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과의 약속' 손 놨던 文정부·민주당의 무책임한 7년

[분석] 집권 시기 이행 안 한 문재인 정부, '김용균 약속' 잊은 민주당… 정부·국회, 한전-자총 지분 거래 싸움만 관망 중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희생자 고(故) 김용균 씨가 남긴 과제,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7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배경으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직무 유기'를 꼽는다. 사고 초기 정규직화를 공언했던 문재인 정부는 사고 1년 후부턴 과제 이행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2년 넘게 시간을 끌다 결국 정권이 교체됐다. 윤석열 정부 동안 유관 부처는 아예 관심을 끊었고, 이 공백을 채워야 했던 민주당은 4년 넘게 방관만 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2018년 12월 김용균 씨의 사망 이후 지금까지 만 6년 6개월 동안 '김용균 과제'를 약속했던 문재인 전 정부와 민주당의 과제 미이행 과정을 돌아봤다. 주요 분기점 4개를 기준으로, 총 5개 시기로 나눠 볼 수 있었다.

① '김용균 과제' 수립 : 2018년 12월 ~ 2019년 8월(9개월)

'김용균의 과제'라 불린, 발전소 내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정책 과제는 김 씨 사망 9개월 후 마련됐다. '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국무총리실 산하)가 진상조사 후 발표한 22개 권고안이다. 1번 권고안이 다단계 하청의 근절, 즉 하청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었다. 특조위는 연속적이고 유기적인 발전소 공정을 임의로 구분해 일부를 하청화시킴으로써 작업 소통, 지휘 감독, 안전 관리 등이 모두 분절되고 부실해져 결국 가장 아래의 하청노동자들이 위험해진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발표가 나오기 전부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거듭 약속했다. 2019년 2월,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용균 씨의 유족을 만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속도를 내겠다"며 "그렇게 해야 용균이가 하늘나라에서 '내가 그래도 좀 도움이 됐구나' 생각할 수 있지 않겠나"고 말했다. 이보다 2주일 전엔 당·정이 발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조속히 매듭짓겠다며 대응 방향성도 발표했다.

특조위는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의 하청노동자 2500여 명은 5개 발전사가 직접 고용하고, '경상 정비 분야' 하청노동자 3600여 명은 한국전력의 정비 자회사 한전KPS가 직접 고용하라고 밝혔다. 원칙적으로는 모든 하청노동자를 발전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나, 현실 여건을 고려해 이원화한 양보안이었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희생자 고 김용균 씨. ⓒ김용균재단

② 당·정의 최종 약속 : 2019년 9월 ~ 2019년 12월(4개월)

과제를 받아든 당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최종 약속을 내놓은 건 이로부터 4개월 후다. 특조위 발표 한 달 후 꾸려진 '발전산업 안전강화 및 고용안정 당정TF'는 2019년 12월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정TF는 특조위 22개 권고안 94개 세부 과제를 56개 과제로 추렸다. 이 중엔 하청노동자 정규직화 과제도 포함됐다. 당정 차원의 세번째 정규직화 약속이다.

다만 특조위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발전사의 직접 고용' 내용을 뺐다. 또 '노동자·사용자·전문가 협의체'에 세부 내용 결정을 맡겼다. 당정은 이 협의체 결정에 따라 "'운전 분야'는 하나의 공공기관을 만들어 정규직화를 신속 추진한다"고 밝혔다. 경상정비 분야는 정규직화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들을 한전 자회사가 고용해야 한다는 권고안과 달리, 당정은 처우와 고용안정 개선 방안만 마련한다고 밝혔다.

지난 2일 산재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의 고 김충현 씨는 경상정비 분야의 2차 하청노동자였다. 김용균 특조위 위원들은 당시 당정TF의 결정을 "권고안의 핵심 취지와 지향과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2월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를 비롯한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

③ '시늉' 정치, 허송세월 2년 : 2020년 1월 ~ 2021년 12월(2년)

"정부는 뭘 더 안 하려 했습니다. 의지만 있었으면 벌써 끝냈습니다. 허송세월만 보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청와대 다 눈만 뜨고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7년간 내부 논의 과정을 지켜본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직 연대 집행위원장은 지난 9일 총평을 묻자 이리 말했다. 특히 당정TF가 이행 과제를 발표하고 활동을 끝낸 뒤인 2020년부터는 실현 의지를 불신할 만큼 '시늉'만 했다는 지적이다.

당정이 세부 논의를 맡긴 노·사·전 협의체는 2020년 5월, 권고안보다 후퇴한 방안을 결정했다. 한전이 지분을 보유한 '한전산업개발'을 우선 공영화해 공공 자회사를 만들고, 여기에 '운전 분야' 하청노동자들을 고용토록 했다. 한전산업개발은 원래 한전이 소유한 자회사였으나, 2003년 발전사 민영화 과정에서 한국자유총연맹이 최대 주주가 된 회사다. 현재 자총은 31% 지분으로 1대 주주, 한전은 29%로 2대 주주다.

이로부터 정부의 이행점검단이 '당정TF 과제 이행 최종 보고'를 발표한 2021년 12월까지 20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이 사이 산자부는 2020년 7월 한전과 5개 발전사에 '협의체 결정 사항을 이행해달라'는 협조 공문을 발송했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그해 10월 '공공기관 선진화 대상', 즉 민영화 대상에서 한전산업개발을 제외하는 안을 의결했다. 그러는 동안 노사전 협의체도 운영됐고, 관련 기관들 간 실무 협상도 간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뿐이었다"는 게 노동계의 평가다. 한전사업개발 지분 매각의 두 당사자, 한전과 자총간 주식 매각 협력 MOU는 2021년 12월에야 체결됐다. 이행점검단이 최종 보고하고 활동을 종료한 때다. 이행점검단은 김용균 과제 이행을 다룬 '마지막 책임기구'였다. 이후 민주당은 후속 감독 기구를 마련하지 않았다.

이때 당정은 네 번째로 약속했다. 이행점검단은 최종 보고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여전히 이행되지 않았다"라며 "연료·환경 운전 분야는 협의체 합의 결과에 따라 공공기관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완료해야 한다"고 밝혔다.

④ 윤석열 집권 전 최후 기회 외면 : 2022년 1월 ~ 2022년 3월(3개월)

이행점검단이 종료된 때, 문재인 정부는 집권 3개월만을 남겨뒀다. 2022년 3월에 20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됐다. 집권당이 바뀔 가능성은 꾸준히 거론됐다. 반노동 기조의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김용균 과제 이행이 중단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고 이 위원장은 말했다.

이 위원장은 "그러나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이어 말했다. 특히 관변단체인 자유총연맹은 총재 등의 집행부 인사가 집권 당의 성향을 따르는데, 남은 3개월마저 그대로 외면했다는 것이다. 2018~2021년 7월 자총 총재는 박종환 전 충북지방경찰청장으로 문 대통령과 '40년 지기' 인사다. 그 이후 2022년 12월까지는 문재인 정부 때 국방부 장관을 지낸 송영무 전 장관이었다.

지난 9일 <프레시안>과 통화한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국장은 "(한전과 자총 간) 지분 매수 합의까지 실랑이가 길었다"면서도 "공공기관 운영 법률을 바꾸는 것이든, 자총 지분 인수를 신속히 추진하는 것이든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바꾸고 인수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 국장은 2019~2021년 동안 김용균 특조위와 정부 이행점검단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다.

정부는 이 때까지도 정규직화의 1단계인 자총 지분 인수의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자유총연맹이 제시한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서 그런 것이냐'는 질문에 조 국장은 "당시 주가가 갑자기 올라 실사도 했다"며 "정부는 의지만 있으면 돈을 써서 31% 지분을 모두 인수할 수 있었다. 그냥 돈을 안 쓴 것"이라고 평가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 중인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 ⓒ프레시안(최형락)

⑤ 버려진 김용균 약속 : 2022년 4월 ~ 2025년 6월(3년 2개월)

"윤석열 정부의 집권부터 지금까지 김용균 과제를 신경 쓰는 정부·국회 인사는 아무도 없었다"고 이태성 집행위원장은 말했다.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한전 등에 질의하는 게 전부였다"며 "이마저 발전 비정규직 노조가 요청해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지분 인수 상황은 4년 전 상태 그대로다. 자총, 한전, 산자부 모두 '양측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입장만 되풀이한다. 노·사·전 협의체는 자총의 31% 지분을 전량 매입하라고 한전에 권고했다. 인수 가격을 두고 자총과 한전은 2년 넘게 지지부진한 논의만 이어갔다. 파는 측은 보다 높은 가격을 요구하고, 사려는 측은 그만한 가격을 지급할 수 없다는 협상이었다. 한전은 매각 실사도 진행해 금액을 제안했으나, 자유총연맹 홍보팀은 11일 <프레시안>에 "2023년 9월, 매각 실사 완료 후 제안된 금액이 현저히 차이가 나 재협상을 기다렸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한전은 '31% 전량 매입' 입장을 바꿨다. 한전은 그동안 '적자가 누적됐다'거나 '한전산업개발 주가가 급등락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등의 경제적 이유를 밝혔다. 한전은 지난해 11월 '2% 이상의 일부 지분 매입안'을 제시했다. 자총은 '전체 지분 인수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 양 측은 지금까지도 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양 측은 한전산업개발의 배당금으로 매해 수익을 올렸다. 한전산업개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9~2025년 동안 한전은 총 157여억 원을 배당받았고, 자유총연맹은 168여억 원을 배당받았다. 현재 한전산업개발 지분 2%의 금액은 11일 주가(1만2270원) 기준 80억 원 가량이다.

이 위원장은 "이 과정에 정부와 국회의 개입이나 노력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총은 돈 나오는 꿀단지 같은 한전산업개발을 팔고 싶지 않을 거고, 한전은 돈이 없다고만 핑계대며 매수 의지가 없고, 산자부는 민영화 구조를 유지하고 싶으니 공영화하고 싶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사전협의체와 당정TF 이행점검단 내에선, 31% 지분 확보가 어렵다면 한전이 별도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다른 직접 고용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혀 왔다. 지난 5년 간 당정TF, 산자부, 기재부 등의 관련 부처들이 배제한 내용이다. 조 국장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는 한전과 기재부에 압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고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도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전은 지난 9일 "지속적으로 대화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이밖에 입장은 더는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자유총연맹은 11일 "지난해 12월, 한전에서 지분 전량이 아닌 3%만 매입의사를 밝혀 왔다"며 "3% 제안에 대해 각계에 문의해 본 결과, 배임 등 여러 사정으로 응할 수 없음을 한전에 공문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또 "이하 협상 창구는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관련해선 정부도, 국회도 모두가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것"이라며 "그러다 또 사람이 죽었다. 정부가 그동안 약속을 몇 번이나 했나. 비정규직은 국가로부터 수만 번 배신만 당한다"고 말했다.

▲6월 6일 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와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주최한 고 김충현 씨의 추모제에서 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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