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윤석열 석방 결정과 검찰의 항고 포기는 어딘가 고장난 대한민국의 상황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우화다.
우리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으로부터 강한 제동을 받고 있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표면 위로 드러나는 것을 우린 '증상'이라 부른다. 항상 피의자의 구속 기간을 '날'로 계산해 왔던 검찰이 갑자기 윤석열 앞에서 '시'로 계산한 다음에 다시 '날'로 계산하는 방식으로 복귀한 것은 마치 시공간을 왜곡하는 어떤 착란적 섬망 증세처럼 우리의 감각을 교란하며 지나갔다. 대한민국 법치의 수면 위에 뭔가 빼꼼 하고 머리를 내비친 것이 수면 아래로 고개를 처박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네스호 속에 살고 있는 거대한 괴물의 몸통을 상상하게 된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결정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이제 막 공소가 제기되어 형사재판 절차가 진행되는 사건에 있어서 절차의 명확성을 기하고 수사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구속취소 결정을 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 결정 덕에 70년 이어온 형법 절차는 더 많이 꼬였고, 극우 세력은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을 더 크게 키웠다. 지귀연 판사의 의도와는 정 반대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 사회 공동체가 의문의 여지를 해소해주라며 법복을 드렸는데, 아무런 판단도 내려주지 않는다면 '판사'는 왜 존재하는 걸까. 오죽하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검찰에 즉시항고를 제기해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을까.
판사는 겁을 먹었고, 검사는 사욕을 채웠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어떤 교훈도 주지 못한 것 같고, 검사들의 팔은 '조직 보위'를 위해 다시 안으로 굽고 있다. 법원과 검찰의 '윤석열 석방' 합작품이 또다시 각종 '음모론'의 재료가 되고 있는데, 그 와중에 가장 놀란 사람은 아마도 윤석열일 것이다. '뭐? 이게 된다고?'
사람을 구속하는 일에 종사했던 윤석열은 반평생 피의자 구속 기간을 '시'가 아니라 '날'로 산정해 왔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 음모론은 합리적 의심으로 진화한다. 윤석열과 검사 출신들로 채워진 그의 변호인단은 어떻게 '날'이 아닌 '시'로 구속 기간을 계산해야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을까? 그리고 그것을 법원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게 됐을까? 누군가 귀뜸해주지 않았을까? 이건 이를테면 평생 진화론을 신봉해 온 사람이 어느날 창조론을 근거로 지구의 나이는 6000살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광범위한 '사법 카르텔'의 딥 스테이트론에 빠지는 어리석은 일을 범하진 않겠다. 법원과 검찰과 윤석열의 짬짜미를 믿는다는 건 수백만명을 속여야 가능한 부정선거론을 믿는 윤석열과 그 일당들의 수준으로 전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법 카르텔의 음모론을 말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설명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별칭은 '검찰 공화국'이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검사 동일체가 대한민국의 실핏줄을 타고 세계관을 확장했다. 서초동 권력이 여의도 권력과 용산 권력을 장악했고, 대통령에게 불리한 수사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 따박따박 막혔다. 검사 탄핵에 분노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윤석열의 황당한 변명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로만 비쳐지지 않았다. 그는 검찰 공화국을 넘어 '검찰 왕국'을 꿈꿨을 것이다.
검찰 그들 자신도 내란 연루 의혹 당사자다. 경찰은 지난해 복수의 방첩사 관계자들로부터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선관위에 곧 검찰과 국정원이 갈 것이다. 이를 지원하라"는 취지의 명령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방첩사 측은 실무자들의 '착오'라고 반박했고, 대검은 "어느 기관으로부터도 계엄과 관련한 파견 요청을 받거나 파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비상계엄이 내려진 지난해 12월 4일 0시 37분경 대검 과학수사부 소속 부장검사가 국군방첩사령부 대령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민주당은 "12월 4일 새벽 대검 과학수사부 고위급 검사 2명이 과천 선관위로 출동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한다.
경찰 수사가 검찰을 향해 뻗어오려 하자 검찰은 경찰 국가수사본부장이 계엄 사태에 동원됐다는 혐의를 잡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압수수색한다.
윤석열의 '계엄 명분'으로 의심받고 있는 명태균 스캔들 수사는 어떠한가. 창원지검은 대통령의 부인과 관련된 어떤 수사도 손대지 않고 고스란히 서울중앙지검으로 사건을 넘겼다. 그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엔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이창수 검사장이 복귀했다. 이창수는 김건희 주가 조작 연루 사건, 명품백 수수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장본인이다. 김건희 황제 조사로 검찰 조사의 '예외 상황'을 창조했던 인물이다. 네스호의 머리같은 이창수의 존재로, 검찰이 명태균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됐다.
내란 수사 과정에서 법원이 발부한 정당한 영장 집행을 방해했던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에 대한 검찰의 특별대우도 그렇다. 경호처 공직자들을 윤석열의 '사병'으로 전락시키고, 공직도 아닌 영부인에게 비화폰을 지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 윤석열의 '증거 인멸'을 돕고 있을 거라 의심받는 그는 여전히 윤석열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당장 내란죄 혐의로 기소된 내란 우두머리는 풀려나서 재판을 받고, 그의 명령을 따랐던 '중요 임무 종사자'들은 죄다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희한하고 불합리한 상황을 보면서 검찰은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다. 윤석열이 지난 3년 간 이 사회를 '검찰 공화국'으로 만들어왔던 사실을. 온갖 위헌적, 불법적 조치들로 헌정을 유린한 윤석열이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면서 혐의를 부인하고 지지자들을 선동해 극우 세력의 '탄핵 반대' 여론이 고조하자 검찰은 예의 그 정치 감각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탄핵 여론이 높을 땐 공수처와 경찰을 압도하는 수사 근육을 자랑하며 윤석열을 추상처럼 수사하는 것 같았는데, 다시 바람 앞 풀처럼 먼저 친절하게 몸을 뉘이고 있다. 사실 내란 특검을 도입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최상목의 책임도 크다. 그는 내란죄 범죄자를 비호한 자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시간은 갈 것이다. 친윤 검사들의 시간도 갈 것이다. 윤석열 석방은 윤석열이 구축하려한 검찰 공화국의 심연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귀한 사건이다. 그토록 뻔뻔해질만큼 검찰이 당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네스호의 괴물을 처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호수의 물을 말려 버리면 된다. 애초에 네스호의 괴물이 존재하지 않았든, 존재했는데 발견되지 않았든 상관없다. 검찰이라는 거대한 호수가 바닥을 드러낼 때, 우리가 의심하는 '검찰 카르텔'이니, '검찰 공화국'이니 하는 것들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윤석열과 심우정은 검찰청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유력 후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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