방송에 자원봉사자들이 마을의 무너진 집에서 두 여성을 구조하는 걸 봤지만 탈레반이 여성의 사진을 찍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현장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외교부는 2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8월 31일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수많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와 애도의 뜻을 표한다"라며 "이번 피해 지역의 조속한 복구를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날 아프가니스탄 동부에 발생한 지진 피해를 입은 쿠나르주 마자르다라 마을에서 1일(현지시간) 군용 헬기가 부상자를 실어 나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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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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