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KPS와 서부발전의 조문은 사절합니다.'
4일 방문한 태안화력발전소 산재 사망 노동자 고(故) 김충현(50) 씨의 빈소 앞엔 '조문 사절' 종이가 붙었다. 한전KPS는 태안화력을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의 1차 하청업체다. 김 씨는 한전KPS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한국서부발전의 2차 하청노동자다.
김 씨는 지난 2일 태안화력 부지 내 한전KPS 종합정비동에서 일하다 기계 설비에 몸이 끼여 숨졌다. 2인 1조 작업이 원칙이나, 김 씨는 당시 혼자 일했다. 고 김용균 씨가 숨진 지 7년 만에 또 태안화력에서 산재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전KPS 비정규직지회' 조끼를 입은 김 씨의 동료들 대여섯 명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빈소에서 만난 김 씨의 동료 조유상 씨는 지난 3일 사측 인사들이 보였던 태도에 분노를 표했다.


조 씨는 동료들이 유족과 함께 사고 현장을 방문하려 하자, 해당 건물의 모든 출입문을 잠그고 열어 주지 않았다고 했다. 고성이 오고 간 끝에 출입했지만, 김 씨가 쓰던 책상과 물건들을 촬영하자 원·하청 직원들이 직접 몸으로 막고 밀어내면서 촬영을 제지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동료들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책임 회피"라고 했다. 지난 2일 서부발전은 '임의' 작업 중에 사고가 났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한전KPS는 언론 설명자료에 '작업 지시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항'이라며 사고 당시 김 씨의 업무를 설명했다.
조 씨는 김 씨를 "무척 꼼꼼하고 정확하고 일 허투루 하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동료들이 '와, 이런 사람이 다 있네'라고 할 정도로, 업무 절차를 성실히 다 지키고 면밀했다"며 "사고 소식이 퍼졌을 땐 '아니 그 사람이 왜 사고가 났대' 하며 다들 놀랐다"고 말했다.
조 씨는 "오늘 회사로부터 작업 지시가 내려왔다"며 "그러나 우린 못 한다고 했다. 여기(빈소)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통하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원통하다"
이날 저녁 7시 태안버스터미널 앞에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첫 추모문화제가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유족인 김 씨의 형, 김 씨의 회사 동료들, 발전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 연대 단체 시민들 등 150여 명이 모여 추모 촛불을 들었다.
조진 대책위 상황실장은 여는 발언에서 "3년 전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온 태안화력 서부발전의 2차 하청노동자들, 그 30여 명의 동지를 기억한다. 그 자리엔 김충현 동지도 있었다"며 "그런데 그 사람이 팔이 찢기고 머리가 깨져서 죽었다. 회사는 혼자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죽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조 상황실장은 "당신 아빠라면, 당신 아들이라면 그런 막말을 했겠느냐"며 "인간 된 도리를 다하겠다며 회사가 계속 조문 온다. 그러나 도리는 6월 2일 전에 해야 했다"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고인이 죽기 전 온갖 모멸과 임금삭감, 6개월 단기 도급에 주말 근무도 전부 떠넘겼는데, 이제 와서 도리를 다하겠다는 위선"이라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2016년부터 총 6년여간 태안화력에서 선반공(기계 정비)으로 일한 김 씨는 그동안 업체가 8회가량 바뀌었다. 과거엔 통상 1년마다 바뀌었으나, 근래엔 6~9개월 단위로 바뀌고 있다. 현장에선 '화력발전소 폐쇄에 대비한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이어 조 상황실장은 "오늘 오후 3시, 한전KPS, 서부발전은 작업 중지 24시간 만에 다시 작업을 가동한다는 작업 통보서를 발행했다"며 "제정신인가. 인간 된 도리로서 우릴 동료로 본다면, 이렇게 할 순 없다"고 비판했다.

유희종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장은 추모 발언에서 "위험을 방치한 서부발전과 한전KPS의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용균이 죽었을 때, 문재인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하고 현장 노동자들을 정규직 전환하겠다고 약속했었다"며 "하지만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돼 2인 1조로 안전히 일했다면, 이런 끔찍한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신현웅 민주노동당 충남도당 노동위원장은 '김용균 산재 사망'의 원·하청 관계자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두고 "중대재해 원청 사장들에게 무죄가 나오는 시스템을 만들어줬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가 최초 사고자료에서 '임의로 일했다', '회사가 시키지 않았다' 했다"며 "책임을 회피하면 무죄가 떨어질 걸 아는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씨와 같은 서부발전 2차 하청노동자 김영훈 한전KPS 비정규직지회장은 "당시 현장을 목격한 동지들은 비통한 심정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혼란에 빠졌지만, 사고 수습 현장조차 한전KPS가 진입을 못 하게 막았다"고 말했다. 그는 "같이 일한 동료들이 사고 경위와 현장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공유받아야 했음에도 한전KPS는 철저하게 통제했다"며 "시신이 이동하는 순간까지도 한전KPS는 '너희들이 왜 여기 있나.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물러나 있으라' 이런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이어 "한전KPS와 서부발전은 세금으로 먹고사는 발전공기업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하는 공기업이다"라며 "그런데도 제대로 된 2인 1조 작업은 물론, 처우 개선도 없고, 불공정 계약으로 하청노동자를 쥐어짜는 현실이 정말 원통하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원통하다"고 외쳤다.
김 지회장은 앞 열에 앉은 유족을 향해 "슬픔은 유족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함께 일하고 있던 동지들은 나머지 모든 분노를 가져가겠다"며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모아서, 고인이 억울하지 않도록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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