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넜다. 파도를 몰고 오려고

[인권의 바람] 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간 이유

언제까지 '복직은 힘들겠지'라며 무기력을 삼키고 투쟁해야 할까? 지난 수십 년간 외국인 투자기업이 토지 무상제공, 세금 감면과 같은 혜택을 받고도 공장을 철수하는 이른바 '먹튀'가 이어졌다. 먹튀 기업에서 일하던 한국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기계 반출에 저항하기도 하고 해외로 원정투쟁을 나가기도 했다. 문제가 '해결'되기도 했지만 폐업에 맞서 복직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폐업에 맞선 투쟁을 볼 때면 알게 모르게 '복직은 힘들겠지'라는 무기력감이 든다.

하지만 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투쟁에는 복직의 희망이 있다. 박정혜, 소현숙 두 여성 노동자가 사측의 침탈을 막기 위해 고공농성에 올랐다. 400일이 넘어가는 동안 조합원들은 회사가 가했던 통장과 집에 대한 압류와 가압류, 노동조합 사무실 단전·단수, 공장 침탈 같은 탄압을 뛰어넘었다. 이제는 한국에서는 희망뚜벅이가 일본에서는 원정 투쟁단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일사불란하게 싸우고 있다. 이번에는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무기력을 걷어낼 수 있다.

▲한국 시민활동가들이 힌국옵티킬하이테크의 원청인 닛토덴코가 있는 일본에 가 고용승계 등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일본 원정투쟁을 떠나다

일본원정대에서 오사카로 와달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 주저 없이 가겠다고 했다. 구미에 위치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의 기업 닛토덴코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이다. 하청 용역업체 사장을 상대로 투쟁하고, 교섭한다고 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원청 사장이 진짜 사장이기 때문이다. 옵티칼하이테크도 마찬가지다. 닛토덴코라는 원청이 일본 오사카에 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 원정대는 하루에 두 번의 발언, 1만5000보를 걷는 것은 기본에, 지치기보다 체력이 생기는 투쟁을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원정대가 도착한 이바라키역 플랫폼에는 닛토덴코의 광고가 맞아준다. 닛토덴코가 이바라키시의 5대 기업이라며 이바라키역 8분 거리에 위치한 닛토덴코 이바라키연구소를 홍보하는 광고다. 일본 원정대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그곳으로 간다. 이바라키연구소 선전전 전후로 이바라키역을 지나는 일본 시민에게 한국의 상황을 알린다. 이바라키연구소 앞에서는 일본어로 '단결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권리입니다'를 외치며 이바라키연구소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독려한다.

이바라키연구소 선전전이 끝나면 오사카역 그란드프론트 빌딩 앞에서 연설을 한다. 빌딩 33층에 닛토덴코 본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깃발을 배경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닛토덴코의 만행을 폭로한다. 필자는 닛토덴코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 닛토덴코에게 하고 싶은 말을 주로 했다.

오후에는 애플 오사카 신사이바시점으로 향한다. 애플과 닛토덴코는 분명히 다른 회사지만 구미와 평택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편광필름이 애플의 아이폰, 아이패드로 향했다. 일찍이 닛토덴코가 청산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중국이 코로나 시기 국경을 봉쇄하자 애플이 영향력을 행사해 한국 공장의 청산이 지연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명동, 강남, 홍대에 위치한 애플스토어 앞에서 피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한 번은 애플 오사카 앞에서 소동이 있었다. 애플스토어 점주가 우리를 보더니 당장 피케팅을 멈추라며 경찰을 부른 것이다. 경찰은 강압적으로 폭언을 일삼으며 '일본에서는 인도와 차도를 모두 도로로 본다', '도로점용 허가를 받아야만 피케팅을 이어갈 수 있다고 얘기했다.' 처음에는 노래를 틀어둔 것을 문제 삼아서 노래를 껐더니 바로 피케팅을 문제 삼았다. 다음날 직접 경찰서에서 확인을 받으니 이 경찰들은 외국인이라는 취약점을 이용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닛토덴코는 이 일에 대해 애플에게 사과했다.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한국 노동자들에게 해야 할 사과가 있는데 애플이라는 거대한 자본의 눈치만 보는 것이다.

▲한국 시민활동가들이 힌국옵티킬하이테크의 원청인 닛토덴코가 있는 일본에 가 고용승계 등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일본지지모임' 덕에 외롭지 않았다

외국인이라는 신분은, 특히 한국인이라는 신분은 일본 원정대에게 따르는 어려움 중 하나다. 한 번은 하루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 역무원 10명 이상이 일본 원정대를 둘러싸고 몸자보 조끼를 벗으라고 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그저 집에 가고 있을 뿐이고, 무엇을 입을지 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

표현의 자유가 우선이라며 항의했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어를 잘 모른다고 생각한 그들은 시끄럽다. '나대지 마라'며 일본어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수위의 욕설을 내뱉었다. 요새는 하지 않는 혐한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그때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일본지지모임'의 동료가 나서 '차별적인 발언을 멈추라'고 항의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모욕을 당할 뻔했지만, 일본지지모임의 동료가 명확하게 항의하자 그들의 모욕적인 언사가 비교적 순화됐다.

일본지지모임은 한국의 일본 원정투쟁단을 지원하는 일본인 모임이다. 이들은 1989년 한국수미다전기의 일본원정 투쟁부터 한국에서 바다를 건넌 일본 원정대를 지원했다. 백상예술대상 교양작품상을 받은 <일본사람 오자와>라는 다큐멘터리로 한국에 알려져 있다.

2021년 일본의 산켄전기는 한국산연의 노동자들을 내팽겨치고 먹튀를 저질렀다. 산켄전기는 코로나19로 출입국이 제한적인 틈을 노려 업체를 위장폐업한 것이다. 그러자 일본지지모임은 일본의 시민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고 산켄전기의 다카시 와다 사장 집에 찾아가기도 했다. 보안요원과 밀착하여 항의를 했을 뿐인데, 경찰은 오자와상을 체포해 232일간 가뒀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후퇴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 중 하나였다.

일본지지모임의 헌신적인 연대 덕분에 일본에서의 생활, 운동사회의 문화, 일본어 언어 장벽을 넘으며 원활하게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닛토덴코의 사장 다카사키히데오는 오자와상 부부에게 가처분을 신청했다. 한국 노동자들과 일본 시민들이 1100미터(m) 이내에서 투쟁하지 못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일본 법원이 200m로 그 범위를 줄였지만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부당한 판결이기는 마찬가지다.

▲희망뚜벅이 일정 웹자보ⓒ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파도를 몰고 올 바람이 되겠다

일본 사회는 노조 혐오가 심각하다. 일본 원정대는 오사카에 위치한 간사이레미콘지부의 행진에 연대를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21세기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노동조합에 일어나고 있었다. 윤석열이 건설노조를 탄압한 것처럼 일본에서도 용역을 동원해 노조 사무실을 습격하는 등 탄압이 심각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는데도 쉽사리 활동가들을 가두는 저질 민주주의가 성행하는 일본이다. 그래서 일본의 외국인 투자기업은 노동조합만 생기면 족족 위장폐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더이상 외투기업의 먹튀에 무기력하게 싸우지 않도록, 먹튀 기업을 혼내주고 복직을 쟁취할 수 있도록 일본으로 떠났다.

파도가 만들어지는 원인의 70%는 바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물은 흙보다 비열이 커 더 천천히 데워지고 천천히 식는다고 한다. 바닷바람의 특징이다. 먹튀 기업을 향한 분노는 수십년간 천천히 데워져 왔다. 복직이라는 바람이 부는 순간 파도가 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그 열기는 식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파도를 만들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먹튀기업은 긴장해라 닛토덴코는 시작일 뿐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불타버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고공농성 중인 소현숙, 박정혜 동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구미공장에서 서울까지 걷는 '희망뚜벅이'를 하고 있다. 3월 1일 국회에 도착할 예정이다. 일본과 한국에 부는 노동의 바람, 인권의 바람에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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