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성평등 강의 보조금 돌연 취소... "혐오·차별 세력 손 들어줘"

지난해 선정된 사업, 동성애·페미니즘 혐오 민원 폭주 후 취소... "즉각 철회" 요구

진주시가 올해 초 승인했던 지역 여성운동 단체의 성평등 강연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돌연 취소하면서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후퇴시켰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동성애·페미니즘 혐오에 기댄 민원이 빗발친 후 취소 결정이 이뤄지면서, 인권을 옹호해야 할 지방정부가 혐오 세력의 손을 들어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주시는 지난 28일 양성평등위원회를 열어 진주여성민우회의 '2025 모두를 위한 성평등' 강연 사업에 대한 기금 지원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강연은 시의 양성평등기금 지원사업 중 하나로, 진주시가 지난해 12월 사업 공고를 냈고 양성평등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선정된 보조금 지원 사업이다. 진주여성민우회는 2014년부터 8회에 걸쳐 양성평등 기본 조례 취지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관련 기금 사업을 열어 왔다.

진주시는 강연 시작을 불과 하루 앞두고 지원 철회를 결정했다. 진주여성민우회는 지난 29일 첫 강연을 시작으로 오는 9월 27일까지 한 달간 10개 사회 분야를 중심으로 성평등 관점을 다루는 10회차 연속 강의를 기획했다. 세부 분야에는 질병, 퀴어(성소수자), 환경, 노동, 언론, 과학, 대중문화 등이 포함됐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 22일부터 '성평등 교육을 반대한다'는 민원이 진주시청에 빗발치기 시작했다. 22일 하루 동안에만 진주시청 민원 게시판에 400개가 넘는 강연 취소 민원이 폭주하듯 게시됐다. 대부분 동성애를 다루는 '퀴어와 함께 하는 페미니즘' 강연 회차 혹은 '페미니즘' 강연 자체를 반대하는 글이었다. 이후 진주시가 갑자기 양성평등위원회를 다시 열고 보조금 지원 취소 결정까지 하게 된 것이다.

▲진주시청 민원게시판 일부 게시글 갈무리. ⓒ진주시청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29일 성명을 내 "지난해 정식 심사 절차를 거쳐 확정된 사업이었음에도, 일부 민원과 압력에 따라 뒤집힌 것"이라며 "이는 단순한 행정 조정이 아니라, 성평등과 인권을 지향하는 사회가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반대 민원인들은) 공공연히 성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이어왔고, 이번에도 민원을 빌미로 성평등 기금 사업을 흔들었다"며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인권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없는데도, 행정은 오히려 혐오와 차별의 손을 들어줬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번 보조금 취소는 행정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민주적 절차와 인권 보장의 원칙을 거스르는 결정"이라며 "시민사회의 성평등 교육을 제약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 역량을 약화하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스스로 선정해 놓고 뒤늦게 취소, 말이 안 된다"

경남 지역 내 12개 여성단체가 모인 경남여성단체연합도 지원 취소 결정이 통보된 직후 규탄 성명을 내고 "조규일 진주시장은 '2025 모두를 위한 성평등' 보조금 취소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며 "진주시는 일부 극우 개신교 세력이 조장하는 혐오와 차별에 편승하지 않고, 모든 시민의 인권이 존중되는 성평등한 진주를 실현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지난 2023년 11월 진주시 내 한 편의점에서 발생했던 '여성 혐오 사건'을 두고 "진주시는 인권과 평등을 요구했던 형평운동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나, 최근엔 '여자가 머리가 짧다. 페미는 맞아야돼'라는 성차별, 여성혐오 무차별 폭력이 발생했던 도시로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다"며 "(진주시는) 사회 전 분야의 일상과 사회 속 성평등 인식확산을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할 때에 그 반대의 결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전국 68개 여성단체가 속한 한국여성단체연합도 지난 29일 성명을 내 "계엄이라는 무기로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여성가족부폐지’라는 혐오 선동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던 윤석열을 광장의 힘으로 몰아낸 이 새로운 시대에는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더 많이 논의되고 질문돼야 한다"며 "본 강의가 지역에서 그런 자리가 돼야 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특히 진주시가 지난해 심의를 거쳐 이번 강연을 지원키로 했던 것을 두고 "진주시 관계자들은 당시 성평등에 대한 이해 없이 본 사업을 승인했는지 묻고 싶다"며 "성평등에 대한 이해 없이 선정하고, 이해 없이 취소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도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이에 "이는 차별적이고 과도한 행정임을 분명히 하며, 어떤 타당한 근거도 없이 무책임하게 취소를 결정한 진주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진보당도 31일 비판 성명을 내 "진주시와 진주시 양성평등위원회가 정식 절차에 따라 사업을 선정, 승인해 놓고 뒤늦게 '양성평등기금 지원사업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취소한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진보당은 "일방적 주장과 혐오를 내뱉으며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세력이 준동하는 한, 우리 사회의 평등은 없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진주시의 행태에 상처받고 고립되는 진주 시민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지적했다.

이어 "진주시장과 진주시 양성평등위원회는 취소 통지를 철회하라"며 "극우 개신교들의 항의에 사업을 취소하는 이런 부끄러운 행태에 국민 앞에, 진주 시민 앞에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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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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