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당신은 '서울사장' 아닌 '서울시장'입니다

[인권의 바람] 오세훈 서울시장님, 서울혁신파크 없애면 뭐가 좋나요?

신도시에서 20년 넘게 살다 2016년쯤 처음 서울 은평구에 살게 됐다. 탄천길과 공원 등 산책할 곳이 많은 지역에서 살다 이사 온 동네는 산책할 곳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런 내게 서울혁신파크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었다. 혁신파크는 봄이면 은평구 내에 벚꽃놀이 명소로 사랑받았고, 외출하기 좋은 계절들엔 비건페스티벌을 비롯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 곳이었다.

특히 혁신파크의 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캐치볼에 한창 빠져 있을 때 해가 지면 공을 챙겨 혁신파크 참여동 앞 넓은 마당에서 가족과 캐치볼을 했다. 공을 놓치면 코를 킁킁대며 산책하던 강아지들이 공을 물고 주지 않아 귀여운 실랑이를 하기도 했다. 혁신파크 밤마실을 자주 나가게 되면서 서로 얼굴을 익혀 가벼운 눈인사를 하게 되는 이웃과 나에게 앞발을 들어 점프로 인사하는 강아지가 늘어갔다.

공원 곳곳에 있는 작은 독서 공간들도 소중했다. 집중할 업무를 해야 할 때면 카페보다 혁신파크에 가는 것을 선호했다. 누구든 앉아서 쉬고 일하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책상들이 많은 곳이 혁신파크였다. 혁신파크와 얽힌 추억은 에스키모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를 치르며 수일간 그 사람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는 의식을 치르듯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혁신파크에서 걷고, 뛰고, 냄새 맡고, 놀고, 읽고, 사색하던 은평구민 대다수가 같을 것이다. 실제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론조사한 바에 의하면 60%가 넘는 은평구민들이 혁신파크 기업 매각을 반대하고 있다.

▲밤이 더 예뻤던 혁신파크의 모습 ⓒ수달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혁신파크를 없애겠다고요? 왜요?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혁신파크를 없애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 서울시는 혁신파크를 '유휴지'라고 칭하고 이 공간을 기업에 매각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쇼핑몰과 같은 상업시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유휴지라니? 내가 아는 유휴지의 뜻이 틀린 건가 싶어 급히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유휴지는 '쓰지 않고 놀리고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어째서 공원으로서, 다양한 목적의 공공 공유공간으로 역할을 충분히 하는 혁신파크를 두고 유휴지라 일컫는지 황당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다.

새해 서울시장 인사말에 오 시장은 서울시민들이 살맛나도록 하는 것이 본인의 일이라며 서울의 하루가 초록빛 정원에서 시작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오세훈 시장에게 살맛나는 도시란 자연과 시민이 함께 어울리는 공유지를 없애고 자본에 내어준 쇼핑몰, 백화점, 수십억짜리 브랜드 아파트가 많은 도시인가.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님, 그거 아시나요? 그런 도시 하나도 살맛나지 않다는 걸. 당신은 '서울시장'이지 '서울 사장'이 아니다.

예전에 강남에 있는 대형 쇼핑몰 거리를 친구와 걸으며 "이 거리에는 오직 '돈 좀 쓰고 가'라는 메시지만 존재한다"고 통탄했던 적이 있다. 오세훈 시장이 그리는 서울시도 그런 메시지만 가득한 곳인 것 같다. 나도 친구도 저소득층에 해당해서인지 그런 자본중심구역에 가면 배제되고 있다는 감각과 함께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자본이 잠식한 공간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 더 많은 소비가 윤리이자 원칙인 공간이니 당연한 수순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 '지표 누리'는 국민 삶의 지표에서 '도시공원'은 도시 자연경관을 보호하고 시민의 건강, 휴양 및 정서생활 향상을 위해 설치하는 공간시설로 정의하고 있다. 도시공원에 포함된 자연경관과 공원시설(운동·휴게시설 등)이 제공하는 공원 서비스의 양은 도시민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밝히고도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1인당 도시숲 면적은 두 자릿수가 되지 않는다. 국민의 5분의 1 정도가 살고 있는 메가시티 서울에 녹지가 더욱 많아져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시민의 생활 면에서나 환경적인 면에서나 유익한 도시숲을 없애고 상업시설을 세우겠다는 오 시장의 발상은 이렇듯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기업매각 설명회 당시 서울시청사에 시민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서울시 공무원과 경찰들 ⓒ수달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오세훈 시장님께 드리는 한 말씀

오 시장은 올해 초 서울시청에서 열린 신년간담회에서 '4선 서울시장 경험을 좀 더 큰 단위의 나라에서 써야 한다는 요구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밝히며 대선 출마에 의지를 내비쳤다. 서울시민들이 누리고 있는 공유지 이곳저곳을 마치 도시 만들기 온라인 게임하듯 없애고 자본에 팔아넘기는 것이 오 시장이 스스로 자부하여 좀 더 큰 단위의 나라에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4선 서울시장의 경험인가 보다.

대선 행보를 진짜로 하겠다면 혁신파크에 손 떼길 바란다. 대선후보로 등록하려면 서울시장직을 사퇴해야 한다. 마치 자신의 사유지인냥 혁신파크를 멋대로 기업에 팔아버리고 나서 대통령 후보 되겠다고 서울시장에서 또 사퇴하는 수준의 책임감이라면, 그냥 지금 당장 혁신파크와 다른 공유지 매각 계획부터 철회하라. 서울시장은 제멋대로 맡고 버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서울시는 욕심을 드러냈다가 포기하길 반복해도 되는 곳이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달 27일 서울시청 서소문2청사에서 기업 매각 설명회를 열었다. 혁신파크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이 설명회장에 입장하려고 하자 수십명의 경찰 인력을 동원해 시민들의 입장을 저지했다.

서울시민이고 은평구민인데 왜 설명회장에 들어가지 못하냐고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묻자 '매각에 반대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라는 해괴한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시청 서소문2청사도 공공기관인데 서울시민이 들어갈 수 없다는 건 무슨 말인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민 공청회는 휘리릭 뛰어넘고 기업 매각 설명회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진행하는 서울시는 누구를 위한 행정을 하고 있는가.

혁신파크를 기업에 매각하는 게 '서울창조타운' 사업 일환이라고 한다. 시민들이 공유하는 녹지를 없애고 상업시설이 개발되는 것과 '창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공공성이 사라질수록 뚜렷해지는 것은 자본의 부추김으로 거세질 불공평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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