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케이-컬처 넘어 케이-공공외교로

[기고] 공공외교, 전략적 재구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우애를 통해서 평화를 발전시킨다. (Ex Amicitia Pax)" 이 라틴 경구는 오랫동안 외교단의 초청장 등에 사용되었지만, 사실 공공외교의 본질을 잘 말해주고 있다.

공공외교는 한 국가가 자국의 국익을 증진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외국의 시민과 소통하며 상호이해를 증진시켜, 장기적으로 우호적이며 평화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전략적 과정이다. 정부 대 정부 간의 소통과 교섭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외교와는 달리, 공공외교는 공식적인 정부 채널을 넘어선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다른 나라의 일반 대중, 시민사회, 그리고 여론 주도층과 소통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신뢰와 상호 이해를 심화 발전시키고, 자국과 자국 정책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를 조성하여, 외교 정책 목표에 더 수용적인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공외교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설계해야 하며, 세계무대에서 마음을 얻기 위해 지속적인 형태의 초국가적 인간적 연결망과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공공외교는 21세기 들어서 더욱 진화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을 반영하여 네덜란드 국제관계연구원의 얀 멜리센 외교연구소장 등은 2005년 '신 공공외교'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냉전 시기 미국과 같은 강대국 중심으로 외교에 종속된 방식으로 진행됐던 공공외교를 넘어서서, 21세기의 새로운 국제관계와 시민사회의 발전, 미디어 환경 등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공공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신 공공외교를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경제력의 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어, K-wave, K-pop및 K-문학과 같은 활발한 문화 활동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어받아 K-공공외교를 발전시키고, 또 K-공공외교를 통해서 한국의 위상 및 국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몇 가지 핵심 과제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공공외교는 외교부를 컨트롤타워로 하여 이외 여러 기관들이 참여하는 범정부적 형태로 진행되어 많은 성과를 이루어왔다. 이 기관들 중에서도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국제협력단은 대표적인 공공외교 기관이다. 국제교류재단은 소프트 파워에 중점을 두고 설립 시점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위상 변화와 국제 환경에 맞춰 목적과 사업 대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한편 국제협력단은 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를 통해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소프트 파워'를 강화하는 데 기여해왔다.

이제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또 급진하는 AI와 커뮤니케이션 등 기술의 혁신 속에서 한국의 공공외교는 어떻게 진화해야 할 것인가?

한국 공공외교, 이제는 전략적 재구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중견국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에 안주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공외교 전략의 재구성과 혁신이다. 단순한 이미지 홍보를 넘어, 정책 지향적 연구, 설득력 있는 쌍방향적 서사 구성, 정교한 성과 관리, 그리고 조직 역량 강화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첫째, 지식 외교의 전략적 재구성이 절실하다.

한국은 그동안 K-브랜드와 문화 콘텐츠를 앞세워 국가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는 더 깊이 있는 정책 역량을 보여줄 차례다. 한반도 안보, 한미 동맹, 비확산과 같은 전통적 안보 이슈뿐만 아니라, 반도체·배터리·글로벌 공급망·사이버 보안·인공지능·양자 컴퓨팅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정책적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경제 안보, 인권, 민주주의,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등 글로벌 어젠다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연구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는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한국이 글로벌 도전에 기여하는 핵심 주체임을 세계에 보여주는 힘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 싱크탱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도 강화해야 한다. 서구뿐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의 주요 연구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한국 관련 정책 연구가 국제 담론을 주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가교 역할'을 할 차세대 전문가를 길러내야 한다. 해외 유수 기관에 코리아 체어(Korea Chair)와 펠로우십을 확대하고,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확산할 수 있는 지식 기반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둘째, 목표지향적 커뮤니케이션과 쌍방향적 서사 구성이 필요하다.

K-브랜딩은 한국에 대한 호감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도구지만,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단순한 문화 홍보에서 벗어나, 한국의 복잡한 현실과 정책적 기여를 보여주는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글로벌 e-스쿨, XR 갤러리, 메타버스 센터 등 디지털 플랫폼을 전략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 플랫폼들은 단순한 문화 전시 공간이 아니라, 한국의 정책적 입장과 글로벌 공공재 기여를 알리는 핵심 채널로 자리 잡아야 한다. 'K-정보 허브'와 같은 온라인 이니셔티브를 통해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소셜 미디어와 협력해 사실 기반의 콘텐츠를 확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공공외교는 '휴머니스트 공공외교'로 진화해야 한다. 자국의 이익을 넘어, 인류가 직면한 공동의 과제에 대한 협력과 신뢰 구축을 강조하는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한국이 단순한 경제·문화 강국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와 공동 번영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중견국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서사는 한국의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글로벌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들의 다양한 견해를 우리의 서사에 반영하여 더욱 세련된 서사를 다시 글로벌 시민사회에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성과 평가와 적응형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공공외교 프로그램의 성공을 단기적 행사 실적으로만 측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장기적 교육 효과와 외교적 파급력을 평가할 수 있는 포괄적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 델파이 기법과 계층분석법(AHP) 같은 과학적 방법론을 활용해 평가 기준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프로그램 개선에 실질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평가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피드백 루프를 갖춘 조직의 핵심 시스템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자원이 전략적으로 배분되고, 프로그램이 한국의 중견국 비전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재원이 제한된 국가에서는 '선택과 집중' 원칙을 실질적으로 실행해, 가장 효과적인 프로그램에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넷째, 조직 역량과 국내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외교의 지속 가능성은 튼튼한 내부 기반에서 나온다. 재정 안정성과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재단의 독립성을 강화함으로써 전략적 의사결정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고 프로그램 대상을 다변화해, 보다 균형 잡힌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 인지도 제고가 필요하다. 공공외교는 해외만을 향한 활동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지지할 때, 국제 무대에서의 신뢰와 영향력도 강화된다. 재단의 활동을 알리고, 시민 참여를 확대해 국내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은 결국 글로벌 공공외교 전략의 가장 든든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나아가 시민사회가 공공외교의 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과 협력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는 당연히 국민이 공공외교의 주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케이-공공외교는 글로벌 사회와 공존공생하겠다는 대한민국의 비전

이제 한국의 공공외교는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단순한 문화 확산을 넘어, 정책적 리더십과 인류 공동의 미래를 위한 협력의 중심에 서야 한다. "각자도생"을 넘어 "공존공생"으로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글로벌 사회와 공존공생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K-공공외교가 펼쳐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공공외교는 더 이상 부수적 외교가 아니라, 국가의 전략적 자산이자 현 정부의 국가비전이기도 하다. 그 비전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실행하느냐가 한국 외교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것이다.

이러한 재설계를 통해 K-공공외교는 기존의 강점을 바탕으로 당면 과제를 해결하고,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한국을 효과적인 중견국으로 투영하는 선도적인 공공외교로서의 효과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1일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진들과 만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 ⓒ대통령실

(필자 소개 : 유정애는 한반도와 분쟁지역에서 40년 이상 대화와 협력 및 개발을 촉진해온 공공외교 전문가이다. 미국 카터센터, 록펠러재단 및 미국친우봉사회(AFSC) 등에서 인간안보와 평화구축을 담당했으며, 다양한 국제 NGO 활동과 학술 연구를 통해 개발 협력과 성평등, 평화구축을 주제로 아시아·아프리카·중동 등 20여 개국에서 정책과 실천을 연결해 왔다. 코넬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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