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윤석열 대통령 방어권 보장안' 보도자료를 동료 위원들의 동의 없이 직접 배포한 가운데, 쟁점이 된 안건 내용과 결정 배경은 숨긴 채 주문만 작성해 내부 매뉴얼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 위원 측은 알권리와 정확한 보도를 위해 배포했다고 해명했지만, 일각에서는 탄핵심판을 진행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기 위한 행위라는 의혹이 나온다.
11일 인권위는 전날 전원위원회에서 수정 의결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관련 인권침해 방지 대책 권고 및 의견표명의 건' 관련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실이 담당한 이번 자료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시 적법절차 원칙 준수 △박성재 법무부장관 탄핵심판 사건 등에서 탄핵소추권 남용 여부를 적극 심리해 남용 인정 시 조속히 각하 △계엄 선포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 유념 등 안건의 주문을 담고 있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안건 결정 배경이나 쟁점에 대한 설명 없이 주문만 졸속으로 배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권위는 통상 주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결정문 또는 결정 배경과 쟁점 등을 담아왔는데, 이번 보도자료 배포는 그간의 관행을 정면으로 위반한 초유의 사태라는 지적이다.
배포 방식이 인권위 보도자료 작성 매뉴얼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해 확인한 인권위 보도자료 작성·배포 매뉴얼을 보면, 인권위는 "사회 관심 현안에 대한 보도자료는 해당 위원회의 결정 취지, 배경 등 핵심사항을 면밀히 반영해 왜곡이 생기지 않도록 작성"하라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결정문, 조사결과집, 토론발표집, 시각적 자료 등을 참고자료로 제공"해야 하며 작성 요령으로는 "위원회 기존 결정의 흐름, 결정의 취지와 의미 정리"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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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과 달리 이번 보도자료에서는 해당 안건이 논란이 된 배경을 전혀 확인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이 인권위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전원위에서 논의된 안건 내용에는 "헌법재판소의 너무나 비상식적인 재판진행 방식은 헌법재판소가 실체적인 진실의 발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탄핵심판의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상태에서 오로지 요식행위로서 탄핵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거나 "헌법재판소가 현재와 같은 고압적인 태도로 피청구인의 방어권을 짓밟고, 적법절차의 원칙을 외면한 채 탄핵심판 변론기일을 진행하는 것은 국민이 용납하기 어렵다"는 등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계엄이 선포되고 지속된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이 큰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사례가 없고 기물 파손의 정도도 경미한 수준이며, 체포되거나 구금된 사람도 없다"거나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이나 언론에서 내란죄 성립을 기정 사실화한다고 하여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는 등 윤 대통령을 비호하는 내용이 대폭 담겨 있어 인권위 안팎으로 '윤 대통령 비호 안건'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같은 설명이 보도자료에는 충실히 담기지 않아 보도자료만 보면 이번 안건이 나온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은 매뉴얼을 위반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동료 위원들에게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 김 위원실은 12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보도자료 배포에 대해 위원회 구성원들에게 공지했다"면서도 인권위원들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지는 않았다고 했다.
배포 이유에 대해서는 "최종 주문 내용에 대해 여러 언론에서 문의가 쇄도해 알권리 보장 및 정확한 보도를 위해 신속하게 대응한 것"이라며 "반대 의견 및 결정문 내용에 대해서는 예정된 절차에 따라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안건 의결에 반대한 남규선 상임위원은 김 위원 측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남 위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며칠만 기다리면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모두 담긴 결정문이 나올 예정이고, 공개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인 만큼 기자들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할 일도 없었다"며 "헌법재판소를 좀 더 강하게 압박하고 여론에서 이번 결정 내용을 어필하기 위한 용도로 배포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의 대표 발의로 전원위에 상정된 이 안건은 지난 10일 극우세력이 인권위 건물에 난입해 직원과 기자들을 위협하는 등 혼란 속에서 해당 안건은 안창호 인권위원장의 주도 하에 수정 의결됐다. 안권이 통과된 다음날 인권위 직원 50여명과 의결에 반대한 인권위원 3인(남규선·소라미·원민경)은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의결을 주도한 안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남규선·소라미·원민경 위원은 오는 17일 정오까지 결정문 소수의견으로 담길 반대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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