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척 토드(Chuck Todd) : 대통령이 백악관 대변인에게 처음 기자회견장에 나와서 거짓말(falsehood)을 하게 시킨 것입니다. 왜 그런 겁니까?
♾ 켈리앤 콘웨이(Kellyanne Conway) : 당신은 그걸 '거짓말(falsehood)'이라고 말하지만,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 우리 측에서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제시한 겁니다.
☺ 척 토드 : '대안적 사실'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건 거짓말이에요. (Alternative facts aren't facts; they're falsehoods.)
가짜 뉴스의 다른 이름 '대안적 사실'
2017년 1월 22일, 미국 NBC의 <Meet the Press(미트 더 프레스)>에 출연한 백악관 선임고문 켈리앤 콘웨이가 프로그램 진행자 척 토드와 나눈 대화내용의 일부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첫 당선 취임식 참석 인원이 역대 최대라 주장한 숀 스파이서(Sean Spicer) 백악관 대변인의 주장에, 언론들이 직접 사진과 데이터를 통해 거짓임을 지적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참 신박한 단어의 조합이다. '사실(facts)'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사실과 다른 '대안적 사실'이 있다니? 이 방송이 나간 뒤 '대안적 사실'이라는 표현은 가짜 뉴스, 즉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코미디 쇼 <SNL(Saturday Night Live)>과 <The Daily Show(더 데일리 쇼)>에서 자주 정치풍자의 소재로도 사용했고, 뉴욕타임즈나 가디언(The Guardian)에서도 정치인의 발언을 비판하는 사설의 제목으로 애용되기도 했다.
또다른 형용 모순 '플랫폼기업 자율규제'
'대안적 사실'만큼이나 신박한 단어 조합이 한국에도 있다. 주로 플랫폼기업을 상대로 자주 언급되는 '자율규제'가 그렇다. 독점의 폐해가 너무 크니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한데, 어떤 부분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플랫폼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해서 지키도록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는 여야 가리지 않고 자율규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주해 최근 공개된 연구용역 보고서 <해외 주요국의 플랫폼 노동 현황과 법제 검토>의 결론 파트에도 유럽연합(EU)의 플랫폼노동 법제가 주는 시사점을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는 플랫폼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고 지원해야 한다. 자율규제적 접근은 대중의 압력과 (초)국가적 조치가 동반된다면 플랫폼에서의 불공정한 노동조건을 극복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최근 확정한 '플랫폼노동 입법지침(Platform Work Directive)' 내용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이런 결론에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EU의 법제는 플랫폼 노동자와 기업 사이의 '고용 관계(employment relationship)'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인데 이걸 어떻게 '자율규제' 같은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까?
자율규제 민낯 보여준 카카오 사례
정부가 그토록 좋아하는 '자율규제'의 꼴이 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네이버, 배민, 쿠팡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공룡 플랫폼으로 꼽히는 곳이 카카오 아닌가. 그 카카오그룹이 2023년 12월에 '준법과신뢰위원회'라는 기구를 출범시키게 된다.
이 기구를 출범한 배경은 간단하다. △SM엔터 인수 과정에서의 시세조종 논란과 관련 수사 본격화 △골목상권 침해 등 독과점 논란 △계열사 상장과 이후 본사와 각계열사의 주가하락으로 인한 주주들 불만 △쪼개기 상장과 각 계열사 임원들의 스톡옵션 매도 등 사회적 질타로 카카오그룹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카카오그룹은 '준법과신뢰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일종의 플랫폼기업 자율규제를 실현하겠다는 취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구의 논의속도 역시 굉장히 빨랐는데, 출범하지 2개월 뒤인 작년 2월에 위원회는 카카오그룹에 '3대 의제'를 권고하게 된다.
그 의제들이 무엇이었을까? △책임경영 △윤리적 리더십 △사회적 신뢰 회복 - 모두 좋은 얘기들이다. 여기에 플랫폼 노동 권리보장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이자는 내용도 있으면 좋겠지만, 여하튼 이 세 가지라도 제대로 지켜진다면 큰 진전임에 틀림없다.
1년 만에 '3대 의제' 이행 완료 선언?
그런데 이 의제를 권고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올해 1월 15일, 카카오그룹은 이 '3대 의제' 권고 이행을 완료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헐! 3대 의제 이행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평가한 게 아니라 완료했다는 것, 그러니까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는 것이다.
그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카카오 창업자이자 그룹 총수라 할 수 있는 김범수 의장이 작년 7월 23일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가 구속된 혐의는 바로 이 위원회 출범의 이유 그 자체였다. SM엔터 인수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SM엔터 주가를 고액으로 책정해 시세조종을 벌였다는 것.

그뿐이 아니다. 작년 12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의혹'과 관련 총 151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확정하기도 했다. 개인택시 기사들이 아니라 가맹 또는 직영에 해당하는 카카오T 블루 기사들에게 콜을 몰아줬다는 건데, 이럴 수 있는 힘은 카카오모빌리티의 '독점'이라는 권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공정위가 나선 것이다.
그룹 총수가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되고, 그룹의 가장 큰 돈벌이 기업인 카카오모빌리티는 독점적 권력으로 이윤을 뽑아낸 혐의로 거액의 과징금을 때려 맞았는데, 카카오그룹은 3대 의제를 모두 이행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총수 구속이 '책임경영'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시세조종과 콜 몰아주기가 '윤리적 리더십'이 할 일이란 걸까?
노조와 소통 강조해놓고 '다음(Daum)' 일방적 분사?

카카오그룹이 올해 초에 발간한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 연간보고서 2024>를 살펴보면 '임직원과의 소통'이란 항목 아래 노동조합(크루유니온)과도 대화한다는 내용을 상당히 강조해 놓았다. 카카오 경영진이 강조하고 위원회도 권고한 '신뢰'를 쌓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소통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금 카카오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이 모든 것이 한낱 '쇼'에 불과했던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지난 3월 13일 오전 10~12시 사이 2차례에 걸쳐 컨텐츠 CIC 직원들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어 분사 관련 공식 언급을 하게 된다. 직원들은 사전에 조직 내에서 이와 관련 어떤 공식적 논의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기습적'이었다.
간담회와 거의 동시에, 그러니까 3월 13일 오전 11시 30분경 <서울경제>에서 "카카오, 토종 포털 '다음' 분사한다 … CIC로 분리 후 2년 만"이라는 제목의 단독 보도가 올라오게 된다. 그 이후 카카오가 다음(Daum) 포털 매각 수순의 일환으로 우선 분사를 추진하는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를 포함 다수 언론기사가 뒤따랐다.
이는 전형적인 '소통형식 끼워맞추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소수 경영진끼리 의사결정을 확정해놓고 언론 보도까지 사전에 맞춤형으로 준비해둔 뒤, 형식적으로 소통했다는 알리바이를 끼워맞추기 위해 직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데이터·알고리즘·콘텐츠 모두 가진 자가 자율규제?
문제는 콘텐츠 CIC, 그러니까 사실상의 다음 포털을 분사하는 것은, 그저 사업부를 재편하는 수준이 아니라 인력 구조조정의 출발점일 수 있다는 점이다. 화섬노조 카카오지회(크루유니온)에 따르면 이번 분사가 만일 매각 및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경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 규모는 무려 1000명 안팎에 달한다고 한다.
콘텐츠 CIC와 업무적으로 직접 연관된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검색CIC, 케이앤웍스, 디케이테크인, 링키지랩 등에 80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게다가 이와 관련한 인력이 대부분 제주 지역에 상주하고 있어서, 제주 지역 사업 철수 우려까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직원들과 아무런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3대 의제(△책임경영 △윤리적 리더십 △사회적 신뢰 회복)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카카오 경영진 그리고 준법과신뢰위원회 멤버들은 애써 눈을 감고 있다.
애초부터 이용자들의 데이터, 알고리즘, 콘텐츠 유통, 가격 책정 등 모든 걸 플랫폼기업이 쥐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에게 불리한 규제를 만들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상식에 맞다. 내가 시장 지배자인데 왜 나에게 족쇄를 채워 발목을 잡겠냐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 이제 제대로 규제해야
카카오라는 공룡 플랫폼의 문제는 아직도 끝난 게 아니다. 다음(Daum) 포털을 분사하고 심지어 매각할 가능성까지 있다면 정말 큰 문제가 눈 앞에 닥치게 된다. 인터넷 보급 초창기에 포털 최강자가 '다음'이었고, 그래서 초창기에 이 포털에서 한메일(hanmail) 계정 만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대체 그 데이터와 개인정보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20년도 전에 만들었던 계정이니 지금쯤은 쓸모없는 데이터(개인정보)가 되었을 것이라고 손쉽게 넘어가면 안 된다. 자그마한 개인정보 하나만 알고 있다면, 이용자가 웹이나 모바일 상에서 행동하는 패턴 데이터 조금만 추가하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귀중한 데이터(개인정보)로 가공해내는 게 최근 빅테크(BigTech) 산업의 트렌드 아닌가.
게다가 다음 포털 사업 전체를 제3자에게 매각한다면, 그 많은 데이터(개인정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사용권, 소유권, 관리권한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혹여 매각기업·매도기업 양측이 모두 자기 잇속에 맞게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것을 쥐고 있는 플랫폼이 자율규제로 스스로를 정화시킨다? 그거야말로 대안적 사실, 즉 가짜 뉴스에 다름 아니다. 공룡 플랫폼 카카오의 일방통행을 저지하기 위해 크루유니온 지회장은 단식에 들어갔고,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이들의 저항을 응원하는 것이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 '자율규제'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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