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재부의 종이더라."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제언 포럼'에서 '탑 다운 예산제'를 포함한 기획재정부의 예산 편성권 박탈 방안들이 제안되자, 참관석의 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이 발언권을 얻고 이같이 말하며 분노를 토로했다.
그는 "모두가 '범죄'라며 반대하는, 세금이 지원될 수 없는 사업에 '너희만 입 다물면 모두가 좋아하잖아' 하며 수조 원이 지급됐다"며 "범죄에 동원되기 싫은 연구원은 나가버린다"고 말했다.
비합리적인 예산 지출 문제를 참다못한 이 연구원은 국회를 찾아가 읍소도 해봤으나 "국회의원마저 '내가 기재부 사무관에도 안 된다'며 자괴감을 말하더라"고 했다. 그는 "관료들은 의미가 없는 사업인 줄 더 잘 알면서도 돈을 쓴다"며 "부패가 정말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R&D 사업에 종사하는 한 참가자도 "기재부 사무관 한 명이 5조 원, 10조 원(규모의 예산 사업들)을 결정하는 웃기지도 않는 폐단"이라고 했다. 그는 "기재부 관료의 힘은 모든 부처가 신청하는 사업을 결정하는 권한에서 나온다"며 "예산 총액을 미리 정해버리면 폐단이 확실히 줄 것"이라고 동의했다.
이날 포럼에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제안한 '탑 다운 예산제'는 영역별 예산 총액을 선출 권력(국회)과 시민이 먼저 정하고, 그 제한 안에서 각 정부 부처가 사업별 예산 규모를 결정하는 안이다. 가령 시민 의사가 반영되는 경로와 기구를 통해 총지출을 700조 원으로, 그리고 복지 200조 원, 기후 20조 원 등으로 영역별 총액을 정한다면, 각 부처는 이를 바탕으로 세부 사업 지출안을 계획하는 안이다.
기재부는 이렇게 정해진 안을 사후 평가·관리만 한다. 즉 시민들이 '탑'에서 정하고, '다운'에선 각 부처가 정하고, 기재부는 이 과정에서 아예 빠진다. 이 연구원은 시민 의사 반영 방법으론 현재도 진행 중인 국가재정운용계획 토론회 등을 내실 있게 보완해 '시민숙의단' 기구로 운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일부 야권에서는 기획재정부에서 예산 편성권을 분리해 관련 부처를 별도 신설하고, 이를 대통령실 산하에 두는 안을 제안한다. 이 연구원은 이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에 조직 개편에 반대하는 건 아니나, 정치적 수사에 속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재부를 선출권력이 장악해야 한다고 하나, 윤석열 정부 땐 지나치게 장악해서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예산처 대통령실 산하 편제에 대해서도 이 연구원은 "대통령실에 둔다고 해서 국가재정에 대한 책임감이 커질지는 의문"이라며 "형식보다는 실질적 개혁 내용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 노무현 정신은 예산처 분리가 아니라, 탑 다운 예산제다. 이를 굉장히 이해했던 분"이라며 "국민이 직접 국가 예산 편성에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창민 한양대학교 교수는 "예산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책임과 직결되기에 대통령이 주도권을 갖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필수적"이라며 "이상민 연구원의 안과 조직 개편론자의 안이 상호보완적으로 절충돼야 한다"고 반론을 냈다.

"세금 한심하게 쓰는데 국민들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도 "재정 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행정 권력의 비대화를 막는 것, 이 이상의 지향이 필요하다"며 "국가 재정 결정에 민주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는 예산의 공공성 확대가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책실장은 먼저 "국가 재정 총량의 규모나 배분 방식에 따라 국민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데, 이를 단순 행정 업무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예산법률주의 도입 등 공공성을 국가 재정 원칙으로 적시하는 헌법 및 국가재정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정책실장은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하면 국회의 예산 편성권 강화가 따라온다"며 "국회로 예산 편성권을 이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다들 반대하더라"며 "이게 어려우면, 국회에 비목(예산안 세부 단위) 신설과 예산증액권을 부여하거나, 이마저도 어려우면 정부가 제출한 총액 범위 내에서 비목을 신설하고 예산을 변경하는 권한을 부여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국민청원예산제도 등을 도입해 예산 감시와 편성 과정에 시민 참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신승근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소장은 "대통령실 옮긴다고, 외국 순방한다고 한심하게 세금을 써도, 국민들이 아무도 통제를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신 소장도 "조직 개편보다 예산 편성 과정에 대한 개혁이 중요하다"며 "국회가 예산 편성 과정부터 논의에 참여해 국민에게 투명하고 공정한 재정 배분 절차를 보여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재부 요직에 외부로 개방... 강력한 유관기관취업 제한도
예산 편성권 개혁만큼 중요한 과제가 기재부 인사 제도 개편이라는 데엔 모두가 한목소리를 냈다. 그 방향성은 기재부 내부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를 국·실장 및 장차관 급에 임명하는 개방형 인사제다.
이 연구원은 "기재부 관료들이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 게 바로 개방형 직위제"라며 "제일 싫어한단 점에서 제일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부 내용으론 "국·실장급은 절반 이상을 외부인사로 두는 게 좋지만, 최소 3분의 1까지라도 참여해야 한다"며 "장·차관도 1명 이상은 개방형 직위를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기재부 분리는 관료가 제일 좋아한다"며 "인사적체를 해소해주기 때문에 뒤에서 웃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승철 정책실장은 이에 덧붙여 "국회가 기재부 눈치를 엄청나게 본다. 사회정책 결정에 기재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국회 재정개혁특위 등에 예산·재정부처 관료 배석을 금지하고, 국민연금 등의 당연직 정부위원에서 기재부 관료를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기재부 출신 관료의 유관 기관 취업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기재부 관료가 개방형 인사제보다 이 조치를 더 싫어할 것"이라며 적극 동의했다.
이 연구원은 이밖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세부 개혁 과제로 '국가 재정 통계 국제기준으로 통일' 등을 제안했다. 이 연구원은 "기재부가 창조한 총지출, 총수입, 관리재정수지 등의 통계자료를 없애고 국제기준으로 통일해야 한다"며 "지금 상태에선 통계 수치를 자의적으로 편집할 수 있다. 장난질을 못 치게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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