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3일, 이날은 2025년도 제1차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가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회의가 개최되기 30분 전, 십여 명의 인권 활동가들이 회의장 문 앞을 막고 인권위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차례로 도착한 인권위원 중에는 활동가들을 보고 불쾌한 듯 소리치는 이들도 있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40여분을 대치하다가 결국 돌아갔다. 이후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내려왔으나 이 역시 활동가들은 막아섰다. 결국 이날 전원위원회 개최는 무산되었다.
인권위가 설립되고 24년, 인권위가 제대로 된 국가인권기구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크고 작은 투쟁들은 있었으나 이번처럼 회의 개최 자체를 막은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활동가들은 절박한 심적으로 회의를 막아야 했다. 바로 이날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의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 상정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의 인권을 철저하게 침해한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포고령 발령에는 침묵하던 인권위가 김용원 상임위원 주도로, 그 비상계엄에 가장 큰 책임을 진 윤석열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안건이 상정되고 의결되면 이미 망가져가던 인권위가 완전히 몰락하리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그렇기에 인권활동가들은 이후에 있을 위험을 무릅쓰고 회의 개최 자체를 막아섰다. 인권위 직원 수십 명 역시 피케팅을 통해 함께 안건을 발의한 인권위원들을 규탄했다. 한 차례 인권위의 위기를 막았으나, 결국 인권위는 2월10일 해당 안건의 일부 내용을 수정한 채 의결했다. 이후 공개된 결정문은 사실상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윤석열을 옹호하는, 인권보장을 위한 권고문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언문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방어권 보장이 아닌 윤석열 옹호
"윤석열 대통령도 인권이 있어요!"
김용원 상임위원은 회의장을 막은 인권활동가들과 대치하며 이렇게 소리쳤다. 자신의 주도로 5인의 인권위원이 발의한 해당 안건이 윤석열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이들이 내세운 프레임 앞에 언론에서도 이를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
맞다. 개인 윤석열은 인권이 있다. 1월 13일 모인 인권활동가들 중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문은 개인 윤석열의 인권과 관련한 사항을 다루는 게 아니다. 국가권력의 최고 책임자이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요건과 절차를 따르지 않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민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결정문의 주요 내용이다. 그렇기에 해당 결정문의 핵심을 '윤석열 방어권 보장'이라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비상계엄 정당화' 또는 '윤석열 옹호'가 타당하다.
실제로 결정문은 검토 배경부터 비상계엄의 문제점은 축소하고 윤석열 측이 내세운 계엄 선포 이유는 옹호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대통령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해제' 부분에서는 "총기 사용은 없었으며, 국회의원 등 국회 구성원 등이 체포되거나 구금된 사례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체포·구금을 안 한 것이 아니라 국회에 모인 시민과 국회의 해제 의결로 막아낸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인권위는 윤석열이 주장한 계엄 선포 이유를 다시 인용하면서 이어서 야당의 윤석열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문제 삼는 서술을 하고 있다. 야당의 잦은 탄핵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계엄을 했다는 윤석열 측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야당의 탄핵소추에 정치적으로 문제삼을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헌법과 법률에 따른 것이다.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군 병역의 국회 투입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다.

사실관계 서술부터 이렇게 편향적이니 결정 이유에서도 곳곳에 왜곡과 편향된 서술이 엿보인다. 결정문은 대법원 96도3376 판결을 인용하며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이기에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바로 같은 판결에서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고 한 부분은 의도적으로 누락했다.
통계 인용에서도 취사선택은 계속되고 있다. 결정문은 '국민의 50% 가까이가 헌법재판소를 믿지 못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고 하고 있으나, 해당 여론조사에서도 헌법재판소를 신뢰한다는 의견이 과반수를 차지하며, 비상계엄 이후 모든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의견이 최소 60% 가까이 나온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 여론은 윤석열 측과 국민의힘 의원 등의 지속된 '헌법재판소 흔들기'에서 초래된 결과라는 사실은 외면하며, 오히려 헌법재판소의 정당성 훼손에 동조하고 있다.
이처럼 결정문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정당했고 이로 인한 시민들의 인권침해는 크지 않으며, 권력자인 윤석열과 내란 공범에 대한 탄핵, 수사 및 형사재판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에 맞추어 이유를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소수의견을 낸 김용직 위원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설시한 내용은 결론과 서로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유의 많은 부분을 적절치 못하다고 삭제하면서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 것처럼, 결론과 이유가 안 맞는 결정문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권위의 몰락, 절망하진 않는다
해당 안건이 의결된 2월 11일 전국 36개 인권시민단체가 연대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은 비상계엄 선포로 인하여 인권을 침해당한 시민 457명을 대리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려 했다. 시민들의 생생한 인권침해 사례를 담은 진정서를 준비했지만 이를 제출하지는 않았다. 비상계엄 옹호기관으로 전락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권위는 시민들이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령 선포로 인한 국민주권 및 기본권 침해' 진정 2건을 탄핵 심판 등이 진행 중이라며 각하했다.
인권위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가인권기구다.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가 제대로 자신의 사건을 다루지 못할 것이라 보아 진정을 포기하는 이 상황은 인권위의 몰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결정문에 이름을 올린 6인의 인권위원 중 이충상 상임위원은 3월 1일자로 면직됐으나 이 사태를 주도한 김용원 상임위원과 안창호 위원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기에 인권위의 몰락은 당분간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대표적으로 인권위는 故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변희수 재단'의 법인 설립을 방해하고 있다.
인권위의 몰락이 곧 폐지로 이어지는 상황은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절박한 심정으로 회의장 문을 막았던 인권활동가와 지금 인권위 내부에서 싸우고 있는 인권위원과 직원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유엔 파리원칙과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근거해, 그리고 시민들의 치열한 싸움에 따라 설립된 인권위는 그 어떤 국가기관보다도 시민들의 지지, 인권시민사회의 소통을 통해 역사를 이어왔다. 그렇기에 인권위의 몰락에 맞서고 인권위를 다시 국가인권기구로 돌려놓는 것 역시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12월 3일, 내란의 밤이 끝나고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찾아오고 있다.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이 곧 선고될 것이다. 윤석열의 퇴진과 함께 그가 임명한 반인권적, 반헌법적 인권위원까지 퇴진하기를 바란다.
설령 이들이 끝까지 버티더라도 시민들에 의해 결국은 쓸려나갈 것이다. 안창호, 김용원, 이충상, 강정혜, 이한별, 한석훈, 영원히 인권의 역사에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록될 6인의 인권위원에게 다시 한번 요구한다. 더 이상 인권을 모욕하지 말라. 당신들이 있을 곳은 그 자리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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