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세 명이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공개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한국인 소유 현지 공장에서 일하며 감내해야 했던 7년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임신부 해고 관행과 반복적 단기계약을 참지 못해 목소리를 내자마자 해고당했고, 법원이 부당해고 판결을 했음에도 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극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두 편의 기사를 통해 이를 전한다. 두번 째 편에서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과 비슷한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담았다.
해방과 전쟁 뒤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1961년 92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어느덧 3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 사이 수많은 기업이 성장했고, 해외에 공장을 짓거나 공급망을 구축하는 기업도 크게 늘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9930개의 한국기업이 해외에 진출해 있다. 그 중 7263개는 아시아로 갔다. 다음은 북미 1065개, 유럽 1010개, 중남미 268개, 중동 214개 순이다.
한국 기업이 아시아를 주로 찾는 이유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리적 이점으로 인한 물류비용 절감은 물론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와 취약한 규제환경을 노린 것이다. 이는 기업의 생리에 가까운 활동이기에 이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문제는 한국사회에도 만연한 노동법 위반, 노조 탄압 같은 악습도 함께 수출됐다는 것이다. 임신부 해고, 반복적 단기계약 등에 항의하며 노조를 만든 캄보디아 CIK 노동자들이 해고된 일은 그 축소판이다. 심지어는 복직을 명한 현지 법원의 확정판결마저 무시되는 지경이다.
한국 기업의 노동 착취·탄압, 한 기업만의 문제 아니다
한 회사의 일만은 아니다. 휴먼라이츠나우, 기업과인권네트워크 등이 함께 발간한 <노동 환경 및 아시아 다국적 기업>(2024) 보고서는 비슷한 사례로 넘쳐난다. 특히 CIK와 같은 의류산업은 "해외 한국 기업의 인권 침해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야"로 지목된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태평양에 있는 미국령 사모아에서 한국인 소유 의류 공장인 대우사사모아가 1999년 200여 명의 중국·베트남인 노동자를 감금하고 신체적 학대, 폭행 등을 동반한 강제노동을 시켰다. 이 사업주는 미 법원에서 실형 40년을 선고받았다.
다음으로 2006년 필리핀에서는 필스전이라는 회사의 한국인 기업주가 현지 대법원이 인정한 합법적 노조를 폭력배를 고용해 탄압했다. 이에 두 여성 노동자가 농성을 이어가자 괴한을 동원해 그들을 납치하기까지 했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도 인도네시아에서 SKB라는 회사의 사장이 약 60억 원의 임금을 체불한 뒤 자취를 감쳤다. 다른 구제책을 찾지 못한 300여 명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는 공장을 검거하고 자카르타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앞에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도 열었다.
한국 정부가 이런 일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SKB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체불임금 문제의 해결을 지시했다. 이에 한국 경찰 등 관계 당국이 움직임에 나섰고, 노동자들은 체불된 임금을 받았다.
이는 예외적인 일이다. 사건 직후 코로나19가 발생해 국제 교류 자체가 줄며 비슷한 일에 대한 구조적 대책을 마련하는 데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오죽하면 휴먼라이트나우는보고서에서 "한국 공장주의 임금 절도와 갑작스러운 도주는 흔한 일"이라고 기록했다.
이밖에도 보고서에는 미얀마 군부와 결탁한 포스코 인터내셔널의 가스전 개발,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직업성 질병, 환경오염, 장시간 노동, 근로계약 위반 등 문제를 일으킨 일 등 다른 산업 분야의 인권·환경 침해 이야기도 기록돼 있다.
한국 기업의 해외 착취 막으려면…구조적 대책, 정부 태도 변화 병행돼야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며 노동권·인권 문제도 늘어났다. 이에 따라 기업의 공급망 윤리와 관련한 법제를 다듬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참고할 만한 사례는 유럽에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직원 1000명·세계 순매출액 4억 5000만 유로(약 7800억 원)이 넘는 역내 기업', 'EU 내 순매출액 4억 5000만 유로를 넘는 역외 기업'에 공급망 내 모든 업체에 대한 인권 실사 의무를 지우고 인권·환경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하게 하는 지침을 만들어 회원국에 입법 의무를 부여했다.
한국에는 비슷한 법이 없다. 21대 국회에서 상시 노동자 500명 이상, 매출액 2000 억 원 이상 기업에 국내외 공급망 전체에 대한 인권·환경 실사 의무를 부과하고, 미이행 기업에 공공조달 입찰 제한, 과태료 및 형사책임 부과 등 조치를 취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으나, 한 차례 폐기됐다.
이후 22대 국회에서도 같은 법안이 발의됐으나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되면, 예컨대 CIK에서 제품을 납품받은 롯데쇼핑, 이마트 등에 공급망 윤리 실사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외교 행정 차원에서도 EU는 유럽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지역에 회원국 합동 사무소를 두고 기업에 공급망 윤리를 지키라고 안내하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사관에 기업 민원을 다루는 상무관은 파견하면서도, 노동 문제를 다루는 노무관은 중국, 베트남, 인도 등 소수 국가에만 파견하는 등 상대적으로 공급망 윤리에 무감하다.
시민사회에서는 법과 제도를 논하기에 앞서, CIK 사례와 같이 한국기업이 현지 법원 판결을 짓밟아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한 행정적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은 "국제인권운동을 오래 했지만, 한국 기업이 현지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최소한 확정판결이 난 일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도 현지 법을 존중해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캄보디아 노동자들도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인권을 존중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CIK 사안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관련해서 그는 "한국인 기업주에게 요청해 노사 간 교섭 자리를 열어줄 수 있을 것"이라며 "대사관에도 연락해 봤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고 답했다.
나 국장은 "현지 법조차 지키지 않는 기업을 내버려두는 지금 같은 정부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는 물론 사회 전체가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관심을 가져야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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