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스웨덴의 도전이 한국에 던지는 물음

[장석준 칼럼] 50년전 임노동자기금, 자본주의를 넘어선 길드적 상상

올해는 스웨덴 노동운동에서 '임노동자기금' 방안이 등장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1971년에 금속노동조합이 당시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였던 루돌프 메이드네르(독일에서 망명했기에 독일식으로 읽으면, '마이드너')에게 스웨덴 특유의 임금결정제도인 연대임금제를 개선할 방안에 관한 연구를 맡겼고, 메이드네르는 두 제자와 공동 집필한 보고서를 1975년 8월에 발표했다. 이 보고서의 제목이자 그 결론으로 제시된 정책이 바로 임노동자기금이다.

임노동자기금은 열띤 토론을 거쳐 1년 뒤에 금속노조의 공식 정책으로 결정됐다. 이후 스웨덴 노동조합운동과 사회민주당은 이 구상을 실제로 추진할지 말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 결과, 사회민주당은 메이드네르가 제출한 원안보다 상당히 후퇴한 내용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1982년에 출범한 올로프 팔메 총리의 사회민주당 내각이 '7년간 한시 운영'이라는 단서를 단 채 이를 실시했다. 하지만 자본과 우파의 집요한 반대 탓에 7년 뒤 이 실험은 중단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임노동자기금은 '실패한' 시도였다. 그럼에도 5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도를 잊지 않고 적극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구상이 '사회민주주의'라 불리는 개혁적 사회주의 노선에서 나온 정책 가운데 자본주의의 근본 구조에까지 손을 대려 한 거의 예외적인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후 자본주의가 20세기 말에 만약 신자유주의 지구화-금융화로 방향을 정하지 않았더라면 밟았을 수도 있었던 '가지 않은 길'의 가장 구체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복지국가의 한계를 넘어 나아가려 한 임노동자기금안

임노동자기금안에 관해서는 상세하고 깊이 있는 연구 성과가 한국 저자의 우리말 저작으로 나와 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신정완 교수의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사회평론, 2012)가 그 책이다. 임노동자기금안뿐만 아니라 복지국가나 노동운동에 관심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명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을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임노동자기금안의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면, 일단 이 정책은 스웨덴 복지국가가 거둔 성공이 낳은 역설의 산물이다. 20세기 중반 스웨덴 복지국가의 핵심 정책 중 하나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연대임금제였다. 이 시기에 스웨덴에서는 통상적인 산업별 교섭보다 더 큰 단위로, 즉 경총과 노총 차원에서 임금을 교섭했다. 이 교섭에서 노동 측은 기업 규모나 실적에 상관없이 노동자 전체의 임금 수준을 최대한 근접시키는 방향에서 임금인상률을 요구하고 관철시켰다. 이미 임금 수준이 높은 고수익 대기업 부문은 인상 속도를 늦추고 반대로 저임금 부문은 속도를 높였다. 덕분에 1970년 무렵 스웨덴은 선진공업국 중에서 노동자 내부 임금 격차가 가장 작은 나라가 되었다.

분명 커다란 성공이었다. 노동자 내부의 극심한 격차로 고통 받는 현재 한국 사회와 비교하면, 더욱 눈부시다. 그러나 뜻밖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만약 연대임금제가 없었다면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체 협상력을 통해 임금으로 가져갔을 만큼의 기업 수익이 연대임금제 덕분에 고스란히 주주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연대임금제가 '복지'를 강화해준 게 저임금 노동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상층 자본가에게도 이것은 아름다운 '복지'정책이었다. 연대임금제로 인해 대기업에 '초과이윤'이 발생했고, 덕분에 대기업 주주들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의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자본을 불려갔다.

고수익 대기업이 몰려있던('볼보'를 떠올려보라) 금속산업의 노동자들은 연대임금제의 이러한 예기치 않은 효과를 다른 어떤 부문보다 더 민감하게 바라봤다. 단순히, "우리는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데 저들은 초과이윤을 누린다"는 불만과 질시만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몸집을 불리는 자본 세력이 비대해진 협상력을 활용해 언제 전후 계급타협을 깨려들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스웨덴 자본도 당시 다른 모든 자본주의 중심부 자본과 마찬가지로 금융화하여 국경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형편이었다. 1970년대 초쯤 되면, 이런 추세를 막기 위해 연대임금제를 손보는 일이 이미 촌각을 다투는 절박한 과제가 되어 있었다.

금속노조는 연대임금제의 골간을 유지하면서도 그 역설에 대처할 방책의 수립을 바로 연대임금제를 처음 입안한 두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인(다른 사람은 요스타 렌이었다) 메이드네르에게 맡겼다. 4년간의 작업 끝에 메이드네르 연구팀이 내놓은 방안, 즉 임노동자기금안은 그렇게 복잡한 내용이 아니었다. 초과이윤 탓에 자본이 과도하게 축적하고 있으니 노동자도 집단적 자산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연대임금제로 인한 초과이윤은 그대로 인정하되 그에 상응하는 만큼 신규 주식을 발행해 '임노동자기금'이라는 스웨덴 노동자 전체의 집단 금고에 적립시키자고 제안했다.

단기적으로는, 임노동자기금에 적립된 주식만큼 배당금이 쌓일 테고 그럼 이 돈으로 노동조합이 기획하는 복지 사업, 교육-훈련, 연구 작업 등을 펼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럼 장기적으로는? 당시 계산으로는 약 20-30년이 지나면 임노동자기금이 대다수 기업에서 대주주가 된다고 전망됐다. 임노동자기금은 이 지분을 바탕으로 주주총회 의결에 개입할 수 있을 테고, 마치 신자유주의에서 금융 투자자들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듯 스웨덴의 각 기업, 더 나아가 산업과 경제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었다. 즉, 임노동자기금이 실제 수립돼 작동한다면, 이는 스웨덴 경제가 기존 자본주의와는 크게 다른 모종의 새 경제 체제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었다.

기존 자본주의와만 다른 방향이 아니었다. 이제껏 알려진 사회주의와도 많이 달랐다. 20세기 말에 '사회주의'란 1930년대에 소련에서 처음 수립된 모델, 즉 자본 대신 국가가 경제에 지령을 내리는 체제를 뜻했다. 이와는 거리를 두었던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노선조차 자본의 지배를 보완할 주체로 국가를 내세우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면이 있었다.

반면에 임노동자기금안이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는 임노동자기금 같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결사체가 국가나 사기업 등과 함께 생산과 서비스, 개인적 소비와 집단적 소비를 조절하는 체제였다. 굳이 말하면, 메이드네르에게 큰 영향을 끼친 길드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에 가까운 체제였다(참고: G. D. H. 콜, <길드 사회주의>, 장석준 옮김, 책세상, 2022).

임노동자기금 시도가 그토록 격렬한 반발을 불러오고 결국 조기에 좌절되고 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방안은 스웨덴 복지국가가 직면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대응에서 비롯됐지만, 이를 계기로 20세기 말 당시에 전 세계가 나아가려 한 역사의 방향을 크게 구부리려는 담대한 도전에 착수하려 했다. 이것은 임노동자기금안의 실패 이후 한 세대만에 결국 복합위기-다중재난에 직면하고 만 지금 우리 시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해진 자세이고, 더 시의적절해진 접근법이다.

신자유주의 위기 시대에 다시 보는 임노동자기금안

물론, 반세기 전에 처음 제안됐고 결과적으로는 무산되고 만 정책을 이렇게까지 높이 평가할 일이냐고 항의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전성기는 끝났는데도 좀처럼 새로운 보편적 지향이나 가치는 부상하지 못하는 이런 시대에는 과거에 기회를 잡지 못했던 제안이나 시도를 되살려 미래 대안을 다지기 위한 재료로 곱씹는 것이 충분히 의미 있다.

지금 지구상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이미 시작한 인물은 미합중국의 '극우'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 정부는 경영 위기에 빠져 전임 바이든 정부로터 이미 10조원 넘는 보조금 지급을 약속받은 인텔에게 그 대가로 지분 10%를 정부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되면 지분 약 9%를 소유한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누르고 연방정부가 인텔의 최대 주주가 되며, 정부는 인텔사 경영 개입을 발판 삼아 최대 공약인 반도체산업 부활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반세기 전에 영국 노동당이 제조업 공동화를 막고자 공약했던 '국민기업위원회' 방안을 연상시키는 발상이다. 스웨덴에서 임노동자기금안이 제출되던 바로 그 때에 영국에서 등장한 국민기업위원회안의 골자는, 영국 정부가 설립한 국영 지주회사(그 명칭이 '국민기업위원회'다)가 주요 제조업 부문의 선도업체들의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가 되고 이를 통해 이 기업들의 경영에 개입함으로써 영국 제조업의 방어와 혁신을 꾀한다는 것이었다(참고: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책세상, 2011).

인텔 최대 주주가 되겠다는 트럼프 정부는 현재 이 기업이 추진하는 정리해고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반면에 1970년대 영국 노동당의 국민기업위원회안은 고용의 최대한 유지를 목표로 삼았다는 커다란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둘 다 신자유주의 교리의 충실한 추종자들이 혐오할 해법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 세상이 이러하다. 50년 전 좌파가 주창했던 이단적 해법이 오늘날 필사적으로 지난 50년간과는 다른 처방을 찾아 헤매는 극우파의 정책 목록에 등장하는 시대다. 이런 때에 임노동자기금안에 대한 재평가, 재음미는 결코 시대착오적이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새 정부에 의해 주식시장이 부동산시장 중심 이익 구조를 대체할 경제의 새 구심으로 급부상한 상황에서, 임노동자기금안 같은 발상으로부터 끌어낼 중대한 물음이 적지 않다. 주식시장 변동에 휩쓸려 단기 거래 차익에 연연하는 소액 개인 투자자들을 통해 과연 미래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주식시장의 선순환적 기능을 실현할 수 있을까? 주식을 '집단적'으로 '장기' 보유하고 이를 통해 산업과 경제 전체의 결정과정에 참여한다는 임노동자기금식 접근법은 어떠한가?

더 나아가, 이제 물어야 한다. 재벌들 말고 기업 경영에 새로운 주체로 추가돼야 할 첫 번째 집단이 과연 '주주'일까? 그보다 더 책임 있는,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는 주체는 임노동자기금이 상정한 것과 같은 집단들, 그러니까 해당 기업의 직접 피고용인뿐만 아니라 일체의 유관업체 노동자, 지역사회와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다른 노동자까지 포괄하는 '임금노동자/임금소득자(wage-earner)'가 아닐까?

50년 전 스웨덴 사회는 이런 물음들에 대해 가장 매력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었지만, 끝내 이를 밀어 붙이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의 종말'의 신호가 아니라, 단지 인류가 이 정도 답을 내놓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이 더 필요함을 말해주는 증거일 뿐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로부터 반세기라는 세월이 지난 만큼, 이제는 스웨덴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답할 준비를 갖출 차례가 됐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