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빚 수렁, 4대 은행은 40조 이자 잔치…"한국, 부채 함정 빠졌다"

[새 정부 경제정책 제언 포럼 ④·끝] "소득불평등 완화 필요"…"부채 중심에서 가치 중심 금융체제 전환 필요" 제언

한국은 전통적인 통화·재정정책이 경제 성장엔 더는 효과가 없는 '부채 함정'에 빠졌으며 단기적인 금융정책이 아닌 전면적인 소득불평등 완화 정책과 포용금융 정책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 교수는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제언 포럼-노동자 시민의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통화·금융정책 개혁' 토론회 발제자로 나와 적극적인 소득불평등 완화 정책과 포용금융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 교수는 "한국은 민간 신용 비중이 더 늘어나면 경제성장은 더 나빠지는 상황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민간 신용과 경제 성장 사이에는 '역 U자형' 관계가 존재하는데, 한국의 GDP 대비 민간 신용 비율은 임계값인 극대점을 지난 상태여서 민간 신용이 더 늘면 GDP 성장률은 낮아지는 하향 곡선에 있다고 분석됐다는 것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전세 보증금을 포함할 경우 156.8%로 OECD 31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2위인 스위스(131.6%)와도 큰 차이를 보인다.

강 교수는 한국이 '부채 함정'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부채 함정은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석좌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부유층이 저축하면 이자율은 낮아지고, 이는 저소득층이 더 부채를 져서 소비하게 하는 구조를 강화한다. 소비에 따른 수익과 이자 수익은 다시 자산을 가진 부유층에 귀속되고, 부유층의 저축이 증가하며 실질 이자율이 하락해 또 저소득층의 부채를 늘리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논리다.

이 경우 저금리 등을 중심으로 한 단기적 금융정책은 부채를 더 늘려 경기 침체를 악화시킬 수 있다. 부채 함정에 빠지면 경기를 부양하려는 기존 통화·재정 정책의 효과가 매우 낮아진다는 게 미안 교수의 시각이다.

▲지난 5월 1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새 정부 경제정책 제언 포럼-노동자 시민의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통화·금융정책 개혁' 토론회가 열렸다. ⓒ사무금융노조

"기존 통화·재정 정책으론 안 돼, 소득불평등 완화 필요"

이 경우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구는 소득불평등 완화 정책이라고 강 교수는 강조했다. 미안 교수의 논지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조세 정책을 통한 부의 재분배는 경제활동 회복에 큰 효과를 보일 것"이라며 "부유세 등도 경제활동 회복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부채상환, 자산 매각 등으로 부채 비율 낮춤)도 해야 할 과제"라며 "자기자본규제의 완충자본 부과 조정 등 부동산 금융이 과도히 확대되지 않게 자본 규제 장치를 확대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강 교수는 최근 정부가 가계 부채 완화 대책으로 내놓은 '지분형 주택담보대출' 등의 대안엔 회의를 나타냈다. 지분형 주택담보대출은 집 값의 절반으로 주택금융공사 등의 공적 자금 지분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제도로,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강 교수는 "자기 지분을 가진 정부는 집 값을 하락시키는 정책은 펴지 않을 것이고, 결국 집 값은 더 올라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결국 다른 형태의 정책 대출로, 경제가 이런 인센티브를 기반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해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해야지, 집을 사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미안 교수의 비판을 인용했다.

강 교수는 또 다른 정책과제로 '포용 금융'을 꺼냈다.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다양한 금융서비스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성이다.

강 교수는 "저소득층의 금리 부담 완화를 위해 은행도 중저신용자에게 대출을 하게 하는 포용 대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일부 인터넷 뱅크에 과도하게 집중됐다"고 말했다. 이에 "5대 은행의 이자 순수익은 2019년 26.6조 원에서 2024년 38.9조 원으로 증가 추세"라며 "중저신용대출 확대 여력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임수강 금융평론가도 유사한 취지에서 '10조 원 규모의 서민금융기금'을 제시했다. 매년 정부와 한국은행이 출연한 5000억 원과 금융기관 분담금으로 5000억 원으로 10조 원 상당 공적 기금을 만들어 서민 금융생활 지원, 보증채무 이행 등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1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새 정부 경제정책 제언 포럼-노동자 시민의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통화·금융정책 개혁' 토론회가 열렸다. ⓒ사무금융노조

근본 체제 전환 없이 금융 자본 규제 가능한가

다만 토론에선 "신자유주의 금융체제를 바꾸지 않고 위 수단으로 정말 소득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나왔다.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연구실장은 "가계 부채와 금융 취약계층의 급증은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며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부채의 디레버리징을 시도해도 효과는 일시적"이라고 말했다.

'금융 억압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 홍 실장은 "과잉 유동성을 과잉 자본으로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며 "이 과잉 자본이 저금리 상태에서 글로벌 수준의 과잉 투자를 불러왔고 이윤 경쟁을 가속화해 투기적 행태만 더욱 확장했다"고 지적했다.

또 "부동산, 채권, 증권, 주식, 코인 등의 시장에 가계부채를 기반해서 들어가 있는 자본이 부동산 시장만 규제한다고 해서, 과잉 자본이 다른 금융시장으로 몰리는 걸 막을 수 있느냐"며 "은행의 자본 규제 장치도 부분 필요하다 해도 효과는 일시적이고 근본 처방도 아니"라고 했다.

홍 실장은 부채 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금융체제의 전면 전환이 필요하다며, 은행 국유화를 통해 금융기관이 공공 이익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하고 국가투자은행과 공공은행을 설립해 공공 자본을 활용한 투자와 자본 조달을 촉진해야 한다고 근본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투기자본 통제, 저리대출 프로그램 및 부채탕감프로그램 확대 등도 제안했다.

국가 통화정책 테이블에 노동자 대표 들어가야

김영재 사무금융노조 정책국장도 "금융·통화 기관과 정책은 인간의 존엄이 아닌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만 작동해 왔다"며 "원래 금융은 생산적인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는 게 고유 기능인데 지금은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을 매개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해 불평등을 촉진한다"고 비판했다.

김 정책국장은 "지금과 같은 자금 흐름을 그대로 두면 저성장은 물론 자산 거품 붕괴 위험으로도 이어진다"며 "부동산에 흘러가는 자금이 생산적 투자로 흐를 수 있게, 금융기관이 단기 수익성만 추구하는 금융상품보다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사업에 장기 투자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세제 혜택, 보조금, 규제 등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목표에 물가안정뿐 아니라 "장기 저성장과 고령화에 대응하는 완전 고용을 추가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나아가 "균형 잡힌 통화정책을 위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대표만 들어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노동자 대표를 포함해야 한다"며 "이는 금융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으로, 그렇지 않으면 금융은 기술전문관료와 금융엘리트 영역으로 넘어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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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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