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상속세 '유산취득세'로 개편 추진…세수 2조 줄어든다

인적공제 전면 손질…일괄공제 없애고 자녀공제·배우자공제 확대

정부가 현행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면적인 상속세 개편 방안을 내놨다.

지금처럼 물려주는 총재산을 기준으로 세액을 산출하지 않고, 개별 상속인들이 각각 물려받은 재산에 과세하는 방식이다. 증여세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N분의1'로 과세표준(과표) 구간이 낮아지는 것이어서 누진세율 체계에서 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상속세 법체계를 뒤바꾸는 전면 재정비 작업이다.

1950년 상속세법 도입 이후 75년간 유지한 유산세 시스템을 바꾸는 대격변으로, 상속인별로 서로 다른 세액을 산출해야 하다 보니 과세 행정도 그만큼 복잡해진다.

올해 중으로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약 2년간 과세시스템 정비를 거쳐 2028년부터 시행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유산취득세'란?

기획재정부는 12일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2022년 7월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유산취득세 도입 방침을 공식화한 지 2년8개월만이다.

원칙적으로 상속세 과세체계를 합리화하는 조치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유산세 체계에서는 실제로 상속받은 재산보다 더 높은 누진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과세의 기본 원칙인 '응능부담'(납세자의 담세 능력에 따른 과세)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유산취득세로 전환해 상속인들이 각각 물려받은 만큼 세율을 적용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상속세를 매기는 24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유산세 방식인 나라는 미국, 영국, 덴마크 등 4개국에 불과하다.

정정훈 세제실장은 "그동안 우리나라 세제가 여러 선진화된 제도들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남아 있는 몇 개 안 되는 숙제 중 하나였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운 제도 중 하나로서 이쪽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요구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달 중으로 관련 법률안을 입법예고하고, 4월 공청회를 거쳐 5월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중으로 국회 입법이 이뤄진다면 2026~2027년 과세 집행시스템을 구축하고 2028년부터 시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적공제 제도도 개별 상속인별 기준으로 전면개편이 불가피하다.

현재는 전체 상속액에 일괄공제(5억 원) 및 배우자공제(최소 5억 원, 법정상속분 이내 최대 30억 원)가 일률 적용된다. 즉 재산 10억 원까지 상속세가 없다.

이같은 일괄공제를 폐지하는 대신에 현재 1인당 5000만 원으로 실효성이 떨어지는 자녀공제를 5억 원으로 높인다는 방침이다. 직계존비속에는 5억 원, 형제 등 기타 상속인에는 2억 원을 적용한다.

정 실장은 "인구구조 측면에서도 시급하고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라며 "다자녀가구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배우자공제는 민법상 법정상속분 한도에서 실제 상속분만큼 공제받도록 했다. 여야가 논의하고 있는 '배우자 상속세 폐지'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대 공제한도 30억 원(법정상속분 이내)을 유지하되, 10억 원까지는 법정상속분을 넘어서더라도 공제가 가능하게 했다. 법정상속분과 무관하게 10억 원까지는 배우자 상속세가 아예 없도록 '인센티브'를 추가한 것이다.

이와 별도로 '인적공제 최저한'을 새로 설정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면세점(10억 원)을 고려해 최소 10억 원의 인적공제를 보장해주는 개념이다. 상속인별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인적공제 합계가 10억 원에 미달한다면, 그 부족분만큼 추가로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현재 70~80대 고령층의 자녀들이 대체로 최소 2명인 현실을 고려하면, 자녀 2명 공제(10억 원)와 배우자공제(10억 원)까지 최소 20억 원의 상속액은 면세될 것으로 보인다.

세액은 상속인별로 산출되지만, 과세 관할은 현행처럼 피상속인(고인) 주소지 기준으로 결정된다. 과세 관할이 여러 세무서에 분산되면서 생기는 혼란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현행처럼 상속개시(사망)부터 6개일 이내 상속 신고해야 한다. 신고기간 이후 9개월 이내 상속재산을 분할하면 된다.

다자녀·부자일수록 상속세 확 준다

정부가 12일 발표한 유산취득세 안의 핵심은 상속인별로 받은 재산에 각각의 공제·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상속세를 매기면 과세 대상 재산이 작게 쪼개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전체 상속 재산에 과세하는 기존 방식보다 세금이 큰 폭으로 줄게 된다.

상속세 세율은 부과 대상 재산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은 누진 구조이기 때문이다.

상속세율은 최저 10%부터 최고 50%까지의 5단계로 구성된다. 과표 기준 1억원 이하 10%, 1억∼5억원 20%, 5억∼10억원 30%, 10억∼30억원 40%, 30억원 초과 50% 등이다.

가령 30억 원의 재산을 배우자(법정상속분 12억9000만 원)와 두 성인 자녀에게 각각 10억 원씩 상속하는 경우 현행 상속세는 전체 상속재산 30억 원을 기준으로 산출한 4억4000만 원이다.

하지만 유산취득세 방식을 적용하면 배우자를 제외한 두 자녀만 각 9000만 원씩, 1억8000만 원의 세금을 내면 된다.

유산취득세 도입으로 상속세가 약 60% 줄어드는 셈이다. 상속 재산이 상속인 수만큼 쪼개지면서 최고 세율이 낮아져 기존의 누진 효과가 대폭 반감됐기 때문이다.

상속인별로 부담한 유산취득세를 보면, 배우자는 상속 재산과 같은 규모의 공제(10억 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과세표준은 0원이다. 내야 할 세금이 없다는 뜻이다.

나머지 자녀들은 각각 기본공제 5억 원씩 받기 때문에 남은 5억 원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면 된다.

이 경우 적용되는 최고 세율은 20%(과세표준 1억 원 초과∼5억 원 이하)다.

두 자녀가 각각 5억 원의 과세 표준에 대해 20%의 최고 세율을 토대로 계산한 세금(각 9000만 원)을 내면 되는 것이다.

반면 기존 방식에 적용되는 최고 세율은 유산취득세 방식보다 2배 높다.

과세표준 산정 대상이 상속인이 각각 받은 재산(10억 원)이 아닌 상속 전 전체 재산(30억 원)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과세표준은 배우자 공제 10억 원, 일괄공제 5억 원을 제외한 15억 원으로 최고세율은 40%(과표 10억 원 초과∼30억 원 이하)다.

자녀 공제를 1인당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대폭 확대한 점도 상속세를 크게 줄이는 요인이다.

가령 배우자가 없는 피상속인(고인)이 15억 원의 상속 재산을 3명의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현행대로라면 일괄공제 5억 원을 제외한 과표 10억 원에 대해 2억4000만 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유산취득세 방식대로 하면 자녀 1명당 각각 5억 원의 공제가 적용돼 과세표준 자체가 0원이 된다.

서울 아파트 한 채 수준의 재산을 물려주더라도 앞으로는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13억8289만 원이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을 받는 자녀가 많을수록 공제액이 늘어 세금이 줄어드는 구조다. 상속인이 많으면 그만큼 상속재산이 분할돼 최고 세율도 낮아진다.

특히 상속세는 상속재산이 많을수록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유산취득세가 도입되면 누진세율을 더 많이 낮출 수 있는 다자녀 부유층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유산취득세는 상속인들이 받은 재산에 따라 세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과세 형평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누진구조 완화로 감세 가속…재분배 형평성 악화, 세수 2조원 감소 전망도

정부가 도입하려는 유산취득세 방식은 사망자의 가족들이 'N분의 1'로 세금을 부담하는 구조를 뼈대로 한다. 받은 만큼 세금을 부담해 과세형평을 높이고 공제 실효성을 개선한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그러나 기존 유산세 방식보다 세율 누진구조가 완화할 수밖에 없어 '부의 대물림 방지'라는 상속세의 취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추진했던 자녀공제 10배 확대도 사실상 흡수했다. 세수 감소, 공제를 악용한 '꼼수' 조세 회피가 만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유산세 방식보다 누진구조↓…100억대 자산가 혜택 클 듯

정부는 12일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을 발표하며 각자 받는 재산에 따라 세금을 내게 돼 세 부담 형평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같은 자산의 무상이전인 '증여'와도 동일한 방식으로 과세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상속세제가 20년 넘게 변화가 없는 사이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집 한 채만 있어도 상속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중산층'의 세 부담을 합리화하는 측면도 있다.

다만 고액 자산가일수록 유산취득세 전환으로 인한 세 부담 경감 혜택이 크다는 점은 다시 짚어볼 만한 대목이다.

상속세의 취지와 달리 부의 집중 현상을 심화할 뿐만 아니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총리 취임 일성으로 제시한 '역동경제'의 주축인 사회 이동성 개선과도 결이 다르다.

현행 유산세는 상속재산 전체에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이라 자산이 많을수록 높은 세금이 부과된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개별 상속인이 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동일한 유산이라도 상속인이 많을수록 세 부담이 분산된다.

이 때문에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나 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 같은 '초부자 감세'는 아닐지라도, 100억원대 이상 자산가가 누릴 감세 효과는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속세의 자산 양극화 해소 효과가 사실상 무력화된다"며 "상속재산을 쪼개서 세금을 매기면 과표 구간이 낮아지기 때문에 특히 30억 원 초과의 최고 구간에서 혜택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기재부 정정훈 세제실장은 "사회 이동성 보완 방안은 상속세 내에서는 적절하게 세 부담이 이뤄지도록 집행을 충실히 하고, 제도를 잘 설계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 이동성이 활발하고 (우리나라보다) 더 선진화된 국가라고 생각되는 노르웨이 같은 나라들은 왜 상속세를 없앴겠느냐"고 말했다.

◇ 자녀공제 0.5억→5억…"다자녀일수록 세 혜택"

정부는 작년 세법개정안에서 추진했다가 좌절된 자녀공제 확대도 이번 유산취득세 개편안에 담았다. 다자녀일수록 감세 혜택이 높아지는 셈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자녀 공제액은 기존 유산세 방식의 5000만 원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에서 5억 원으로 10배 확대된다.

현재는 기초·자녀공제 합계와 일괄공제(5억원) 중 큰 금액을 공제하고 있으나 자녀공제가 1인당 5000만 원으로 매우 적어 대부분 일괄공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에 자녀 수가 1명이든 6명이든 공제액은 같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게 정부의 문제의식이다.

납세자별로 각자 공제를 적용한다면 공제의 실효성도 개선될 수 있다.

현행 체제에서는 대다수 일괄공제를 선택하면서 미성년·장애인·연로자 추가 공제 적용도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정부에 따르면 미성년자 공제 적용 비율은 0.3%, 장애인 공제는 3.0%, 연로자 공제는 0.4% 수준이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은 합리적인 방식"이라며 "정부의 다자녀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 세수 2조원 줄어들 듯…과세자는 절반 감소 전망

각종 인적공제 확대와 누진구조 완화로 유산취득세 전환에 따른 세수 감소는 2조 원이 넘을 전망이다.

정정훈 실장은 "작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할 당시 인적공제 확대에 따른 세수 (감소) 효과를 약 1조7000억 원이라고 추산했다"며 "이와 함께 과표분할 효과를 더하면 2조 원이 넘는다"고 했다.

상속세는 2023년 기준 8조5000억 원 걷혀 전체 국세수입(344조1000억 원)의 2.5%를 차지했다.

과세자는 1만9900명으로 전체 결정인원의 6.8% 수준이다. 정부는 유산취득세로 전환되면 과세자 비율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고령화로 사망자 수가 증가할 전망이라 세수 감소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유산취득세 체제로 전환되면 상속을 분산해 개별 취득액을 낮추는 방식으로 조세 회피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자산가들이 직계존비속 외에 먼 친척 등에 재산을 나누거나 양자를 들이는 식이다.

이에 정부는 위장분할이 있는 경우 부과 제척기간을 기존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할 방침이다.

우회상속 비교과세 특례 제도를 신설해 우회 상속 결과 실제 상속세 부담이 줄어든다면 추가로 과세하겠다고도 밝혔다.

특히 상속재산이 30억 원 이상인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검증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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