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선거법 유죄'로 '21대 대선 당선무효' 하겠다는 건가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이재명 대통령은 제21대 대선에서 역대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 지난 3년간 그를 옭아맸던 '범죄자 프레임'도 민심의 흐름을 완전히 돌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어깨를 짓눌러온 사법의 짐은 아직 벗겨지지 않았다. 당선 이후에도 그를 법정에 세우려는 시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에게 불소추 특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미 진행 중인 재판에는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재판이 계속되면 이 대통령은 임기 내내 법정을 오가야 할 처지에 놓인다. 대통령의 시간은 곧 국민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계속 재판으로 소모된다. 이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은 모두 5개다. 국정 책임을 진 대통령이 공판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재판은 한없이 길어지고, 그 여파는 국정 운영에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처리 방향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을 거쳐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왔고, 파기환송심 첫 재판이 18일로 예정돼 있다. 이 재판을 끝까지 진행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은 속으로 희망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의 '당선무효형'을 내리고 대법원이 그대로 확정하면 이재명을 당장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 제 266조에는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 이미 취임 또는 임용된 자라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규정은 위반 행위가 일어난 '해당 선거'의 당선 무효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옳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언론은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대선에 출마할 수 없고 국회의원직도 잃는다"고 말했다. 과거 선거의 위반 행위를 이유로 다른 선거의 결과까지 부정하는 것이 법리적 상식적으로 옳은가? 선거가 다른데 책임은 하나로 묶겠다는 기묘한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국회의원직 상실을 기정사실화했다. 같은 논리로 이제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대통령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이 짙다. '20대 대선 패배자'에 대한 '당선무효형'으로 '21대 대선 당선무효화'를 하겠다는 해괴한 발상이 움트고 있는 것이다.

재판을 계속하자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대선 출구 조사 결과를 앞세운다. 63.9%가 '계속해야 한다'고 답했고, '중단해야 한다'는 응답은 25.8%였다.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재판 계속'(42.7%)과 '중단'(44.4%)이 엇비슷하게 나왔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이 수치를 내세워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국민의 뜻"이라고 사설에서 강조했다.

그런데 질문 내용을 바꿔 여론조사를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대통령이 매주 법원에 출석하느라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재판 준비로 민생과 외교가 뒷전에 밀리는 데 동의하십니까?" "임기 후 재판을 재개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게 평등의 원칙을 심각히 위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민주당 지지자들한테는 "재판을 계속하면 대통령직 상실 위험도 있는데 괜찮다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이 바뀌면 민심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이 여론조사의 본질이다.

헌법 제 84조가 규정한 대통령 불소추 특권은 특정 개인에게 주는 사사로운 혜택이 아니다. 그것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짊어진 국정의 무게에 부여한 제도적 안전 장치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형사 문제로 흔들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헌법은 그것을 막기 위해 예외를 둔 것이다. 국가의 지속을 위한 합의다. 형사 사건에서 기소와 재판은 본래 한 묶음으로 붙어 다닌다. 그런데도 어떤 법학자들은 형사 소추는 '기소'만 의미하고 '이미 기소된 재판'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글자의 미로에 갇혀 헌법 84조의 정신과 취지를 망각한(또는 의도적으로 외면한) 그릇된 해석이다.

국민의 삶은 법보다 무겁고, 민심은 글자보다 깊다. 대통령은 국민의 삶을 최종적으로 보듬고 책임지는 자리다. 민심은 그 책임과 의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맡겼다. 국민은 이미 기소 사실을 알고서도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것은 법정이 아니라 광장에서 이뤄졌다. 단지 몇 명의 판사가 아니라 4439만 유권자가 배심원으로 참여한 '국민 재판'의 결과다. 이 국민대법정 판결을 판사 몇몇이 뒤집으려는 것은 명백한 사법 쿠데타다.

'20대 대선 선거법 유죄 판결'로 '21대 대선 당선무효'를 꾀하려는 시도는 너무 비상식적이다. 그래서 '설마 그런 일까지야'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비상식이 현실로 나타났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부터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대법원은 '기소 뒤 1년 내 판결' 조항을 들이밀며 기를 쓰고 대선 전에 유죄를 확정하려 했다. 그것은 법의 외피를 쓴 정치 개입이었다. 그러니 법전 한 귀퉁이 글자 몇 개를 확대해석해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하는 시도는 얼마든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정은 멈추고, 대한민국은 감당하기 힘든 극심한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다.

법의 운용은 순리에 기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항 또한 순리를 벗어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대통령 임기 만료까지 재판 중지) 등 대응책의 모양이 썩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국민의힘은 '방탄 입법'이라고 맹공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 앞에서 방탄복은 선택이 아니라 마지막 생존 수단이다.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불소추 특권을 제대로 해석해 적용하기만 하면 굳이 형사소송법을 개정할 필요도 없다. 재판 중단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이다. 이런 순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방탄복이 등장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대통령직 유지 여부를 둘러싼 법적 논쟁으로 나라가 다시 대혼란에 빠지기보다는 방탄 입법이 오히려 나은 현실적 선택이다.

이 문제의 매듭은 대법원이 풀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재판 계속 여부를 개별 재판부에 맡기겠다고 한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태도다. 대통령 불소추 특권 조항의 해석이 과연 개별 재판부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인가?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상고심에서는 직권을 휘둘러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기고 판결날짜를 서둘러 밀어붙였다. 그런 용감무쌍한 사람이 이번에는 개별 재판부 뒤에 숨어버렸다.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일관성도, 용기도 찾아볼 수 없다.

대선 이후 모두가 입을 모아 '국민 통합'을 말한다. 통합은 선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상식에서 태어나고 순리 속에서 자란다.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무시하고, 민의로 선출된 대통령의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통합을 말할 수는 없다. 사법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법적 대응을 '입법 쿠데타'로 몰아 정쟁의 불쏘시개로 삼으면서 화합을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칼을 내려놓지 않는 손으로 악수를 할 수는 없다.

이제 상식과 순리는 현실적으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대통령 선거법 사건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의 판단이 중대해졌다. 더는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고법이 결정을 미루고 회피한다면, 형사소송법 개정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된다. 상식이 법을 이끌고, 순리가 사법을 감싸야 한다. 서울고등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에 참석, 입술을 다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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