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뚫고 23일간 230km 행진... 남태령 울려 퍼진 "새만금 신공항 절대 안돼"

[현장] '새, 사람 행진단' 서울 도착, 남태령 집회 "법원, 기후재난 공범될 건가"

지난달 전주를 출발한 '새, 사람 행진단'이 23일간 230여km(킬로미터)를 걸어 5일 서울 남태령에 도착했다. 지난해 12월 22일 농민들의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가 시민들의 연대로 경찰 저지선을 뚫고 서울로 진입한 바로 그 지점이다.

이번엔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 300여 명(행진단 추산)이 남태령 고개에 섰다. 이들은 이곳에서 "법원은 기후재난 시대에 걸맞은 판결, 새만금 신공항 기본 계획 취소를 선고하라"고 거듭 외쳤다.

'새, 사람 행진단'은 오는 11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선고를 앞둔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의 인용을 촉구하기 위해 꾸려졌다. 지난 2022년 1308명의 시민이 공동으로 제기한 새만금 신공항 건설 반대 소송이다. 지난달 12일 전주 전북지방환경청에서 행진을 시작한 이들은 이날 오후 남태령 고개를 통해 서울로 진입했다.

오후 1시 30분, 이들은 남태령 고개 왕복 8차선 중 1개 차선을 점거하고 40여 분간 집회를 열었다. 집회 곳곳에서 '새 모자'를 쓰거나 새가 그려진 피켓을 든 행진단원들이 눈에 띄었다. 공항이 들어설 새만금의 수라갯벌은 세계적인 철새 이동 경로로,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다양한 새들이 거쳐 가는 서식지다. 새만금 신공항이 들어서면 멸종 위기가 가속할 수 있다. 행진단 이름이 '새, 사람'인 이유다.

▲5일 남태령 고개에 도착한 '새, 사람 행진단' 모습. ⓒ민주노총
▲5일 남태령 고개에 도착한 '새, 사람 행진단' 모습. 문정현 신부(가운데)가 새 모자를 쓰고 있다. ⓒ민주노총

2021년 국토부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새만금신공항의 조류 충돌 위험도는 무안공항보다 610배가량 높다고 추산됐다. 건설 예정지에서 1.3km 떨어진 군산공항은 2023년 5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새만금 신공항 또한 사업 타당성 평가에서 0.479점(1점 만점)을 받았다. 군산 시민들은 군산미군기지 측에서 2007년부터 새만금 부지에 활주로 설치를 요구해 온 점에 비춰, 이번 신공항이 미군 기지 확장의 일환이라고 의심한다.

미류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은 행진을 이끈 트럭 위에 서서 "그리 많은 새가 살아가는 곳에 공항을 지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며 "바로 옆의 군산공항도 비고 있다. 전북 도민을 위해서도 그 공항이 필요하지 않은데 왜 지어지고 있느냐"고 소리쳤다.

미류 위원장은 "공항을 건설해서 이윤을 올리려는 자본, 새만금으로 뭐라도 해서 치적을 올리고 싶은 정치인, 군사 기지로 쓰고 싶은 미군을 위해 지어지고 있다"며 "이와 함께 우리가 미래로 갈 수 있느냐. 반드시 이 새만금 신공항을 없애고 미래로 가자"고 발언했다.

이어 행진단원 3명이 트럭에 올라 성명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수라 갯벌은 군산 새만금호 만경 수역에 유일하게 남은 갯벌"이라며 "이미 과거 새만금 개발로 서식지를 잃은 뭍 생명들이 수라 갯벌에서 살아남았고, 법정 보호종만 64종이 살아가는 생명 다양성의 보고"라고 소리쳤다.

이들은 "나중으로 미뤄진 차별 없는 세상, 자연과 뭇 생명에 대한 착취가 중단되는 세상, 일하는 사람들이 일회용품으로 전락하지 않는 세상, 경쟁이 아닌 돌봄과 연결의 세상에 대한 열망이 아직 뜨겁게 남아 있다"며 "정부는 조류 충돌 참사와 미군 기지 확장으로 이어질 새만금 신공항을 중단하고, 법원은 새만금 신공항 계획 취소 판결로 '개발 중심 서해'의 종식을 선포하라"고 요구했다.

▲5일 '새, 사람 행진단'의 행진을 이끈 트럭 위에서 한 발언자가 "새만금 신공항 취소"를 외치는 모습. ⓒ민주노총
▲5일 남태령 고개를 지나 인덕원 역 인근에 도착한 '새, 사람 행진단' 모습. ⓒ민주노총

이날 행진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연대 시민들이 함께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도 이날 오전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남태령 고개로 왔다.

김 지도위원은 "강화가 고향이다. 갯벌에서 자랐다. 갯벌들이 사라지는 건 우리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이후 인류에 영향을 주는 문제"라며 "이렇게 무책임하게 자본과 미군의 이익을 위해 졸속으로 결정하는 게 용납이 안 된다"고 행진 이유를 밝혔다.

군산 시민 정은애씨는 성소수자부모모임 깃발을 몸에 휘감고 걸었다. 정 씨는 "세상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듯, 새만금 신공항도 생명과 생태를 배제하는 마찬가지의 문제다. 그래서 왔다"며 "공항을 하면 대체 누가 돈을 버나? 군산시가 돈을 버나, 군산 시민이 돈을 버나?"라 물었다.

정 씨는 "개발 이익은 정말 몇 사람 개발업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새만금 신공항은 비유하자면 사람의 몸에서 신장을 잘라 위로 만드는 그런 느낌이다.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수원에서 재생에너지 운동을 하는 정하니 씨는 행진단이 평택에 들어선 지난 30일부터 6일째 70km 가량을 걸었다. 정 씨는 "햇빛발전도 마찬가지다. 내가 에너지 운동을 시작한 이유도 어떻게 생태계나 환경에 해가 되지 않으면서 태양광 재생에너지를 설치할 수 있을까에 있다"며 "자연엔 반드시 지켜야 할 균형이 있다. 인간의 과대한 욕망에 이를 희생되게 놔둬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새, 사람 행진단은 오는 10일까지 행진과 직접행동을 이어간다. 6일엔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까지 행진하고 8일엔 다시 사당역에서 서울행정법원까지 행진한다. 이후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1만 3000배 절을 올릴 예정이다.

▲5일 '새, 사람 행진단' 행진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모습. ⓒ프레시안(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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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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