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질서 균열의 거울…러-우 전쟁은 왜 멈추지 않나

[대학알리] 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교수가 '비틀어 본' 러-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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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차, 드론, 미사일, 핵 위협이 오가는 전장은 여전히 확전 가능성을 안고 있다.

전쟁은 단순한 무력 충돌을 넘어 복합적인 국제 정치의 산물이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유일 패권국으로 국제 질서를 주도하며 구소련권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해 왔다. 우크라이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2004년 '오렌지 혁명', 2014년 '유로마이단 등 반복된 친(親) 서방 정권 수립은 러시아의 강한 반발을 야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국 안보를 지키는 지정학적 완충지대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내전이 발발하며 양측의 갈등은 본격화했다. 러시아는 자국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무력 개입에 나섰고, 서방은 이를 침공으로 간주해 대응 수위를 높였다. 2022년 전면전이 발발한 이후에도 양국은 일시적으로 평화 협상을 시도했지만, 결국 협상은 무산됐고 전쟁은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은 무기 지원과 군사 자문을 통해 사실상 전쟁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외대알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구조적 배경과 장기화 원인, 언론 보도의 맹점 등을 분석하기 위해 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교수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중인 김선래 한국외대 교수 ⓒ외대알리(허부현)

피할 수 없었던 충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영토 침공이 아니라, 세계질서가 일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이동하는 전환기 속에서 발생한 구조적 충돌로 분석된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유일한 패권국으로 국제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러시아를 견제 대상으로 삼고, 구소련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을 촉진하는 '색깔 혁명'을 지원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전략의 핵심 국가이고, 동시에 러시아의 안보 이익이 걸린 민감한 지역이다.

김 교수는 "2000년 미국 네오콘은 러시아를 21세기 질서의 가장 큰 장애물로 간주했고, 이를 제압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 내부 갈등을 활용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서부와 동부 간의 정치적 성향과 정체성이 크게 갈라져 있었고, 서방 진영은 서부를 중심으로 한 친 서방 정권을 지지해 왔다. 이에 따라 2014년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내전이 발생했고, 러시아는 자국계 주민 보호를 이유로 무력 개입에 나섰다.

당시에도 전쟁은 예고돼 있었다. 김 교수는 "2014년 내전 당시 이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은 외교적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충돌은 구조화됐다"고 말했다.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추진과 서방의 군사적 지원을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2022년 전면전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침공 직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 고멜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평화 협상을 시도했다. 3월 이스탄불 협상에서는 평화협정 초안에 임시 조인하는 진전을 보였고, 러시아는 키이우 북부에서 일부 철수했다. 그러나 며칠 후,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군사 지원을 약속받으면서 협상은 중단되고, 전쟁은 장기전 양상으로 돌입했다.

단지 외부의 군사적 개입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전환의 배경에는 러시아가 전쟁 초기부터 제시해 온 명확한 전제 조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와 '비나치화'를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비군사화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중단과 서방 군사력의 철수를 의미하며, 비나치화는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해체와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전환이 필연적인 결과였다며 "러시아는 이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견하고 있었으며, 미국과 NATO의 개입 가능성에도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전쟁 목표가 단순한 전술이 아니라 협상 진입 장벽으로 기능했고, 장기전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설문조사 "러시아 대통령(총리)으로서 블라디미르 푸틴의 활동을 지지하십니까?"에 대한 러시아 여론 지지율 (출처=Statista/원자료=레바다 센터, 2025년 7월)

내부 통제와 동원의 구조

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는 사실상 전시체제로 전환했다.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통제는 강화됐고, 병력 동원 체계도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러시아의 여론조사기관 VTsIOM 등에 따르면 푸틴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해 기준 8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가 실제 여론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정보 통제와 표현의 자유 제한 속에서 형성된 결과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김 교수는 "지지율 수치 자체보다 중요한 건 전시 상황에서 비판적 여론이 제도적으로 억압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러시아는 주요 언론을 국영화하거나 정부 입장을 따르는 보도만 허용하고 있으며, 반전 시위는 법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SNS나 숏폼 콘텐츠를 통한 저항 시도는 간헐적으로 발생하지만, 사전 검열과 실시간 삭제 조치 등으로 확산하기 어렵다. 이처럼 여론 형성과 표현의 장이 제한된 구조는 전쟁 수행에 대한 내부 비판을 어렵게 만든다.

병력 동원 방식도 주목된다. 서방에서는 소수민족이 과잉 징집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실제 전투 병력의 상당수는 자발적 계약병으로 구성돼 있다. 김 교수는 "푸틴은 징집병을 전선에 투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실제로도 주력 병력은 계약직 형태의 지원병"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이들은 주로 지방 출신의 청년들로, 고용 불안과 낮은 소득 수준 속에서 군 복무를 생계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전쟁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집중된 부담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동원은 국가 권력 기구의 재편과도 연결된다. 전쟁 이후 러시아연방 안보 회의(Sovbez)의 영향력이 강화됐으며, 기존 외교·안보 정책을 조율하는 기능을 넘어 전략 결정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 김 교수는 "초기에는 신중론이 있었지만, 지금은 푸틴을 포함한 지도부 전체가 공세적 전략으로 선회했다"고 분석한다. 특히 Sovbez 부의장인 메드베데프는 우크라이나의 분할 점령을 주장하며 극단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승리를 넘어, 러시아가 새로운 국제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는 의지를 반영하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Smoke rises over the Flextronics factory hit by a Russian missile strike, amid Russia's attack on Ukraine, in Mukachevo, Zakarpattia region, Ukraine August 21, 2025. Zakarpattia Regional Prosecutor's Office/Handout via REUTERS ATTENTION EDITORS - THIS IMAGE HAS BEEN SUPPLIED BY A THIRD PARTY. DO NOT OBSCURE LOGO. NO RESALES. NO ARCHIVES.

지워진 비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지만, 전쟁의 실상은 제한된 방식으로만 전달되고 있다. 전투 장면, 첨단 무기, 지도자의 발언 등 자극적인 요소가 중심이 되며, 구조적 원인이나 민간 피해와 같은 본질적인 정보는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않는다. 이런 보도는 포털 메인 화면이나 SNS 숏폼을 통해 반복 노출되며, 전쟁을 일종의 시청각 스펙터클로 전환한다.

김 교수는 국내 언론 보도의 상당수가 미국과 유럽 외신에 의존해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미 서구에서 걸러진 정보를 번역·가공하는 보도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피해자, 러시아는 침략자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반복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프레임은 시청자의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지만, 전쟁의 복잡한 배경이나 이해관계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같은 보도 경향 속에서 실제 피해자들의 존재는 지워진다. 민간인 피해는 단편적으로 언급되지만, 병사들의 사망 규모나 사회적 배경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김 교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는 약 1만3000명으로 추산되지만, 양국 병사들의 피해는 약 200만 명에 이르며, 전사자만 100만 명에 가깝다"고 말한다.

▲김선래 교수ⓒ외대알리(허부현)

남겨진 과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은 단극체제의 균열과 새로운 국제 질서의 출현이라는 구조적 맥락 속에서, 외교 실패와 무력 충돌, 여론 조작과 언론의 프레임화, 그리고 침묵 된 피해자들이 교차하는 복합적 현실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국내 언론은 전쟁의 복잡한 배경보다 이념적 대립을 앞세워 보도했고, 그 결과 시민들은 구조적 현실보다 단편적 이미지에 익숙해졌다. 현재의 전쟁 보도 역시 유사한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

프레임화된 정보와 감정 중심 보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미지 뒤의 맥락'을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언론이 다루지 않는 진실은 독자가 찾아야 한다"며 국제 질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직접 읽기'와 '비판적 해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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